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기 전 더보기를 클릭한다. 브랜드와 상품명 그리고 사이즈가 가지런히 적힌 정보를 확인한다. 예상대로 상품의 링크도 함께 있다. Backspace를 누른다. 채널명은 달라도 모두 같은 일을 한다. 수수료를 얻기 위해 물건을 소개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일. 일종의 삐끼다.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만, 글쎄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연쇄적 지각을 강제하고, 연쇄적 습관을 강화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스토리 사이 끼워져 있는 광고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주장하는 ‘편의’를 위한 강제적인 트래킹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솔깃한 광고에 현혹된 사용자는 도파민 중독에 빠질 뿐이다. 하나뿐이던 광고는 둘셋으로 늘었고, 충동을 억제하는 노력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패는 출연자의 실패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제작진이 순위를 조작하거나 교묘한 편집으로 거짓 인과를 만들었을 때 결정된다.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과 인내, 응원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을 모조리 소각시키는 셈이다. 만연한 접대와 로비, 광고 목표와 수익 모델의 거품 아래 침전한 가치의 재. 가치 자체가 상품이 되는 세상, 공정함이나 지속가능성이 경제적으로 도살되고 있다. 하트시그널, 나는 솔로, 환승 연애… 짝짓기 예능이 난립하는 사이 우리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였는가? 단언컨대 아니다. 출연했던 수십 명의 인플루언서를 얻었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면 쇼핑호스트 여럿을 얻은 셈이다. 그들이 무엇을 바르고 먹고 입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업은 피드 당 가격을 매겨 그들에게 광고를 맡기고 있다.
서로에게 우호적인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지를 ‘상징’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점토판을 둘로 쪼개어 절반은 자신이 지니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사람에게 환대의 표시로 주는 것. 그렇게 ‘상징’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든다. 파타고니아에서 냈던 ‘Don’t buy this jaket’ 캠페인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소비를 명확하게 말해준다. 플리스 자켓 하나를 여러 해 입었다고 가정해 보자. 추운 겨울에는 패딩 안에, 날씨가 풀려 조금 쌀쌀한 날에는 외투로 말이다. 걷고 뛰고 나아가 공부하고 키우고, 물려주는 어느 날에는 그것에 붙은 이야기가 여럿일 것이다. 굳이 환경이나 노동 인권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할 필요가 없다. 우수한 내구성의 의복 하나가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상징들은 나와 가장 밀접하니까.
빳빳한 Raw 데님을 구입해서 자연스러운 경년 변화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나의 습관에 맞추어, 매일의 체험에 길들여지는 의복의 변화를 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같은 의자와 같은 탁자가 매일 변화하는 사람 앞에 변함없이 친숙한 것들로서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을 안정화한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 거주하는 물건들과 어떤 이야기를 쌓고 있는지 여러분들도 고민해 보길 바란다. Camber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Barry Schwartz는 “우리의 스웻셔츠를 입고 일하면서 35번의 세탁을 해보면 다시는 다른 스웻을 입지 않을 것이다.”라는 인터뷰를 남겼다. 계절마다 쏟아지는 스타벅스 굿즈들, 래플과 당근마켓의 공생 관계와는 딴판인 이야기다.
Essential은 14세기 중반 ‘본질적으로 그러한’을 뜻하는 라틴어 essentialis에서 유래되었고, ‘필수적인’의 의미가 붙은 것은 1520년의 일이다. ‘본질’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의 성질을 말한다. ‘있어야만 한다.’ 보다 ‘근본적인 성질’이 앞선다는 것이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본질을 흐린다. 공룡들로부터 하청 받은 장돌뱅이는 세련을 빌미로 우리 주머니를 노린다. 돈이든 물건이든 닥치는 대로. 때로는 열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도. 욕심이라는 파도 위에서 그만 주춤대는 날이 올까? 내가 만들 이야기를 향해 날카롭게 팔을 뻗고 싶다.
*책 속의 문장은 밑줄로 표시해두었습니다.
*취미는 주장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네요.
*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Ryuichi Sakamoto - Playing the piano for the Isolated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