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 짜잔, 드디어 노래 가사처럼 설레는 <주간영화>의 첫 뉴스레터가 발간됐어요. 창간호인만큼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는 바로 '처음'으로 정해봤어요. 에디터 혀기의 로버트 패틴슨이 처음으로 배트맨을 맡은 영화 🦇<더 배트맨> 리뷰와, 에디터 우기의 📽️첫 영화현장 썰을 준비했으니 즐겁게 감상해주세요.
답을 알고나면 허무해지는 수수께끼처럼
이상한 데서 고집이 센 편이다. 바지는 무조건 다리 꼬기 편한 조거 팬츠, 힙합은 켄드릭 라마, 아이스크림은 딸기 요거트, 최고의 배트맨 영화는 '다크 나이트'. 이런 나에게 크리스찬 베일의 뒤를 이은 차세대 배트맨으로 로버트 패틴슨이 낙점됐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여기에 언급도 없는 벤 애플랙에게는 미안하지만)
한때 10대 소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치명적인 뱀파이어, 에드워드와 어둡고 우울하고 고뇌에 빠져있는 히어로, 배트맨. 극과 극으로 느껴졌던 둘의 조합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결과는 늘 실패였다. 가끔은 걷기 전에 뛰어봐야 안다는 아이언맨의 말대로, 걱정과 기대를 안고 '더 배트맨'을 관람하게 됐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더 배트맨'은 2억 달러나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대작이지만, 영화의 연출 방식은 기존의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시원시원하고 거침없이 진행되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 온 마블 유니버스의 영화들보다는 달리 DC 유니버스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더 부각이 된 편이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도 묵직하다.
영웅의 평화로운 일상을 소개하고, 그 일상을 파괴하는 빌런을 등장시키고, 그 빌런과 정면으로 몇 번이고 맞서 싸우다가 결국에는 승리를 쟁취하는 익숙한 서사 대신 '더 배트맨'은 ‘리들러’라는 빌런을 배트맨보다 먼저 소개하고, 리들러가 남긴 단서들을 추적해 가며 실체를 파악하는 이야기 구성을 통해 히어로물 대신 마치 영화 '세븐' 같은 느와르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리들러의 방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면 '세븐'에서 본 것 같은 연출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퍼스트 어벤져', '아이언맨'같이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영화는 그 영웅이 탄생하는 서사를 다룬다는 일종의 법칙을 깨부수는 스토리도 흥미롭다. 배트맨 하면 떠오르는, 어둠 속에서 괴한의 총에 맞은 어머니 마사 웨인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어둠과 대비되는 그녀의 새하얀 진주 목걸이가 흩날리는 장면은 바로 배트맨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장면이자, 배트맨이라는 영웅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자의나 우연히 초능력을 얻어서 탄생하는 영웅들과는 달리 배트맨이 탄생한 배경은 철저히 개인적이다. 대의를 지키기 위한 명분 대신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악’에게 복수하고, 더 나아가 고담이라는 도시의 ‘악’을 뿌리뽑는 것. 그래서 배트맨의 서사는 그 어떤 영웅보다 훨씬 더 어둡고, 슬프게 그려진다. 위대한 위인들의 이름 앞에는 ‘호’가 따라붙듯이 모든 슈퍼 히어로들에게는 각자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하나씩 있다. 예를 들면 캡틴 아메리카의 ‘고결함’, 스파이더맨의 ‘이웃’,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배트맨에게는 ‘복수’.
'더 배트맨' 또한 이런 배트맨의 정체성을 ‘나는 복수다’라는 대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시킨다. 이런 배트맨에게 맞서는 빌런은 리들러, 고담의 부패한 이면을 시민들에게 폭로하고, 이 도시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싶은 리들러의 존재는 전작 '조커'가 떠오르기도 한다. 아버지의 유산과도 같은 이 도시를 지켜내고 싶은 배트맨, 희망 없는 이 도시를 떠나버리고 싶은 캣우먼, 그리고 이 도시를 철저히 몰락시키고 싶은 리들러. 영화는 크게 이 세 주인공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리들러의 수수께끼를 풀면 풀수록 점점 고담시의 어두운 이면, 브루스 웨인의 가정사, 고위층의 타락이라는 드러나는 스토리는 DC 코믹스가 자신 있고, 잘해왔던 서사이기도 하다. 이런 리들러의 수수께끼는 관객을 몰두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장치지만, 정작 답을 알아내면 허무한 그의 말장난처럼, 영화의 메인 빌런인 리들러의 정체를 알아내는 순간부터 영화의 재미는 급감하기 시작한다.
고담이라는 부패한 도시를 재건하려는 신념이 굳건한 철학적인 악당에서, 브루스 웨인을 향한 열등감에 찌들어 있는 인터넷의 키보드 워리어로 그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던 리들러는 배트맨을 각성시키는 삼류 악당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비밀을 숨기는 고위직들과 배트맨 사이의 치밀한 심리전과, 리들러라는 빌런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는 배트맨의 평범한 성장 스토리로 마무리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건질 장면은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악을 소탕하는 대신 스스로 빛이 되어 시민들의 앞을 책임지는 장면은 나름대로 의미도, 영화의 메시지도 잘 담아낸 명장면이지만 그 외에는 사실 이렇다 할 알맹이가 없다. 리들러라는 빌런을 통해 많은 것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치밀하고 꼼꼼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전반부와는 달리 결말은 영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기대는 된다. 로버트 패틴슨이 어떻게 배트맨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고, 역사에 남을 만한 배트맨이 될 수 있을지. 아직 부족하지만 그 가능성을 충분히 봤던 시작, 영화 '더 배트맨'이었다.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구독하는 OTT 서비스만 5개,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다가 기어코 뉴스레터까지 손을 댔다.
