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월

2024.07.21 | 조회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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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자리 옮기기 전에 화장실 한 번 다녀올게요.”

“그래요 디디. 저는 어디로 옮기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있을게요.”

 

디디는 길고 긴 노상 행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카니발 같았다. ‘봄의 엔딩을 축하하려는 무리 같군.’하는 생각을 하며 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금요일 밤의 피곤, 주말에 대한 기대, 새로 만난 인연의 설렘, 오래된 연인들의 속삭임, 어깨를 드러낸 사람들의 춤사위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리의 모든 것을 문질러 만든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각색으로 웃고 있었다. 디디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뱉어내길 반복했다. ‘한 번 보고 말 사이면 훨씬 편했을까?’ 약속을 정한 날부터 시작되었던 긴장감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디디는 네온 사인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빈칸이 난무한 물음에 머리를 연신 털어내었다.

 

“날씨가 좋던데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걸으면 어때요?”

“오, 좋아요 이츠키. 술기운이 올라 마치 되직한 스프로 변할 것 같았거든요.”

 

빠르게 흐른 시간, 예상보다 늦어진 귀가였다. 어디로 갈지 마뜩잖은 결론만 냈던 디디는 산책 제안에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들은 한 블록에 다다를 때마다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묻고 답했고, 관심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치 ‘당신의 비어있는 한 조각은 사실 나의 삶 속에 있었군요’ 게임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 게임이 있다면 말이에요.”라고 이츠키가 말하자, 디디는 장난스럽고 으스대는 말투로 ‘흘리기 위해 만든 뚱뚱한 샌드위치를 먹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곱씹어 이야기를 듣던 이츠키도 향이 좋은 바디워시, 얇은 컵을 사는 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며 잔잔하게 공감을 표했다.

 

“호수 둘레길로 내려가지 않을래요? 이츠키,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웃어요?”

“대신 버려주겠다던 내 하드 스틱이요. 아까부터 디디가 물고 있는 거 알아요?”

 

그들의 걸음은 단 하나의 이야기를 또각또각 써 내려갔다. 어쩌면 유년 시절의 이야기, 사실은 요즘의 이야기, 자꾸만 미래의 이야기를 소곤대었다. 호수의 절반을 돌았을 때 이츠키가 고백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곤 해요.” 이츠키는 양팔 저울을 맞추듯 사랑했지만, 근소한 차이에도 삐꺽댔고, 이유 모를 이별을 혼자 감당해 내야 했다. 균형을 맞추려 할수록 사랑은 거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다행인지 어리석은 탓인지 사랑에 대한 갈망은 식을 줄을 몰랐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다시 날아오르는 시소 같은 사랑을 원했다. 날이 저물어도 집에 갈 생각이 없는 아이들의 멈추지 않는 시소처럼 사랑한단 말로 서로를 문신하고 싶었다.

 

“디디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자, 지금부터 제 검지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세요.”

 

이츠키는 천천히 움직이는 디디의 손가락을 따라 지천에 피어난 초록 잎을 보았다. 벚꽃이 진 뒤의 벚나무였다. 부는 바람에 가지가 흔들렸고, 가지를 따라 초록 잎들이 우아한 왈츠를 추는듯 했다. 디디는 투정하듯 “어쩐지 벚꽃이 얄미워요.”라고 말했고, 이츠키는 그런 모습이 귀여워 폭 나오는 웃음을 숨기곤 이유를 물었다. 디디는 호수를 들여다보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벚꽃의 덧없음을, 벤치에 앉아 빠르게 퍼진단 뜻을 가지게 된 벚나무의 어원을 이야기했다. 그리곤 조심스레 이츠키의 손을 잡으며 버찌를 맺는 초록 잎의 약속을 귓가에 속삭였다. 두 사람은 가로등 아래 빛나는 초록색 그림자를 발견하곤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맞추었다.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곽진언 - 나의 오월

 

 


 

5월에 시작하여 7월에 끝냅니다. 발송 단추를 누르기 꽤 어려운 글들이었습니다. 자꾸만 지어내려 하고, 솎아내려고 했습니다. 다 욕심이죠. 용기를 내어 처음 그대로 내보입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건강하게 보내시고,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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