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 : VIP동물의료센터 원장 서상혁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충북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내과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심장협회 회장 역임
한국고양이수의사회 자문위원
국내 동물병원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함께 진행한 공동연구에서, 증상이 없는 초기 심장병 단계(MMVD Stage B1)의 강아지에게 줄기세포치료를 시행했더니 심장병이 다음 단계로 진행되기까지 걸린 기간의 중앙값이 730일에서 1,467일로, 약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2024년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에 게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심장병은 "증상이 나타나야만 약을 쓰는 병"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증상이 없는 시기에 미리 개입해서 진행 자체를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반려견 심장병, 생각보다 훨씬 흔합니다
소형견에서 가장 흔한 심장병은 보호자분들께 "심장판막증"으로도 익숙한 승모판 점액종성 변성(Myxomatous Mitral Valve Disease, MMVD)입니다. 국제 수의심장학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전체 심장질환의 약 7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질환이며, 저자의 경험으로 보면, 소형견이 대다수인 국내에서는 90%에 육박할 정도로 흔한 질이죠.
MMVD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 Stage A: 호발 품종이지만 아직 심잡음 및 심장 구조 변화가 없는 단계
- Stage B1: 청진상 심장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흉부 방사선 및 심장초음파 검사에서 아직 심장 구조의 변화가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단계
- Stage B2: 좌심방·좌심실이 뚜렷하게 커지고 심잡음도 커지는 단계
- Stage C·D: 실제 호흡곤란, 기침, 폐부종 등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는 단계
일반적으로 증상이 없는 초기 단계는 병원 방문 시 수의사 청진을 통해 심잡음을 발견하거나,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는 특별한 약물치료 없이 정기 검진으로 "지켜보는 것"이 현재까지의 표준이었죠.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단계는 Stage B2부터입니다. 국제 심장학회 기준이 되는 EPIC 연구에 따르면, 심장약(피모벤단) 투여는 원칙적으로 Stage B2부터 권장되기 때문이죠. 보호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장이 나빠지고 있다는 건 아는데,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설명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줄기세포치료, 왜 심장병에 주목받을까
중간엽줄기세포(Mesenchymal Stem Cell, MSC)는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능력뿐 아니라, 염증을 가라앉히고 섬유화(조직이 딱딱하게 굳는 현상)를 억제하는 효과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MMVD의 판막이 두꺼워지고 기능을 잃어가는 과정에는 TNF-α, IL-6 같은 염증 매개물질과 TGF-β를 중심으로 한 섬유화 경로가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줄기세포가 이러한 염증·섬유화 경로를 조절할 수 있다면, 판막 자체의 퇴행 속도를 늦추는 데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국내 임상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이번 연구는 VIP동물의료센터에서 Stage B1으로 진단된 16마리의 강아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6마리는 동종(다른 개체 유래) 난소조직 유래 줄기세포를 매달 정맥주사로 5회 이상 투여받았고, 나머지 10마리는 기존과 동일하게 정기 검진만 받는 대조군으로 1년간 경과를 관찰했습니다.
진단 시점을 기준으로, 1년 뒤 심초음파 재검사 결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 대조군은 좌심방 크기, E파 속도, 심장·척추 비율(VHS) 등 지표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악화되었습니다.
- 반면 줄기세포 치료군은 같은 지표들에서 진단 시점과 비교하여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고, 일부 환자는 오히려 좌심방 크기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보호자가 체감하는 삶의 질(QoL) 조사에서도 식욕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고, 행복감· 정신상태·이동성 항목에서도 개선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단, 식욕 외 항목은 통계적 유의성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연구진은 2019년 3월부터 2022년 12월까지의 진료기록을 후향적으로 분석해 각 환자가 실제로 "B1 진단 시점부터 B2로 진행한 시점까지" 걸린 기간을 개별적으로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대조군은 진행까지 걸린 기간의 중앙값이 730일이었던 반면, 줄기세포 치료군은 1,467일로 나타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p=0.038). 즉 1년 단위 정기 검진 비교와는 별도로, 전체 진료기록을 추적한 결과 치료군의 질병 진행이 실제로 더 오래 지연되었다는 뜻입니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1년간 혈액검사, 체중, 영상검사상 특별한 부작용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Kaplan-Meier 곡선을 이용한 MMVD ACVIM 병기 진행 분석. 대조군의 병기 진행 기간 중앙값은 730일, MSC군은 1,467일이었다. MMVD 병기 진행 분석의 유의수준은 p = 0.038이었다.
왜 하필 '난소조직'에서 줄기세포를 얻었을까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줄기세포의 출처가 골수나 지방조직이 아니라, 중성화 수술 중 적출되어 원래는 폐기되는 난소조직이었다는 점입니다.
-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별도의 채취 수술이나 마취가 필요 없습니다.
- 젊고 건강한 시기에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면서 그 조직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냉동 보관해두면, 훗날 만성질환이 생겼을 때 그 개체 고유의 줄기세포를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립니다.
- 같은 연구팀은 이 방식의 안전성을 노령견 대상 연구에서도 별도로 확인한 바 있습니다. (논문 보기)
이러한 접근은 "수술 중 어차피 버려지는 조직을 치료 자원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비용과 접근성 측면의 현실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연구들은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있을까
줄기세포와 심장병의 조합이 이번 연구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여러 연구팀이 다양한 심장질환과 세포 종류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왔고, 결과는 다소 엇갈립니다.
- 확장성 심근병증(DCM)을 앓는 개에서 심장유래줄기세포(cardiosphere-derived cell)를 관상동맥에 직접 주입한 연구에서는, 좌심실 수축 기능을 나타내는 지표가 대조군에 비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 만성 샤가스병성 심근병증을 가진 개에서는 자가 골수유래 줄기세포를 관상동맥에 이식했을 때 대동맥 혈류 속도가 개선되는 결과가 확인되었습니다.
- 유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정맥주사로 투여한 연구에서는 좌심실 박출률과 삶의 질이 개선되었으나, 30일째와 비교했을 때 60일째에는 그 효과가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반면, 제대 조직(Wharton's jelly) 유래 줄기세포를 이미 심부전에 진입한 개들에게 정맥주사로 투여한 연구에서는 심장 기능이나 생존기간에서 뚜렷한 개선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미 심부전(Stage C)으로 진행된 이후에 줄기세포를 투여한 연구들에서는 장기적인 심장 기능 개선을 확인하기 어려웠던 반면, 이번 연구처럼 증상이 없는 초기 단계에서 매달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 투여했을 때는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연구진 역시 논문에서 "단회 투여보다는 여러 차례에 걸친 반복 투여가 MMVD 환자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직 넘어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치료군이 6마리로 소규모였고, 후향적 연구라는 점에서 위약대조군을 따로 두지 못했습니다. 비용 부담도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아직 특별한 증상이 없는 B1 단계 환자와 보호자에게 반복적인 정맥주사 치료를 권하는 것이 모든 병원, 모든 보호자에게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줄기세포치료를 "모든 초기 심장병 환자의 표준 치료"라고 말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정기 검진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B1 단계에서,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선택지가 더 생겼다는 점은 분명한 진전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뒤따른다면, 심장병 진료의 흐름 자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결론
심장병은 오랫동안 "증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약을 쓰는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증상이 없는 시기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병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이 결과가 해외 사례가 아니라 국내 임상 데이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앞으로 더 많은 증례가 축적되고 후속 연구가 이어진다면, 초기 심장병을 대하는 진료의 흐름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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