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마케터에서 온라인 미술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CEO
사회과학을 공부한 뉴욕의 한 직장인이 만든 온라인 드로잉 스쿨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삶의 굴곡 속에서 예술을 만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한 대니 그레고리(Danny Gregory)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니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뉴욕을 대표하는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30년 동안 일을 해왔습니다. 체이스, JP모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IBM, 버거킹, 포드 등 우리가 알만한 기업들이 대니가 상대하던 고객이었죠.
그의 나이 30대 중반, 아내의 끔찍한 사고로 대니는 넋을 잃었고 극심한 공황장애에 시달렸습니다. 대니는 아내 대신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고, 하루하루를 정말 말 그대로 살아내기 위해 그림 일기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린 수많은 그림 일기를 통해 깨달은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담아 일러스트 에세이로 출간하기도 했구요. 『모든 날이 소중하다』, 『창작 면허 프로젝트』, 『예술가의 작업 노트』, 『도시 일러스트 여행』,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 등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대니는 현재 전 세계 75,000명 이상이 수강한 온라인 드로잉 스쿨 "스케치북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연간 백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해요. 수익은 멤버십(월 130달러), 강좌(49~99달러), 기술별 워크샵(75달러)으로 나뉘구요. 대니는 학교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유튜브 채널에 3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이자 'Draw with Me' 라는 팟캐스트의 운영자 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대니의 드라마틱한 커리어 전환을 살펴보겠습니다.
산산히 깨어진 꿈
대니는 뉴욕에서 패션 스타일리스였던 패티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결혼 후 아들 잭을 낳았고 부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그런 삶을 살고 있었죠. 그러던 중, 1995년 여름, 아홉 번째 결혼 기념일을 한 주 앞둔 어느 날, 아내 패티가 지하철역에서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졌고, 열차 세 칸이 패티를 치고 지나가 패티는 척추가 부러져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완전히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아내의 돌이킬 수 없는 이 사고 이후, 대니는 계속되는 두려움, 걱정, 불안 속에서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대니는 삶을 추스리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을 충만히 살기 위해서 말이죠. 대니는 그렇게 그림 일기를 그리면서 고통으로부터 자유해지는 어떤 해방감을 느끼고,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움으로 가득하다는 신비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니의 아내가 사고가 난 즈음은 인터넷이 성장하기 시작한 때입니다. 대니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가진,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의자에 관한 정보", 그리고 "건강 문제"에 관한 정보들을 발견하면 잘 모아 놓았어요. 그리고 웹사이트를 열어 이러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구요. 이 웹사이트를 통해 대니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대니에게 경찰관 두 명이 찾아왔어요. 대니는 갑자기 15년전 아내의 지하철 사고 날이 본능적으로 떠올랐어요. 그 직감은 맞았습니다. 집에 홀로 있던 아내가 창가의 화초에 물을 주기 위해 몸을 기울이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창문 밖으로 떨어져 즉사했던 겁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대니의 인생에 다시 벌어진 겁니다. 대니는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파괴되었고, 결국 수십년간 몸담은 뉴욕 광고계의 일을 정리하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납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말이죠.
미래가 텅 빈 백지처럼 되면서 나는 많이 바뀌었다. 지난 24년간 아내와 같이 세웠던 수많은 계획과 결정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대신 나는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지 새로운 그림을 구상해야 했다. 패티와 나는 나이가 더 들면 도시를 떠나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살자고 했었다. 거기서 나란히 수채물감으로 그림도 그리고, 잭과 잭의 아이들도 만나러 가고, 새로운 삶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우리의 창조성을 오롯이 발산하면서 살자고 했었다. 이제 그 모든 그림들이 갑자기 텅 비어 버렸다. 암울해지거나 황량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텅 비어 버렸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원할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셀프 케어를 위한 소소한 일상이 사업으로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도시 뉴욕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간 대니는 『Art Before Breakfast(매일 15분 나만의 그림 한끼)』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실 대니에게 창작 활동은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었습니다. 대니는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줄곧 슬픈 마음을 블랙 앤 화이트 톤의 음울한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어느날 부터는 화려한 색연필로 아내가 좋아했던 그림들을 그리며 상실의 슬픔을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은 그렇게 대니가 잃어버렸던 삶의 활력을 되찾아준 원동력이 되었고, 이런 대니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정말 계획에도 없었던 미술교육 사업으로까지 이어졌지요.
그렇게 책을 출판하고 2010년 대니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연히(accidentally)" 온라인 미술 교육 회사 'Sketchbook Skool'을 설립해 지금까지 7만 5천명 이상의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대니는 회사 외에 유튜브, 팟캐스트, 뉴스레터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어요. 1995년 아내의 지하철 선로 추락 사고 이후, 장애를 가진 사람들 혹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과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기 만들었던 웹사이트 운영 경험이 현재 온라인 미술 교육 회사 운영과 고객과의 소통에 예상치 못하게 큰 도움이 되구 있구요.
대니의 삶의 전환점 키 포인트
- 냉철한 상황 인식과 자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용기: 대니는 자신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 지금, 여기에 충실한 행동: 대니는 "here & now" 현재에 충실하며 두렵고,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실천해 나가며 자신을 추스리고 그리고 가족들을 챙겼습니다.
- 베품, 그리고 비슷한 문제 혹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연대: 대니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자신만이 겪는 고통이라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비숫한 처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돕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합니다. 그 과정 가운데 대니 또한 삶의 지지자들을 만나게 되었구요. 또 대니가 사업을 시작할때 필요한 중요한 소프트기술도 습득하게 됩니다.
-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룸: 뉴욕 홍보회사의 잘 나가던 크리에이터였던 대니는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던 미술로 온라인 미술 교육 회사를 만들 줄은 그 자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반전입니다. 60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대니는 서른 중반부터 그 인생에 떨어진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취미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인생 후반전, 의미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갑니다. 무엇보다 그 일이 그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면서 동시에 상당한 수익을 창출해 생동감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안전이란?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데 있는 것
대니의 인생 스토리를 접하고 오래전에 읽었던 책 한권이 떠올랐습니다.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할 길' 이라는 책 첫장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스캇 펙 박사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는 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인생이 없다는 것, 즉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원래 힘들다는 것을 알게되고 진정으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참 역설적이죠.
우리가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 인생의 의미는, 바로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되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삶의 성패를 가르는 것이 바로 이 문제들이구요. 왜? 문제에 부딪치면 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고, 사실 (거의) 이때에야만! 우리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용기와 지혜가 어디선가부터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거죠.
스캇 펫 박사는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고 진정한 안전이란 바로 생의 불안정을 맛보는데 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 앞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우신 분이 있으신가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여러분의 작은 몸부림 하나 하나 가운데 여러분이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해가고 있음을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붙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가운데 분명 여러분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떤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고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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