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 숙소로 들어가는 늦은 밤

2022.12.07 | 조회 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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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여행 첫날 숙소로 들어가는 늦은 밤 버스 안, 10시간 동안 걷고 또 걸어 피곤한 와중 저만큼이나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 여럿이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이 섞여 차창을 뿌옇게 만들었고 이내 안개 속에 갇히고 말았죠. 흐려진 버스, 갑작스레 운전석 주변에서 실랑이가 시작되더니 이내 거세졌습니다. “버스 기사 주제에 운전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마스크를 쓰라 마라야. 으이?” 잔뜩 화가 난 노인. “허허. 아지매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요? 허허.” 가볍게 반격하는 버스 기사.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뒤에서 청년 여럿이 이렇게 외칩니다. “어머니, 조용히 해주세요. 그러시면 위험해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이었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 테고 나서는 이가 있었대도 과연 ‘어머니’라는 호칭을 썼을까 싶었으니까요. 노인은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피곤한 몸임에도 택시를 타지 못하는 가난한 형편을 늘어놓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청년들은 가만히 노인의 투정을 듣고 대꾸했습니다.

 

 

청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속으로 노인과 기사의 잘잘못을 따졌을지 모릅니다. ‘노인이 방역 수칙을 어긴 것 맞지만 잠시 내리고 숨 쉬는 것까지 막을 자격이 과연 기사에게 있었을까?’ 하면서 말이죠. 노인의 이야기도 기사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지만, 저의 식으로 꾸역꾸역 해석하면서 말입니다. 마치 낚아 올린 잔멸치를 대하는 심정으로요. 더욱 잔인하게 그것들을 높이 들어 올려 사진을 찍고 자랑했을지도 모르죠. “야 이것 좀 봐라. 오늘 이만큼이나 걸려들었다. 대단하지?” 하면서요.

 

 

맹자가 안방에 들어가니 아내가 웃옷을 벗고 있자 매우 불쾌해하며 다시 들어가지 않은 유명한 일화를 아실 겁니다. 참다못한 맹자의 부인은 맹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부의 방에서는 편하게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그런 저를 견디지 못하니 저를 손님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친정으로 떠나겠습니다.” 그리고 맹모는 맹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누가 있는지 묻는 일은 경의, 당상에 오르기 전 기침하는 일은 알리기 위함, 방으로 들어갈 때 눈길을 아래로 두는 일은 남의 실수를 볼까 우려해서이다. 너는 예법을 지키지 않았구나.”

 

 

존중을 빼고, 공손을 빼 상대를 교란하는 요즘입니다. 아무래도 인생을 젠가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 하는 얕은 마음 씀씀이로는 얼마 못 가 빙하기가 오고야 말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젠가는 무너져야 끝이 나는 게임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누군가를 일으켜 세워줘야 한다고 믿습니다. 노인과 기사 사이에 걸린 서슬 퍼런 낚싯바늘을 풀어낸 청년들, 맹모와 닮지 않았나요? 청년들로부터 깊이 뉘우친 여행 첫날입니다. 시작이 좋군요.

 

 

*12월의 나머지 날들은 연재를 쉽니다. 아이들 성적 처리와 졸업 시키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요. 1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가 됩시다!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검정치마 - 내 고향 서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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