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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이 되고 싶었지만 pt.1

‘어 꽤 유명한 사람이 캐스팅됐어. 000이라고 치면 네이버에 나올 거야.’

오랜만에 배우로 참여하게 된 작품의 감독님과 통화하던 중이었다. 감독님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었다. 이제 막 전역한 나에게 감독님은 나를 생각하고 쓴 배역이 있다며 같이 작품을 할 생각이 있냐고 연락을 주셨다.  

내가 맡은 캐릭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누나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폭력의 주범이었던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고 있는 인물이다. 첫 촬영을 앞둔 씬은 내가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와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전역하고 처음으로 임하게 된 작품인 만큼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버지 역을 맡을 상대 배우분이 어떤 느낌인지 미리 연구해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감독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이병헌, 한석규, 안성기 등과 같은 분들과 호흡을 맞춰본, 거의 40년간 배우로 살아온 베테랑이셨다.

부담감이 팍 상승했다.

이런 분과 호흡을 맞춰보게 될 텐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군대에서 녹슨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 발악을 했다. 먼저 내 캐릭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싸늘함이었다.

그것이 이 인물이 행동하는 동기였다. 다만 그런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반복된 가정 폭력으로 억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감정도 억눌려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준비했다. 마치 <파수꾼>, <거인>의 인물들처럼 폭발하기 직전에 이른 인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리딩 전날에만 김태용 감독님의 <거인>을 두 번 넘게 봤다. 특히 주연을 맡은 최우식 배우님이 신인 연기상까지 받은 작품인 만큼, 독립영화 특유의 '날 것 그대로의 연기'에 대한 지식을 얻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더욱 챙겨 봤다.

마침내 대망의 리딩 날이 됐다.

모이기로 한 장소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분은 오지 않으셨다. 미리 도착한 배우분들, 그리고 스텝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몇 분 뒤에 문이 열리고 아버님 배우와 감독님께서 들어오셨다. 다들 일어나서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자 리딩이 시작되나 했다. 하지만 아버님 배우분께서 먼저 입을 여시고 작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한 2~3분동안 말씀하셨다. 작품 제목이 주는 의미, 인물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이다. 감독님께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시면서 ‘맞는 말씀이다’라고 하신 뒤, 모인 전원의 간단한 자기소개 후 본격적으로 리딩을 시작했다. 리딩을 시작하자마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우리가 현실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정말 ‘일상적’인, ‘힘을 뺀’ 연기를 준비해 갔었다. 하지만 아버지 배우님은 전혀 반대였다. 흔히 대중들이 말하는 ‘연극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상업적’인 연기를 하고 계셨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 볼법한, 한마디로 ‘표현’에 중점을 둔 연기다. (물론 연기란 당연히 표출하는 것이지만 표출의 강도에서 차이가 온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아버지와 내가 대면하는 씬의 에너지는 합이 끔찍하게도 맞지 않았다. 리딩이 끝나자 다들 박수를 짧게 치고 본격적인 피드백이 시작됐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피드백도 오지 않았다. 

‘아 감독님 저는 뭐 피드백 주실만한 점 있었나요?’

‘아 아니~ 너무 좋았어~’

감독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버지 배우분께서 입을 여셨다.

‘저 감독님 혹시 제가 피드백을 좀 줘도 될까요?’

방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감독님께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 좋아요~’ 라고 하셨다. 아버님 배우께서는 나보고 대사에 감정을 더더욱 실어야 자신도 그만큼 감정을 끌고 올라가는 게 납득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연기 톤을 아예 바꿔보자 하셨다.

‘자 해보자.’

‘진짜 몰라서 그러세요?’

‘더 표현해! 더!’

‘진짜 몰라서 그러세요?’

‘거기에서 더!’

하지만 당장 내 머릿속에서는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아 그분이 원하시는 정도의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나에게서 나온 것은 얕고 공허한 외침뿐이었다. 상대 배우님은 그럭저럭 이 정도면 되겠다는 표정이셨다. 

‘어때요 괜찮죠 감독님?’

‘아 네~ 좋아요.’

감독님은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쉬는 시간에 나는 감독님에게 다가가 내 연기에 대해 피드백 할게 진짜로 없었는지 물었다. 그러지 감독님은 ‘자연스러운, 마치 다큐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좋을 것 같아.’라고 하시며 상대 배우의 피드백에서 가져갈 것만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리딩이 끝났다. 나에게 촬영전까지 캐릭터를 완전히 다시 연구하기 위한 일주일만을 남기고 말이다.

(2부에서 계속) 

영화와 게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24살 너드.

취미로 가끔씩 영화도 만든다.

작업하는 단편 영화가 상영을 앞두고 있다.

🍿 이번 주 볼거리

제목만 들어도 어디선가 스산한 그 특유의 테마곡이 떠오르는 <환상특급>이 조던 필을 만났다. <겟 아웃>과 <어스>를 만든 그 감독, 맞다. 두 영화보다 앞서 제작된 환상특급 시리즈에서는 조던 필 특유의 미스터리한 감성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블랙미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환상특급>은 <블랙미러>와는 달리 온전한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모호함으로 포장된 비유 속에서 메시지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는 시리즈. 참고로 웨이브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리플레이>.

글로 이것저것 해보는 콘텐츠 에디터.

구독하는 OTT 서비스만 5개,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다가 기어코 뉴스레터까지 손을 댔다.

구독자 이벤트를 위해 치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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