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지난 주말은 오랜만에 푹 주무셨나요? 12.3 비상 계엄 이후로 저는 새벽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요. 11일간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집회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2월 14일, 두번째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제적 의원 300명 중 ‘가’ 204표로 가결되었습니다. 전시 상황도, 사변 상황도 그렇다고 치안 공백 상황도 아닌데 내려진 비상 계엄은 155분 만에 해제되었고 대통령 직무 정지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14일에는 “폐간 경력직” 문구를 쓴 창비(창작과비평)가 눈에 띄었는데요. 예술가는 가장 민감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고, 때로는 탄압의 대상이 되죠. 이번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며, 한국의 민중미술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상설전시로 진행하고 있는 가나아트 컬렉션 소장품전이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중미술 작품 중에서도 이번 집회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을 5가지 꼽아봤어요.
김원숙, <구출>(1987)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 한 가운데 여성이 배 앞에 홀로 서있죠. 제목과는 달리 이 여성이 구출될 것 같다기 보다는 조금 더 위험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여성을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여성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선박입니다. “곤경에 처한 여성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남성과 그렇게 구원 받기를 기다리는 여성의 삶이 오랜 기간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했던 암묵적인 젠더의 관계성”이라고 한다면, 여성의 뒤에 “뭍을 그려 넣어, 또 다른 생존의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987년에는 뭍을 선택하는 여성의 ‘셀프구원’ 서사가 2024년에 이르러 사회를 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가시화’되어 보여줍니다. 매번 시위에 참여하고, 맨 앞과 맨 뒤에서 싸웠지만 호명되지 않았던 여성들이 이번에는 누구보다 더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와 민주주의를 ‘구출’합니다. 여성들은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윤, <춤>(1985)
한국의 유머라고 볼 수 있는 ‘해학’은 구비문학, 판소리 등 고전문학에서부터 나타나죠. 이것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때, 비참한 현실과 싸우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오윤의 판화는 목판화가 지니는 거친 성질 사이에서도 섬세한 조각으로 현실과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죠. 특히 <춤>은 붉은 화면 가운데 혼자 서있는 여성의 춤사위를 통해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보여줍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느린 장단에 맞추어 움직이는 슬픈 춤일 수도 있고, 또 경쾌한 장단에 맞추어 움직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민중가요’라고 불리우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비롯해, K-POP과 민중가요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번 집회에서는 오윤이 표현한 춤사위와 같은 집회가 이어졌는데요. 무력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해학과 흥, 에너지로 맞섰습니다.
홍성담,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1996)
홍성담 작가는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된 뒤 고문을 당한 기억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홍성담 작가는 1980년대 국가 폭력과 맞선 광주 시민들의 저항을 기록한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사회 비판적 시선을 미술로 표현하고 있는 홍성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국가라는 집단이 거대한 폭력을 개인에게 행사할 때, 개인이 얼마나 무력해지고 그 개인이 종국에 이르렀을 때 무엇을 떠올리는지 보여줍니다. 민중미술을 통해 이 고통을 짐작하고 비상계엄과 그 포고령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예술은 직접적으로 사회를 기록하거나, 사회 속 개인을 그려냄으로써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임옥상, <발 닦아주기>(1992)
신문을 불태우는 불이 선명하게 보이죠. 특히 신문 더미에는 시장개방 때문에 힘들어진 서민, 전두환을 구속하고 수사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어요. 그러나 이 복잡한 텍스트가 콜라주되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뉴스 중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가려낼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언론의 권력은 오히려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 속에서 사람들은 가짜뉴스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림 뒤에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연대를 통해서 진실을 향해 나아갑니다. 12월 3일, 국회에서 벌어진 일들은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섰고, 더 나아가 국회의원들이 라이브 방송을 함으로써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현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한편, 극우유튜브 내용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배경이라는 주장도 보이죠. 이 혼란의 시대에서 다시 한 번, 임옥상이 그린 진실의 불꽃을 바라봅니다. 마치 응원봉과 경광봉,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꺼내온 가장 소중한 빛처럼 보이지 않나요.
이응노, <인간군상>(1983)
1970년대 파리로 건너간 이응노는 무용단을 통해 인간 군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했어요. 특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곧바로 이응노는 <인간군상>시리즈에 집중합니다. “광주항쟁을 계기로 내 그림도 변화되었어요…이제부터 나 자신 스스로 저 민중 속에 뛰어들어 여생을 보낼 생각입니다. 매일매일 군중의 외침을 캔버스에 옮겨내고 있지요.”(이응노) 작가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사람들의 행진은 우리의 행진입니다. 소설가 한강이 한림원에서 던진 질문처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처럼 이 군상 안에서 단순화된 표현으로 그려진 사람들은 죽음과 생명을 구분하지 않죠. 2024년에 이르러 이응노의 <인간군상>은 이렇게 새로운 맥락을 얻습니다. 1980년에 죽은 자들이, 2024년에 산 자를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행동이 2024년 12월 14일, 200만명이 모인 여의도 집회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유지를 늘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민중미술이란?
1970~80년대 산업화, 독재정권으로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예술로 표현한 사회적, 정치적 미술 운동이에요. 노동, 농민, 민주화 운동과 같은 주제를 강렬한 시각적 표현으로 구현합니다. 억압에 맞서는 저항,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미술의 여러 기법 중에서도 판화, 걸개그림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사회적 불평등,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기록의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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