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강습 (3월 2일)
‘음~파!’ 호흡과 파닥파닥 발차기 연습을 했다. 아무리 물이 무서워도 수경 쓰고 눈 질끈 감는 건 이상하다 싶어 퍼뜩 눈을 떠보니 꽤 예뻤다. 아이폰으로 치면 ‘선명하게’ 필터를 입힌 세상. 역시 알고 나면 덜 무섭다. 두려움 앞에 장사 없고 앎 앞에 두려움 없다.
두 번째 강습 (3월 7일)
코와 입에선 염소 소독약 냄새가 나고, 혹사당한 종아리엔 잔경련이 난다. 열심히 했나 보다. 발차기를 해도 나아가지 못해서 쌤한테 여러 번 물으면서 교정 받았다. 교사가 되고 나니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모른다는 건 덜 익숙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강습 (3월 9일)
노오란 킥판 들고 파아란 폼폼이를 허리에 맨 내가 조금 귀여워 보인다. 헤엄이라기보단 허둥대는 게 전부여서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주고 기다려준다. 왕복 50m를 돌고 나면 얼굴에 열이 오르고 숨을 헉헉대는데 쌤이 잘했다고 엄지를 들어준다. 초심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수영하길 잘했다.
네 번째 강습 (3월 14일)
‘뜨고 싶다. 가라앉지 말자.’고 끊임없이 되뇐다. 그러다가 죠지나 폴킴 노래 들으면서 집으로 오는 길이 즐겁다. 가끔 스스로 월드콘을 보상으로 주면, 나도 모르게 허밍이 나온다. 살다가 가라앉고 싶어지면 수영장에 가야겠다.
다섯 번째 강습 (3월 16일)
잘할 필요 없는데 잘하려고 한다. 그럴수록 어깨는 경직되고 발차기는 어눌해진다. 잡생각이 더해지면 결국 가라앉는다. 출발점으로 돌아와선 되지 않는 일에 마음을 깊게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구태여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일을 만들러 수영장에 온 거야. 결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섯 번째 강습 (3월 21일)
수영 끝나고 몸무게를 재봤다. 2주만에 4킬로가 쪘다. 아무래도 수영장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더 열심히 마시고 1킬로 마저 찌워서 도합 5킬로 증량해야겠다. 수영 기록을 끄적이고 나니 때마침 떡볶이가 다 끓었다. 오늘의 보상은 칼칼하게 떡볶이!
일곱 번째 강습 (3월 23일)
차세대 수영꾼이 되는 것인가? 드디어 허리 폼폼이를 뗐다. 킥판 들고 양손으로 물 가르기도 배웠다. 자신감이 차오른다. ‘맨손으로 수영이 가능한 날까지 나에게 닥칠 시련 따위 가뿐하게 물리쳐주겠어!’
여덟 번째 강습 (3월 28일)
세면대 가득 물을 받아 수영복, 수모, 수경에 벤 염소를 빼는 중이다. 마치 해감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수영 가방을 꾸리고 푸는 일, 수영 센터까지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장비를 씻고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들이 생활에 리듬을 만들고 있다.
아홉 번째 강습 (4월 18일)
공사로 인해서 2주 동안 센터 휴관이었다. 오랜만에 입수라서 물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쌤이 킥판 잡고 그 정도로 물 가르는데 맨손으로는 왜 안 뜨는 모르겠다고 하셨다. ‘근데요 쌤… 저는 알겠어요… 호흡, 발차기 기타 등등 아직 엉망인걸요. 더구나 알면서도 못 고치겠어요.’
열 번째 강습 (4월 20일)
가장 큰 문제는 호흡이었다. 쌤이 보시기엔 수면 위로 얼굴 다 보이는 건 장점인데 너무 느긋하게 호흡하는 건 단점이라고 하셨다. 내가 느끼기엔 초스피드로 간신히 뻐끔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훨씬 더 시간을 줄여야 한다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열한 번째 강습 (4월 25일)
자유형은 못 하지만 황선우 선수 영법 벤치마킹 중인 내가 꽤 웃기다. 그의 호흡, 발차기, 팔 동작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저렇게 몸을 길게 늘려야 부력이 올라가는구나.’ 한참 짧은 나에게도 적용될까? 요샌 검색어에 ‘수영’만 넣으니까 추천 영상에 수영 강좌랑 선수 영상만 뜬다. 배우기 좋은 세상이다.
열두 번째 강습(4월 27일)
친구들이 브루노 마스 콘서트 티케팅할 때 나는 강습 취소표 티케팅 중이다. 새로고침의 반복! 시도한지 이틀 만에 겨우겨우 월수금 반으로 성공했다. 화목반 회원님들이랑 겨우 말 트고 안면 익혔는데, 헤어지기 아쉽다. 얼른 출발하라고 등 떠밀고, 내가 선두일 때 늦장 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열세 번째 강습(5월 1일)
성격이 괴팍하거나 얍실하대도, 뛰어난 교수법을 가지지 못했더라도, 공감 능력이 한참 떨어진대도 가르치는 사람은 선의를 품고 있다. ‘배우는 사람들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나 역시 그 선의를 믿어주는 사람들 덕에 지금껏 교사 생활을 해왔다.
열네 번째 강습(5월 3일)
드디어 오늘 맨손으로 자유형에 성공했다. 킥판을 잡고 물살을 가를 때 보다 훨씬 자유롭다. 내 모든 감각이 물속에 펼쳐진 느낌. 자유형만 떼면 그만두자 했는데 그러지 못하겠다. 첫 강습 때 “저 물이 무서워요.”했더니 “원래 그래요.”했던 쌤의 대꾸가 생각난다. 아직 무서운 것 천지인데 짐짓 강한 척하느라 힘들었는데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취미란 위로 받는 시간이네요.
*’취미’를 주제로 보내드린 4월의 레터,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네 편의 글을 적는 동안 저는 취미가 무엇이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 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읽으셨나요? 피드백 전해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곧 다시 만나요. 건강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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