2024년 더슬래시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 / 이원호

2025.03.01 | 조회 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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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말,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용산구 동자동 9-15번지 쪽방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곳곳에 고드름이 매달린 꽁꽁 언 건물의 얼음 계단을 위태롭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의 사진이, 한 언론에 보도된 직후 취재 경쟁이 붙었다.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에너지 바우처는 받는지?…. 차가운 철제 난간을 붙들고 아슬아슬하게 내려오는 쪽방 주민들에게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당시 소위 ‘난방비 폭탄’ 이슈와 꽁꽁 언 쪽방 이미지가 맞물리면서, 에너지 빈곤층에 주목하며 에너지 바우처 확대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와 언론의 제안이 줄이었다. 정부와 지자체도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비용 지원과 요금 감면 대책을 앞다투어 발표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 선 동자동 쪽방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를 반납합니다”라며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너지 비용 지원이 쪽방의 꽁꽁 언 냉기도, 여름철 폭염의 열기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개별 방에서 난방 조절이나 에너지 사용이 불가능한 쪽방의 물리적 구조와 에너지 사용에 관한 통제권이 없는 주민들에게 에너지 바우처는 무용지물과 같았다. 좁고 낡아 단열 성능이 떨어지고 부엌이나 화장실 같은 필수 설비가 없거나 부족한 쪽방의 열악함에 대해, 단열 시공과 같은 수선이나 에너지 비용 지원이 온전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 일 예로, 수년 전 쪽방에 단열재를 보강해주는 에너지효율화사업이 있었는데, 사업의 만족도에 관한 질문에 “방이 더 좁아졌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1.5평 내외의 좁은 방에 8cm 두께의 단열재를 보강했으니, 단열 체감보다 좁아진 답답함이 더 다가오는 체감이었다.

대통령실 앞에서 에너지 바우처 반납 퍼포먼스를 한 주민들은 “에너지 바우처 말고, 내놔라 공공임대!”를 외쳤다. 열악한 주거의 조건에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길은, 에너지 비용 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사용을 적게 하고도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주거’가 답이라는 것이다. 특히, 동자동의 경우 2021년 2월 5일, 정부에서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선이주 선순환의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했고, 쪽방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도 이웃들 모두와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하는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서울시 시장과 대통령이 바뀌면서 공공주택사업의 첫 단계인 지구 지정조차 추진하지 않고 있다. 민간개발을 원하는 소유주들-대부분이 외지 소유주–의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멈춰진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고문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 여름이 되자 폭염을 알리는 언론 보도의 장으로, 얼음물 등을 나눠주는 정치인과 기업의 시혜적 봉사의 장으로 오늘도 쪽방촌이 이용되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쪽방촌이 주목되면서, 쪽방 주민들과 ‘기후정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중에 한 주민은 “지구를 망친 건, 에어컨 빵빵 틀고 큰 차 타고 다닌 사람들인데, 왜 피해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없는 쪽방주민들이 당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쪽방 주민의 물음은, 기후위기가 평등하지 않다는 현실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도심 내 위치한 쪽방촌은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기온이 오를수록 빌딩에서 뿜어내는 에어컨 실외기 열기가 쪽방촌을 열섬으로 뒤덮어 달군다. 단열에 취약한 구조와 빌딩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여름철 쪽방촌 지붕의 표면 온도는 아파트 외벽온도의 2배가 넘어 65도에 이르기도 했다. 주거불평등이 낳은 취약 거처인 쪽방은 기후불평등을 대면하면서 주민들을 이중의 위험에 내몰고 있다.

기후위기 불평등이 주거불평등과 연결되는 문제는 쪽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시원, 옥탑, 반지하, 노후주택 등 다양한 취약 거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2년 전 8월, 우리는 반지하 폭우참사를 겪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지역적 차이가 있을 뿐 다르게 내리지 않을 텐데, 그 결과는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모두에게 내린 평등한 빗물은 불평등한 구조에 따라 가장 아래로부터 차올라, 가난한 이웃들을 삶을 덮쳤다.반지하 폭우참사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라는 기조하에, 재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이었다. 반지하 밀집지의 역에 재개발구역 지정의 가점을 부여해 빠른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피해는 반지하 세입자가 당했는데 지원은 개발이익을 원하는 소유주들과 건설사에 해주는 꼴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역전 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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