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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생각하고, 헬라어로 쓴 사람들

《성경 번역의 역사》 첫 번째 이야기

2025.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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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츠피라 HaTzefira

읽고 파, 나팔 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성경 번역의 한계와 아쉬움을 토로하시는 교수님과 목사님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만, 성경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종종 그 말씀에 공감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번역의 과정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때로는 문장에 내용을 보충하거나, 생략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편집된 번역문은 직역문보다야 더 쉽게 와닿을 수 있지만, 동시에 원문의 본질적인 의도에서 멀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만난 책, 래리 스톤의 《성경 번역의 역사》. 작가는 단순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질문으로 책을 엽니다.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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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원본이 없습니다. 모세가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다섯 권의 책들, 바울의 이름으로 전해진 편지들, 요한이 밧모섬에서 썼다는 계시록 등 성경의 모든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은 수많은 사본과 번역본을 대조하고 비교하여 재구성한 결과물입니다.

 

성경 본문에서 '성경'은 때로는 '두루마리'로, 때로는 '책으로 번역되어 등장하곤 합니다. 실제로 성경 사본은 두루마리와 책의 두 가지 형태로 기록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파피루스 종이 두루마리에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생산된 파피루스는 비블로스 항구를 통해 지중해 지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책'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biblos'와 라틴어 'biblia'가 유래되었고, 이는 영어 'bible'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이집트가 페르가뭄으로의 파피루스 수출을 중단하자 페르가뭄은 양피지 제조 기술을 발전시켜 현대 책의 형태와 가장 유사한 코덱스를 개발했습니다. 기존의 성경 두루마리는 본문이 모두 적힌 파피루스를 둘둘 말은 것이었기 때문에, 휴대가 불편한 것은 물론 원하는 부분을 찾아 읽는 것에도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반면 페르가뭄의 코덱스는 원하는 부분을 펼쳐 볼 수 있는 구조 덕분에 훨씬 실용적이었고, 내구성 면에서도 우수했습니다. 이에 시간이 지나면서 코덱스가 두루마리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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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원본이 남아있지 않지만, 5,500개가 넘는 고대 성경 사본의 일부분이나 완성판이 발굴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의 고대 문헌 사본에 비해 방대한 양을 보유한 것은 물론, 사본의 품질이 훌륭하게 보존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만합니다. 성경 사본 분야의 전문가인 프레데릭 케니언 경은 “아주 훌륭한 형태를 갖고 있고, 시나이티쿠스와 알렉산드리누스 같은 초기 사본들은 현존하는 책들 가운데 최상품에 속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사본을 손으로 제작했습니다. 사람의 손을 통하기 때문에 오류가 더러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대인 서기관이 사본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사용할 두루마리를 만들 때 오류를 예방하기 위한 규율을 개발했습니다.

 

  • 날마다 서기관은 갈대 펜이 잘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잉크에 적시고 나서 ’아말렉‘이란 이름을 쓴 뒤에 그것을 지워야 한다.
  • 모든 재료는 엄격한 명세서에 따라 제조한다. 가죽 종이는 정결한(코셔) 동물의 가죽으로 제작하며, 펜은 정결한 새의 깃털로 만든다. 잉크는 오직 검정색이어야 하고, 필사에 관한 명세서에 따라 준비한다.
  • 단어는 물론이고 철자조차 암기해서는 안 된다. 서기관은 자기 앞에 또 다른 두루마리를 펼쳐놓고 각 단어를 소리 내어 읽은 후에 그것을 필사한다.
  • 각 철자의 둘레에는 약간의 지면이 있어야 한다. 한 철자가 다른 철자를 건드린다든지, 부정확한 필사나 구멍이나 눈물이나 얼룩으로 인해 철자를 쉽게 읽을 수 없을 경우, 두루마리를 폐기한다.
  • 각 칼럼은 48행보다 적거나 60행보다 많으면 안 되고 원본과 똑같이 해야 한다.
  • 완성 후 30일 이내에 편집자가 원고를 검토하되 각 철자와 각 단어를 세면서 점검한다. 편집자는 사본의 각 페이지 중앙에 있는 단어가 원본의 중앙에 있는 단어와 동일한지 확인한다.
  • 어느 페이지든지 세 개 이하의 실수는 30일 이내에 수정한다. 만일 그보다 더 많은 실수가 발견되든지, 실수가 30일 이내로 교정되지 않으면 사본 전체를 매장한다.
  • 토라에는 히브리어로 304,805개의 철자와 79,976개의 단어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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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사본의 경우 원본이 제작된 시기와, 가장 오래된 사본의 시기가 약 70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비슷한 시기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가장 오래된 사본은 그의 죽음과 350년이나 차이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소포클레스의 저술 사본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역시 그들의 죽은 지 1천년이 지난 후에야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예시를 들며 작가는 신약이 유일무이한 고대 문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성경은 여느 책과 같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본이 있는 것이다.
세계의 위대한 두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제까지 베르길리우스나 호메로스의 저술을 번역하고 보존하려고 목숨을 바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성경의 번역과 보존을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바쳤다.

