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2024년의 마지막 완중일기 인사드립니다. 12월 31일이 화요일인 바람에 연말인사를 조금 일찍 드리게 되었어요.
남은 약 2주 간 다시는 오지 않을 2024년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며, 상반기 결산에 이어 연말 결산 레터를 들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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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총 7가지 질문들을 통해 구독자님과 함께 연말결산을 해보려 해요. 구독자님도 저의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보며 연말 결산을 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소 무거울 수도, 다소 가벼울 수도 있는 질문들이지만 기억하는 것은 좋은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아쉬운 경험을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소한 호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려 하니 떠오르는 호의가 너무나 많다.
함께 사는 호적메이트 누나가 아침에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출근준비하는 일, 마라톤 대회에 컨디션 조절할 수 있도록 운전해준 나의 친구들, 러닝 후 내 차에 땀이 묻지 않도록 갈아입을 옷을 챙겨온 친한 형, 일에 치여 고단할 때 커피 쿠폰을 주며 격려해준 회사 선배 등...
어쩌면 이 질문의 진짜 출제 의도는 이렇게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 많으니 돌아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렇듯 사소한 호의는 둘리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내친 김에 내가 사소한 호의를 베푼 경험도 되돌아본다.
며칠 전에 회사 화장실에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시는 사우분께서 지나가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칫솔이 떨어져 있었다. 땀을 많이 흘리고 계신 걸 보니 오랫동안 애쓰셨던 것 같았다. 칫솔을 주워 드렸더니, 나에게 고맙다고 하며 입바람으로 머리를 쓸어 내리셨다.
'아 내게는 별 일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이고, 어려움이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괜시리 뿌듯했다. '감사합니다',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것은 누구나 좋아한다. 사소한 호의는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주는 것도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호의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도 나의 호의를 필요로 한다. 같이 사는 세상이라면.
개인적으로 올해 10월 결혼한 박위, 송지은 부부가 결혼식 이후 박위의 장애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분별한 악플을 받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웠다.
내가 누군가에게 받고 있는 사소한 호의를 떠올려본다면, 적어도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크게도 말고 사소하게라도 호의를 베풀며 살아보자.
2. 올해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올해 5월 친한 형의 결혼식 사회를 본 순간. 감사하게도 사회가 끝나고 사회를 정말 잘 봤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좋았다.
그 칭찬이 왜 그리 좋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내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노력 없이 얻은 성과에 대한 칭찬은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잘생겼다, 예쁘다는 그래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정의 욕구가 있다. 내가 정말 열심히 진심으로 노력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칭찬(인정)해줄 때,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니 구독자님이 올 한해 정말 좋았던, 기억에 남는 칭찬이 있다면 그 일에 정말 진심으로 노력하고, 애썼다는 뜻이다. 구독자님 참 잘하셨다. 수고했다.
3. 올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올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당연한 것은 없다.'다.
이 말은 여러 상황에 적용된다. 먼저 사회적으로 보면 서울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솔직히,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1세기라고 믿을 수 없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 탓인지 와 닿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이 땅에 평화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한다.
이 '당연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 이것은 '타인은 타인이다.'라는 말과 같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은 나의 입장에서 당연하다. 그렇지만, 타인은 아니다. 타인의 생각과 타인의 행동은 나의 것과 다르다. 타인은 타인이기에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당연한 인간관계론의 일종일지 모르지만, 이 사실을 가슴 깊이 느끼고, 깨닫는 한 해였다.(언어치료사 김동원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크게 깨달았다.)
그렇지만, 깨닫고, 느낀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단계다. 노력하고 있기에 타인을 타인으로 진정 이해할 수 있는 내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4. 올해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 낸 적이 있는가
아무래도 올해 내가 낸 최고의 용기는 '완중일기'가 아닐까 싶다. 지난 글에서 글을 쓰고, 친구들에게 글을 지인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냐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한 적 있다. 나의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담스럽진 않냐는 질문이었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구독자 중에는 매주 만나 운동을 하는 분도 있고, 매일 회사에서 마주치는 옆 팀 분도 있다. 그런 나의 지인에게 내 생각을 그것도 긴 글로 공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때로 그런 주위의 시선들 때문에 나의 솔직함과 싸워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늘 솔직하게 내 생각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자부한다.
