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뒤에 숨은 것들
전기는 모두를 연결시킨다. 내 손의 핸드폰부터 지역과 지역을 잇는 철도까지 모두 전기로 작동한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와 같은 거대 규모의 산업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전기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톱니바퀴들 중에서 전기는 가장 중요한 축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은 전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동하고 소비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전기는 물이나 공기처럼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이해할 필요가 없던 이야기들을 세상으로 꺼낸 사람들이 있다. 신고리 핵발전 단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기 위하여 건설된 76만5000볼트 송전탑를 막기 위해 싸워온 밀양 할매, 할배들, 그리고 ‘밀양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라고 불리는 싸움을 올해로 19년 째 계속하고 있다. 송전탑은 완공되었고 전기가 흐른지도 10년이지만 한국전력과 합의하지 않고 살아가는 140여 세대의 주민들이 있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치열했던 만큼 상처도 깊고 컸다. 송전선로 노선을 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설명을 듣지도 못하고, 의견을 내지도 못했던 주민들은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정확한 송전탑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송전탑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가까운 곳에 세워졌다. (2005년 환경영향평가 주민 설명회에는 밀양 5개면 경과지 주민 21,069명 중 126명만 참여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공사를 막아서면서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을 올라 용역들과 부딪히며 공사를 막았다. 언론도, 세상도 전혀 관심이 없는 깊은 산 속에서 젊은 용역들은 늙은 노인들을 조롱했다. 모욕 속에서도 주민들은 매일 산을 올라 옷을 벗고 저항하거나, 엔진톱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으며 싸웠다. 외로운 투쟁이 계속 되었다. 2012년 1월 16일, 산외면 보라마을에 살던 이치우 어르신은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분신했다. 그렇게 밀양의 투쟁은 전국에 알려졌다.
저항이 거세질수록 국가는 더욱 강하게 국책 사업을 밀어붙였다. 13차 공사가 시작된 2013년 10월부터 6.11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2014년 6월까지 38만 명의 경찰이 밀양 4개면 마을로 투입되었다. 경찰은 한전의 공사 자재와 차량을 원활하게 통행시키기 위해 밀양의 모든 길을 통제 했다. 한 사람에게 수십 명이 달라붙었다. 경찰 여섯 명이 사람 한 명을 들어 수십 명의 경찰이 서로 팔짱을 낀 감옥에 넣었다. 그러면 카메라가 일거수일투족 채증을 했다. 공사에 필요한 모든 것들의 이동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그 속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의 폭력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쓰러졌다. 100여 건이 넘는 응급후송이 있었다. 가족이 산 속에서 쓰러져 의식이 없는데도 얼굴조차 보러 갈 수 없게 막았다.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은 그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밀양에서 처음 알았다. 너무 분하고 억울한 시간 속에 있다 보면 목숨까지 거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2014년 6월 11일, 경찰 2,000명이 송전탑 부지에 만든 농성장 4개를 하루 만에 철거한 날이다. 할매, 할배들은 옷을 벗고,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어 저항했지만 경찰은 단도와 절단기를 앞세워 농성장을 뜯고, 사람들을 끌어냈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밀양 사람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자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가 무엇을 짓밟고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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