《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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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세 가지 언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은 주로 히브리어로 쓰였지만 일부 (아주 드물게) 아람어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를 잇는 신약은 헬라어로 쓰였습니다. 이 중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셈어족'에 속하는데, 이때 셈(Shem)은 노아의 장남 이름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약 성경의 원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와 현대 이스라엘에서 쓰이는 히브리어가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며 점차 사라졌고, 그 자리는 아람어가 대신했습니다. 이후 히브리어는 예배와 문헌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구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근대 정치적 시오니즘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헤르츨과 초기 정착자들
근대 정치적 시오니즘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헤르츨과 초기 정착자들

19세기 말, 동유럽의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면서 히브리어 부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고대 히브리어의 어휘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이미 여러 유럽 언어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결국 현대 히브리어는 유럽 언어에서 어휘를 차용하거나, 기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 히브리어는 '현대인의 관점'에서 재창조된 언어로, 구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고대 히브리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 시오니즘(Zionism)은 유대 민족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땅에 재건하려는 정치적·민족적 운동이다. 19세기 말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심화되던 시기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자결권을 위해 민족 국가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시오니즘은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테오도어 헤르츨(Theodor Herzl)의 저서 Der Judenstaat (1896)은 정치적 시오니즘의 핵심 이론서로 간주된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어의 주요 자료가 구약 성경뿐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성경에 한두 번만 등장하는 단어를 해석해야 할 때면 학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47년 사해 근처 동굴에서 2천 년이 넘은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항아리에 보관된 문서들 중 일부는 아람어나 헬라어로 쓰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된 자료였습니다. 사해 사본의 발견은 히브리어 번역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잠깐 신약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신약이 기록된 시기의 공용어는 헬라어였습니다. 기원전 1400년부터 크레타 섬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헬라어에는 아테네 시대의 아티카 방언을 포함해 다양한 방언이 존재했습니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헬라어가 동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점차 단순화된 공용어 '코이네' 헬라어가 형성되었습니다. 코이네는 상인, 관료, 학자들이 국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로마 제국 시기에도 문화와 상업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바로 이 코이네로 기록되었고, 현대 그리스어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대략 15개의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아바르
성경에서 대략 15개의 의미로 사용된 히브리어 아바르

한 단어에 많은 의미가 있는 히브리어와 달리, 헬라어는 고대 언어 중에서도 어휘가 풍부하고 모음이 잘 갖춰져 있어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기에 유리했습니다. 다시 말해, 논리적 사유와 토론에 적합한 언어였습니다. 이는 헬라어를 사용했던 신약의 저자들은 물론 당대 철학자들이 복잡한 사상과 신학적 개념을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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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히브리어는 특정 사건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 문장을 이해하려면 사건의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전제되어야 합니다. 코이네가 현대 그리스어의 기반이 된 반면, 고대 히브리어는 유럽 언어들과 구조적인 유사성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문장 어순이 영어와도 다르고, 시제 구분이 없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체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성이 고대 히브리어 번역의 어려움을 설명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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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번역의 난제를 일부 해소해 준 번역본이 있습니다. 바로 70인역입니다.
70인역의 배경에는 더욱 긴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고,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수십 년 후, 바벨론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고,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일부는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했지만, 긴 포로기간 동안 경제적 기반을 형성한 유대인들은 바벨론과 그 외 지역에 남아 삶의 터전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 사회는 본토와 디아스포라로 분리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알렉산더가 차지했던 중동 지역들
알렉산더가 차지했던 중동 지역들

시간이 더 지나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 지역을 정복하면서 페르시아 제국이 몰락하고, 유대 지역은 헬레니즘 세계에 편입되었습니다. 알렉산더의 후계자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유대인들에게 비교적 너그러운 정책을 펼쳤습니다. 안정된 정치 환경과 상업 활동의 기회, 종교적 자율성이 보장되면서 알렉산드리아에 규모 있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는 알렉산드리아를 헬레니즘 세계의 '지적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책을 수집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하려 했습니다. 특히 고대 문명들의 경전과 철학을 헬라어로 번역하여 도서관에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 히브리인의 율법서 또한 그 번역 대상이 되었고, 72인의 유대 학자(장로)들에게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게 했습니다. 이 번역본이 바로 '70인역(Septuagint)'입니다.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유대 학자들이 번역한 헬라어 성경인 70인역은 히브리어 본문의 심층적 의미와 뉘앙스를 비교적 충실하게 담고 있어 고대 히브리어 연구에 있어서 훌륭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 정교회는 여전히 70인역을 구약의 표준 본문으로 사용합니다.