완중일기를 시작하는 첫 글에 그런 말을 쓴 적이 있다. 도전에는 늘 걱정과 염려라는 녀석이 뒤따른다고. 구독자님에게도 2024년에 위험과 걱정이 뒤따른 일은 있었을 것이다.
그 위험과 걱정으로부터 승리했다면 깊은 칭찬과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로부터 승리하지 못했다면 우리 2025년에 다시 도전해보자. 그게 일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
5. 올해 나는 무엇에 결핍을 느꼈나
굳이 뽑자면 '회사'다.
나의 회사는 올해 쉽지 않았다. 잘 나가던 회사이기에 회사 안팎으로 생겨나는 문제들은 여기저기서 가십거리가 되었고, 나의 마음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영원한 건 없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냉혹한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핵개인으로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반성도 들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못했지만, 결핍을 해소하는 큰 두 가지 방식은 아래와 같다.
첫째, 결핍을 결핍으로 만들지 않기.
다른 말로 '합리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꼭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반쯤 차 있는 물을 보고 누구는 '이만큼이나 남았네', 누구는 '이것밖에 안 남았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가 부족하게 느끼는 것은 다시 생각하면 부족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둘째, 채움으로 결핍을 해소하기.
결핍에 정면돌파하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결핍을 느꼈다면, 결핍을 느끼지 않을 회사로 옮기는 방법 등이 되겠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2025년엔 두 가지 방식 중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가고 싶다.
6. 올해 당신은 언제 가장 슬펐나
감사하게도 내 가슴을 후벼파는 슬픈 일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때때로 내 마음 속에서 '슬픔이'가 나오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중요한 특징으로 하나가 있다.
바로 Uncontrollable(조절이 불가능한)하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타인과 연결된다. 조절할 수 없기에.
주체가 '나'인 것에는 '슬프다'보다는 '힘들다, 괴롭다'가 어울리는 이유다.
그래서 조절할 수 없는 주변 사람들의 일에는 슬픔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지인, 어려운 일을 겪은 조카, 희귀병을 앓는 딸을 위해 국토대장정을 하는 아버지 등의 이야기를 듣는 것들이다.
이런 슬픔들은 때때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지만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직면하기.
한강 작가의 이야기처럼 슬픈 과거를 똑바로 직면하고, 애도할 때 진정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구독자님의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을 극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7. 올해 당신은 언제 가장 행복했나
행복했던 순간을 꼽자면 여럿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순간, 레터의 반응이 좋은 순간,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 여행지에서 눈부신 풍경을 맞이한 순간.
이 모든 행복한 순간들의 공통점은 온전히 그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다른 잡념으로부터 벗어나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것. 행복의 다른 말은 고통과 잡념으로부터의 도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기억나는 행복한 순간은 42.195km 풀코스의 피니쉬 라인일 것이다. 길고 긴 4시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결승선에 다가서는 순간 다른 고통과 잡념은 생각나지 않고, '끝났다. 해냈다. 더 이상 뛰지 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이 머리와 온 몸을 지배했다.
마라톤을 고민 중인 분이 있다면 보여주고 싶은 영상이 있다. 바로 춘천마라톤의 피니쉬라인 장면이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피니쉬라인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고통스럽지만 참 행복해보인다. (아마추어 기록 구간인 4시간 부근으로 보는 걸 추천한다.)
구독자님이 내년에 어떤 일을 벌이든, 저런 표정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을 기원한다.
마치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감사드립니다. 구독자님이 저의 레터를 꼬박꼬박 읽지 않더라도, 메일함에 쌓인 여러 개의 메일 중 우연히 닿는 하나의 메일일지라도 작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 초에는 구독자님에게 닿을 수 있는 작은 이벤트도 준비하겠습니다. 조금은 빠른 연말 인사지만, 올 한해 정말 고생했고, 잘하셨습니다.
이번 레터가 구독자님의 2024년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편지가 되길 바라며 마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1/1일은 쉬어갑니다. 잠깐의 휴식을 가지고 1/8일에 다시 편지할게요. 해피뉴이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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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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