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벌써 세 번째 음악단어편지를 보내네요. 저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입니다. 오늘은 제가 모은 카세트테이프 중 여러분과 같이 듣고 싶은 음반을 소개해보려 해요.
이전 편지는 안 읽어도 본 편지를 읽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만, 혹시나 궁금해하실 분을 위해 링크는 남겨 놓겠습니다. 😉
YOUNGMOND - 太平 ~ 90 MINUTES OF ‘90S KOREAN REGGAE POP
이름처럼 90년대 한국 레게 팝을 모은 믹스테이프입니다. 곡을 엮은 영몬드와는 PC통신 피쉬만즈 팬클럽에서 만난 오랜 지인이에요. GQ 에디터였고 멜로디바 에코서울의 주인이자 그 외에도 붙일 수식어가 한둘이 아닌 그는 제가 만난 누구보다 레게와 그로부터 탄생한 음악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사람입니다.’ 앞에 어떤 말을 쓸까 고민했어요. ‘진심인 사람입니다?’, ‘가슴에 새긴 사람입니다?’. 여러 표현을 고르다 ‘즐긴다’는 표현이 그에게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게 리듬의 오프비트(Offbeat)가 몸에 밴 사람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롭게 하나 둘 무언가를 만드는 그를 보면 아마 왜 제가 이 표현을 골랐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음반은 그가 TASCAM 202 MKIV 신품을 구입해 가진 바이닐 레코드를 한 장, 한 장 집에서 녹음한 믹스테이프입니다. 45분이라는 정해진 재생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기에 자주 재녹음했고 결국 지난겨울 동안 내내 61장의 카세트 테이프를 만든 후 太태 사이드의 앞부분을 조금 편집해 수록했습니다. 아마 저라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가진 음반을 모두 디지털로 변환한 뒤 편집해 만들려다 포기했을 거예요. <太平>은 즐기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믹스테이프입니다.
카세트테이프니 두 개의 사이드가 있겠죠. A와 B 대신 태太와 평平이 있고 (태는 .이 하나 있고 평은 .이 두 개 있습니다) 테이프가 감긴 순서-평平부터 듣길 권하고 있습니다. 실린 곡과 이유는 삽입된 다운로드 코드에서 접속할 수 있는 드롭박스 폴더의 리스트와 트리트먼트에 자세히 실려 있고요. 수록곡의 리스트를 보면 90년대 한국에 이렇게 다양한 레게팝이 있었는지 놀라게 될 거예요. ‘여름이니까 레게지’. 이런 마음으로 이 음반을 권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단 여름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납작하게 소비되곤 하는 레게, 그중에서도 한국 레게 팝의 다채로운 결을 함께 더듬으면 좋을 것 같아 골라봤어요. 음반에 실린 곡 중 한 곡과 판매처를 아래에 적습니다. 👇🏻
판매처
-echo.seoul: https://www.instagram.com/echo.seoul
-FOE: http://foe.kr
Jiyeon Kim - Long Decay and New Earth
김지연 씨와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10여 년 전 글을 의뢰받는 자리였어요. 이후 그의 소식을 접한 건 11(십일)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2014년에 처음 들은 <11>이라는 EP를 듣고 이런 음악을 하는 분이었구나 좀 놀라웠고, 2017년에 정규 앨범 <Transparent Music>이 발매되며 좀 더 의식하며 듣게 되었습니다.
11의 <Transparent Music>은 제게 신기한 음반이었어요. 음반을 소개하는 글을 어딘가에 기고하기도 했는데 어떤 글을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언제나 그렇듯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썼겠죠. 근데 여기서까지 그럴 순 없잖아요? 미니멀한 피아노 연주가 중심이 되는 음악인데 사실 저는 이런 음악을 즐겨 듣진 않거든요. 그럼에도 꽤 이 음반을 자주 들었던 건 음반에 담긴 기묘한 에너지 때문이었어요. 나중에서야 거기에 ‘고요한 생기’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인상이기도 했어요.
<Long Decay and New Earth>는 런던의 카세트테이프 음반 전문 레이블 더 테이프웜(The Tapeworm)에서 발매된 11이 아닌 Jiyeon Kim의 첫 음반입니다. 11로 발매한 <piano mixtape> 카세트테이프를 8트랙 디지털 샘플러로 실시간 분해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있었던 리허설과 이벤트를 기록한 앨범이에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재생 장치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 아날로그 악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샘플러는 악기를 담는 그릇이자 새로이 연주하는 악기가 될 수도 있지요.
이렇게 생겨난 50여 분의 녹음 파일을 9개의 컷으로 자르고 다시 리허설과 이벤트로 나눠 카세트테이프의 A, B면에 담은 음반이 <Long Decay and New Earth>입니다. 원본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만들어진 음반을 다시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것, 흥미롭지 않나요? 카세트테이프라는 물질의 속성은 영원하지 않고 들을 수록 부식되어 가니까요. 기록된 시간의 매체가 나이를 먹어가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제가 뒤늦게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어요. 카세트테이프를 모으지 않게 된 이유로 다시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게 되다니 나이를 먹는 재미는 이런 데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도 판매처를 적어 놓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흰색과 검은색 카세트테이프 둘 중에 한 가지 색이 랜덤으로 발송되는데요. 저는 검은색을 받았어요. 테이프 색깔 때문인지 저는 이 음반의 무드에 ‘흩어진 밤의 소리’ 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습니다.
판매처
-김밥레코즈 http://gimbabrecords.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15005&cate_no=26&display_group=1
-향음악사 http://hyangmusic.com/View.php?cate_code=KINR&code=4998&album_mode=music
음악 단어 편지 첫 단어인 ‘카세트테이프’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더 있는데 다른 단어들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어 그들에게 바턴을 넘겨줘야 할 것 같아요. 다음 화요일 오전 9시에 새로운 단어와 편지로 찾아오겠습니다. 또 만나요. 구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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