 

신약의 저자들도 종종 이 헬라어 성경을 인용했습니다. 복음서와 바울서신, 히브리서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곳곳에서 70인역의 어휘와 문장 구조가 발견됩니다. 대표적으로는 마가복음 7장 6절에서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신 구절, 누가복음 4장에서 이사야서를 펼쳐 읽으신 구절 모두 70인역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설교, 고린도전서 1장과 히브리서의 인용문에서도 같은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의 저자들, 심지어 예수님조차 구약을 인용하실 때 70인역을 사용하셨다면 우리는 왜 굳이 히브리어 성경을 보아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예수님과 제자들이 속해 있던 고대 이스라엘의 '랍비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랍비는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기준이 되었던 율법, 곧 토라를 해석하고 가르치는 율법 교사였으며, 공동체의 윤리적 기준을 형성하는 해석자였습니다.

-라는 설명을 읽어도, 사실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게 토라의 무게와 랍비의 역할이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유대 청소년의 일기를 상상해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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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이었습니다. 말씀이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방법, 즉 '길'이 되었던 것입니다. 랍비들은 이 길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히브리 구조를 거쳐 우리에게 성경으로 정해진 하나님의 말씀
히브리 구조를 거쳐 우리에게 성경으로 정해진 하나님의 말씀

신약이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구약을 인용할 때 헬라어 번역본을 사용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히브리적 배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비유, 율법과 선지서에 대한 해석,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모두 히브리적 구조 안에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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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구조를 회복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학문'이라 부르는 것, 특히 서양의 철학과 신학, 그리고 과학적 탐구가 대부분 헬라 철학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헬라 철학은 기원전 5세기경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며 정교화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논리적 구조와 개념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들의 영향은 이후 로마 제국의 교양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헬라 세계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었을 때, 기독교는 성경의 내용을 외부와 내부에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이 모두 한 하나님임을 증명하기 위해 '본질'과 '위격'을 구분했던 신학적 논의 역시 그 흔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1511, 프레스코, 바티칸 궁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
고대 철학자들과 지성인들을 이상화하여 그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대표작.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1511, 프레스코, 바티칸 궁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
고대 철학자들과 지성인들을 이상화하여 그린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대표작.

이러한 체계화 작업은 불가피하게 사건 중심인 히브리어의 고유한 특성을 지워갔습니다.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성경의 사건보다는 철학적 정의와 개념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히브리 문화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는 점차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구조를 입게 되었습니다.

 

중세에 이르러 스콜라주의와 신학이 본격적으로 결합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근대 학문과 과학의 근간을 형성했습니다. 보편성, 객관성, 추상적 개념, 논리 구조, 실증 가능성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문학적이고 때로는 과학적인 개념들은 모두 헬라적 사유의 유산입니다. 오늘날 학문·신학·철학·교육 전반에 퍼져 있는 '지식'의 형식은 대부분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자리 잡고 발전해 왔습니다.

 

헬라적 해석은 우리가 말씀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말씀의 본질에 온전히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헬라 철학은 이성과 논리, 개념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이 관점에서 '진리' 역시 객관적 현상이나 논리적 구조로 파악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말씀을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하고, 논리로 분해하며, 자신의 세계에서 해석 가능한 문장으로 바꾸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고먐미가 사실은 고양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먐미가 사실은 고양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야 있지만, 말씀의 본래 의미보다는 '내가 이해하고 싶은 방식'으로 말씀을 바라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기보다, 내 삶이 말씀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조를 파악하고, 개념을 도식화하며, 윤리나 교리 등의 결론을 추론하려는 태도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수님이 경고하셨던 '사람의 계명'을 얻는 것에 그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헬라적이냐 히브리적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헬라적인 것'을 경계하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문자'에 갇힌 신앙을 경고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7장 6-7절

먼저 발견되는 것, 계명을 가르치는 것을 예수님은 경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배', '예배'에 대해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돌아와서, 예수님은 율법의 문자'만'을 따르며 스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여겼던 바리새인들의 섬김을 ‘헛된 경배’라고 꼬집으셨습니다.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는 안중에도 없이 해석을 위한 해석을 끊임없이 덧붙여 가르치는 그들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히브리든 헬라든, 결국 그것은 껍질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고대 히브리어를 공부해도 문자에만 머무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넘어 살아 있는 말씀을 만나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적 세계 속에 계셨지만, 율법의 글자에 매이지 않으셨고, 사람의 계명과 장로들의 전통에 말씀을 가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문자 너머 말씀을 듣는 귀일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장 7절

 

 

 

 

다음 편지에서 《성경 번역의 역사》 내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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