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RDS OF A FEATHER

2025.03.30 | 조회 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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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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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혀봐. 버즈 어브 어 페더, 위 슈드 스틱 투게다 아이 노우.” 돌연 시작된 할아버지의 영어교실. “아이 세드 아이드 네버 씽크 아이 와전트 베터 얼로운. 얼른. 리피트혀.” 어쩐지 익숙한 문장. 발이 기억하는 박자,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허. 시어리어스하게. 캔트 체인지 더 웨더, 마이트 낫 비 퍼레버.” 이건 분명 빌리 아일리시다! “할아버지, 같이 불러요. 원 투 쓰리. 벗 이프 잇스 뽀레버, 잇스 이븐 베러.”

 

깨자마자 휴대전화를 낚아채서 가족 단톡방에 메세지를 보냈다. ‘꿈에 할아버지가 나왔어. 영어를 엄청 잘하셨어. 발음도 좋고.’ 나는 할아버지와 가장 데면데면했던 손주였다. 엄마는 할아버지랑 대화 좀 하라며 등을 떠밀 정도였다. 그런 내가 가족 중 할아버지 꿈을 가장 먼저 꾸었다.

 

왕년에 난 할아버지 껌딱지였다고 한다. 그런 기억이 없지만 부모님 말씀으론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딱 하나 그의 품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긴 하다. 당시 유행하던 클론의 초련 춤을 막 추다가 어디선가 팽이를 들고 와서는 할아버지 정수리에 돌려댔다. 팽이는 초련처럼 돌아갔고, 나는 그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렸다. 기이한 풍경을 관망하던 아빠는 “그만 돌려라. 그러다 너도 대머리 될라.” 그러셨다. 그땐 무슨 말인지 몰라 웃었지만 20살이 되던 해부터 꼬박꼬박 프로페시아를 먹기 시작했다. 훗날 할아버지께 빽빽한 머리숱을 칭찬받은 적이 있었다. 약의 힘이라고 말씀드렸지만, 탈모 유전이 멈췄다며 홀로 안심하셨다.

 

카톡을 본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할아버지 표정이 어떠셨는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내 마음은 어땠는지 물었다. 편안해 보이셨고, 발음이 좋아서 거의 못 알아들을 뻔했고, 안심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해몽이 뭐가 필요하겠어. 천국도 똑같아. 미국이 꽉 잡고 있는 거지.”를 마지막 말로 끊었다.

 

부고를 들은 것은 어느 평범한 일요일 저녁이었다. 수영을 다녀왔고, 목살을 구워 먹었고, 산책을 했고, 소파에 앉아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장례식장으로 내려가는 것이 가족 된 도리였다. 직장에 남겨둔 일을 걱정하는 내가 비윤리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다음날 반차를 내고 내려가겠노라 담담하게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할머니 상중에 논술반에 나오던 친구가 있었다. 논술 선생님은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당장 상을 치르러 갈 것을 단호하게 권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일하는 오전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걔나 나나. 참 이해 못할 놈들이네.”

 

난 늘 누군가의 죽음이 두려웠다. 할아버지는 영원히 늙을 줄만 알았다. 그의 죽음이 가능할지 몰랐다. 나와 피를 나눈 이의 첫 번째 죽음이었으니까. 용산역에 다다랐고, 늦은 점심을 태연한 척 씹어 넘겼다. 저녁이 지나 장례식장에 도착해선 부의를 받았다. 배가 고팠지만 굶었다. 나름의 벌을 준 셈이었다. 가족들은 울거나 찬송을 부르며 밤을 지새웠다. 그사이 할아버지의 이웃, 아버지의 동창, 고모의 친구가 다녀갔다. 한가해진 틈을 타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가 넥타이를 풀었다. 하지만 좀처럼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진실로 내가 두려웠던 것은 장례식장에서 짓고 있을 내 표정이었을까? 나는 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마주하는 일을 미루고 싶었을까?

 

발인을 앞두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찬송에 이르러 슬픔은 고조되었다.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남기자는 제안을 했다. 막내 삼촌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할 만큼 눈물을 쏟았고, 큰아버지는 엉엉 울며 사랑한다는 고백을 남겼다. 난 그에게 다짐을 남기고 싶었다. “제가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서울 저희 집에 잠시 머무신 적이 있었어요. 동생이랑 셋이 점심을 차려 먹고 치운 적이 있었는데요. 저랑 동생이 더럽다고 치우기를 미루니까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밥그릇이 제일로 더러운 것이여. 그렇게 살아야되여. 저는 그 문장을 격언 삼아 살고 있어요. 겸손함은 할아버지로부터 나왔다고 믿어요.” 아쉽게도 형제가 너무 많은 탓에 손주들까지 발언의 기회가 오진 않았다. 다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평생 드나들었던 마을 초입을 지나 시골집 담장을 넘고 가족 묘지에 이르러 장례는 끝이 났다. 가족들은 장례식장 앞에서 모여 서로를 다독였다. 마음 잘 추스르라는 당부를 하고, 다음 주엔 더 추워진다니 건강 조심하라는 걱정을 건넸다. 그리고 아빠의 제안에 따라 가족은 손을 모으고 하나, 둘, 셋, 화이팅을 외쳤다.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우시자마자 가훈은 화이팅이었다. 대부분 일주일에 하루 쉬는 직업을 가졌지만 돌아가며 휴가를 냈다. 병원으로 모시고, 밥을 차리고, 씻기고, 진정시켰다. 안 막혀도 편도 다섯 시간인 거리를 당연한 듯 오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죽음 앞에 지혜를 배웠다.

 

서울로 올라가는 내내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화이팅이 끝이었다. 창밖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서 아버지를 여윈 슬픔이 뚝뚝 떨어졌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나. 날아간 깃털을 그리워하는 일만 고요하게 남은 귀경길이었다.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Billie Eilish - BIRDS OF A F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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