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여름 휴가를 다녀오느라 한 주 늦게 소식을 전하는 에디터 클로이입니다. 대신 더욱 생생한 베트남 방문기로 찾아왔어요. 유난히 무더운 2025년 여름이네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여행지로 일본 다음 베트남이 꼽히는데요. 그중에서도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랑받는 지역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다낭에서 차량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후에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후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거에요.
후에를 검색하면 흔히 나오는 말이 '가도 후에[후회], 안가도 후에[후회]'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낭에 머물며 당일치기로 후에를 방문하는 분들이 많아서 나온 말인 듯한데요. 하루에 후에 왕궁(약 1~4시간 소요)과 카이딘, 뜨득, 민망 등 황제릉(각각 30분~ 소요)을 돌아본 뒤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지금처럼 더운 날씨에는 더욱 힘들겠죠. 하지만 후에에 1박 2일 또는 2박 3일 머물러보세요. 더운 낮시간을 피해 오전 관광, 오후 휴양을 곁들인다면 완벽한 여행지가 될 거예요.
후에 왕궁 산책하기
후에 왕궁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엔 왕조가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머문 곳입니다. 1대 황제인 자롱황제가 짓기 시작해 2대 황제인 민망황제 때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며 대부분 소실되었어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후, 현재도 복원 진행 중입니다. '태화전'을 비롯한 건물 대부분은 당시 아시아의 글로벌 스탠다드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자금성을 본따 지어졌습니다. 소중화小中華를 중심으로 한 건물의 형태가 우리에게도 제법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정일품, 종일품 등으로 표기된 대신들의 직책과 의복의 형태 등이 닮은 듯 다른 듯 재미있어요.
자금성의 가장 뒷쪽에 위치한 '건중루'는 12대 카이딘 황제가 유럽과 베트남 전통 양식을 복합적으로 차용한 2층 건물입니다. 카이딘 황제는 이 건물에서 승하했고, 마지막 황제인 13대 바오다이 황제는 거의 이 곳에서 거주했다고 합니다. 건중루는 아쉽게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됐던 건물 중 하나인데요. 2024년 복원 완료 후 개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궁에도 덕수궁 석조전을 비롯한 서양식 건물이 남아 있고, 소실된 서양식 건물 중 돈덕전은 2023년 복원 후 공개되기도 했어요. 19~20세기의 역사적 흐름과 식민지에 남은 흔적들을 되짚어가며 비교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후에 맛집부터 숙박까지
후에에는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에 걸친 프랑스의 침략과 식민지 시기의 역사가 곳곳에 잔존합니다. 구시가지의 프랑스식 건축물, 프랑스 음식점 등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광 후 멋진 프랑스 음식점을 방문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베트남 식으로 해석된 프랑스 음식을 맛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또한 후에에는 좋은 카페가 꽤 많은데요. 여러 카페에서 소금 커피와 다양한 제조 음료를 1,000 - 3,000원 대의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었어요. 성수동 어딘가를 연상시키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맥북을 든 디지털 노마드족이 제법 친숙해서 워케이션 장소로도 추천해요.
하루 이틀 정도 후에에 머무르기로 했다면 숙소로 '에인션트 후에 가든 하우스'에 머물러보세요. 다섯 개의 베트남 왕실 개인 주택과 4개의 프랑스 식민지 시절 빌라로 이루어진 부띠끄 호텔인데요. 총 33개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객실마다 전용 테라스와 욕실이 있어요. 2개의 식당과 2개의 수영장은 각각 베트남식과 프랑스식으로 건축됐고, 아담한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저는 베트남식 전통 객실에 묵었는데요. 객실의 고풍스러운 목조 건축 형태 및 가구, 왕실 모티프의 베트남 애프터눈티와 훌륭한 조식을 10만원 대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왕릉의 시간을 걷다
1박 2일 코스를 택했다면 아침 일찍 든든하게 조식을 먹고 택시 투어로 황제릉을 돌아보세요. 4~6시간 가량 오전 반나절 동안 민망 황제릉, 뚜득 황제릉, 카이딘 황제릉 등을 방문하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압축된 시간을 경험할 수 있거든요. 너무 덥지도 않고요. 응우옌 왕조 전기, 전성기를 누리던 민망황제 혹은 뜨득황제의 무덤을 방문하면 베트남 전통 양식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뜨뜩 황제릉의 아름다운 정원과 호숫가 산책이 기억에 남아요. 응우옌 왕조 말, 카이딘 황제릉에 이르면 프랑스 양식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내부의 카이딘 황제 조각과 화려한 실내 장식이 돋보여요.
건축 양식의 변화와 달리, 황릉의 구조는 대체로 일관성을 보이는데요. 입구를 지키는 인물과 동물 석상 및 오벨리스크 등의 모뉴먼트, 황제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보관된 전각, 문을 통과해 무덤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여러 황릉을 순서대로 방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뇌리에 남는 것 같아요.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한번 제대로 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주변에 베트남에서 가장 오래된 티엔무 사원, 틱낫한 스님이 입적한 곳으로 알려진 투 히에우 사원 등도 같이 방문해도 좋아요.
이번 여름 휴가는 후에에서 생각보다 우리와 많이 닮은 베트남의 근대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삼 동남아시아는 참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지만, 서로의 역사와 공통 경험을 나누는 자리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후에는 2025년부터 하노이, 호치민, 하이퐁, 다낭, 껀터에 이어 베트남의 6번째 중앙 직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앞으로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도 더 많은 지원과 발전이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여행하기도 한결 편리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다낭 공항에서 갈때는 기차, 돌아올 때는 택시를 이용했어요. 기차 여행을 선택한다면 다낭역에서 후에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멋진 바다를 침대칸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새로운 국내 전시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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