영화는 영화다
"사운드 스피드, 카메라 롤, 스탠바이… 액션!"
이 말을 현장에서 처음으로 직접 들었던 순간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고등학생 시절, 나름 영화랍시고 혼자서 취미로 영상들을 만들기 시작한 지 좀 됐을 무렵,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일하게 됐던 때였다.
알고 지냈던 배우분께서 연출 쪽으로 전향하시면서, 본인이 작업할 영화에서 영화 촬영본을 저장 및 관리하는 역할인 데이터 매니저 (및 여러 가지 잡일)를 할 생각은 없는지 물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5명 이상의 사람이 있는 환경에서 작업해 봤던 적이 없었기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큰 고민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현장은 상상이상으로 혹독했다. 나름 대규모 영화였지만 제작비가 1억도 안되는 만큼 세트장이 아닌 겨울 산속 오지라는 열악한 환경 날 것 그대로의 촬영이 진행되었다. 첫 씬을 촬영하기에 앞서 스텝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배우들은 세트장 마당에 둘러앉아 대사를 맞춰보거나 혼자 걸어 다니면서 대사를 독백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다른 연출부 스텝들을 도와주던 나는 촬영 준비가 끝나가자 혼자서 구석에 앉아 슬레이트를 들고 탁탁 치는 연습을 했다. 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지자 카메라 스텝이 ‘슬레이트!‘ 하고 날 불렀다. 슬레이트를 들고 달려간 나는 카메라 앵글을 확인한 후, 화면에 잘 보이겠다 싶은 위치에 슬레이트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했던 탓인지, 슬레이트를 치려고 한순간 가운데 손가락이 사이에 끼면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아픈 건 느껴지지도 않았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처음으로 작업하는 영화의 첫 씬부터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몇 백 개에 육박하는 테이크들에서도 계속 실수하면 어떡하지' ,
'역시 안될 놈은 안 되나 보네' , '그래,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내가 상업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무리였나 봐'
이 상태로 몇 초 동안 슬레이트만 들고 가만히 서 있었는데, 나한테는 그 순간이 마치 일 이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순간 감독님의 ‘컷!‘ 하는 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 불렀다.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하게 슬레이트의 테이크 번호를 2로 바꾸고 다시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았다. 두 번째 테이크는 아까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집중하면서 했더니 훨씬 나아졌다. 여섯 번째 테이크에서 처음으로 감독의 오케이가 떨어졌다.
첫 테이크에서의 실수 이후로 슬레이트와 관련된 이유로 NG가 난 적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첫 슬레이트의 실수에서 어느 정도 발전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오케이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하는 일보다 더 힘들고 낯설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주로 또래 주변에서만 사회생활을 해 온 10대인 내가 2~40대의 ‘프로'들이 일하는 현장에 급작스럽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들의 문화나 일하는 방식은 나에게 너무나도 새로웠고 각박했다.
특히 감독님과 배우분들 중 한 명이 연기 디렉팅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면서 내내 웃음을 띠고 있던 광경이 묘하게 웃기면서도 소름 끼쳤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다른 스태프들 중 소위 말해 ‘여기에 낄 짬'이 아닌 내가 이 현장에 와있는 사실 자체를 아니꼽게 여기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나를 좋아하지 않던 이들과의 관계는, 어떠한 결정적인 사건 이후로 좋아졌다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나고, 모두와 친구가 되어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아름다운 결말은 영화에서만 존재한다.
나에게 첫 현장은 굉장히 퍼스널한 경험이었다. 사실 지금 와서 그 영화를 다시 보면 캐릭터들과 서사는 안중에도 없고 ‘저 장면에선 장작에 불이 안 붙어서 촬영이 30분 정도 지체됐었지’ ‘아, 저 장면에서 내가 군복 입고 땜빵 채웠었지’ 등의 영화 외적인 생각들 밖에 나지 않을만큼 퍼스널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첫 현장이 그렇겠지만, 나에게 영화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게 한 경험이기도 했다. 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과 실제로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일이고, 그 한 단계를 더 나아가려면 수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고난이 가득했던 경험을 하면서 영화를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왜냐하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감상하는 것만큼 황홀한 것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와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24살 너드.
취미로 가끔씩 영화도 만든다
🍿 이번주 볼거리
환경이 죄를 만드는가, 죄가 환경을 만드는가. 소년법이라는 사회적인 쟁점을 판사 심은석 (김혜수 분)과 차태주 (김무열 분)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이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시선'이다.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엄벌에 처하는 '사이다' 결말에만 집중하지 않고, 엄벌주의와 온건주의라는 두 판사의 대립된 시선부터,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이들의 '시선'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입체적인 메시지가 눈에 띈다.
- 에디터 혀기
예술가이거나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되면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죠니'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해낸 앤드류 가필드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은 영화. 에술가는 살기 위해 창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하기 위해서 산다는 대사가 가슴을 후벼팠다.
- 에디터 우기
<주간영화>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처음 뉴스레터를 시작하는 에디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앞으로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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