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에고.” 긴 호흡, 짧은 신음과 작은 손수레가 먼저 버스에 올랐다. 이윽고 오른 할머니는 검은 봉지 여럿을 양손에 쥔 채였다. 지갑을 태그 하자 한 장만 찍으라는 안내말이 울렸다. 이미 출발한 버스는 그녀를 위태롭게 흔들어댔다. 누구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슬그머니 앞자리 승객들에게 마음의 짐을 넘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버스 앞머리까지 떼어야 하는 걸음 수를 헤아리고, 누군가가 먼저 돕거나 내 자리를 뺏기는 상상을 하고, 누구나 도움받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나?’까지 생각하자 할머니 뒤에 중학생이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버스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명이요.” 빠르게 행동한 아이와 고민이 많았던 나는 무엇이 달랐을까?
동생에게 차를 빌려주면서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이동 시간은 늘었지만 얻은 이득도 있었다. 손과 눈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책을 읽고 원격 연수를 듣거나 간단한 작업도 가능했다. 반면 정신 건강에 해로운 일도 있었다. 타고 내릴 때마다 자주 어깨가 부딪혔고, 장마가 시작되면서 장우산을 가로로 들고 다니는 무사들, 3단 우산과 손잡이를 함께 쥐는 가드너들과 눈치 싸움을 해야만 했다.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쩐지 화가 나 보였다. 고단함이 객실을 장악하면 관대함은 구석에 웅크리고 말았다. 다리를 꼬아 두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 파우더를 날리며 화장하는 사람,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들... 나는 이따금씩 그들을 부도덕한 치로 몰아붙였다. 그렇게 사람과 부대끼다 보니 차를 돌려받는 7월 말일만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매번 버스 기사에게 태클을 거는 할아버지가 그날따라 심하게 역정을 내었다. 버스 정류장에 조금 못 미친 자리에서 탄 것이 화근이었다. ‘버스 기사 주제에’는 모든 문장 앞을 장식했고, 평소엔 민원을 잘근잘근 잘라 여유롭게 받아치던 버스 기사도 숨이 가빠져라 울분을 토했다. 그대로 두면 위험했다.
버스 안은 삽시간에 어수선해졌다. 이럴 때는 젊은 남자가 나서줘야 하지 않나 하며 다시 고민에 잠길 무렵, 아주머니 셋이 뭉쳐 할아버지를 압박 수비하기 시작했다. 앞 버스와의 간격 때문에 일찍 정차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운전기사에게 폭언을 하면 왜 위험한지, 들고 있는 태극기가 주변 승객들에게 끼치는 불편함에 대해서 얼마나 유쾌하고도 교훈적으로 설명하는지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할아버지는 다음 정류장에서 조용히 내렸고, 아주머니들은 기사를 진정시키곤 각자 자리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말이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마음 형편 하나씩 갖게 된 것이 요즘 사람들 속 사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민첩하게 뛰어든 그녀들의 결단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선행을 대행 맡긴 양 굴었던 인간은 중학생과 아주머니를 통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남을 돕는 일, 나도 성공할 수 있다!’ ¹용기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매달 한 가지씩 드릴을 정했다. 9월엔 ‘지하철 노선을 묻는 노인 옆에 난감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다가가서 돕기’로 정했다. 고민은 접어두고, 행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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