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던 삶

2024.09.01 | 조회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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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하루쯤

구독자님 오늘도 반갑습니다! 8/31 날짜에 출판사 '파도'에서 진행한 유서 쓰기라는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여전히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죽음과 관련된 글을 작성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8월 31일 15시 합정역 7번 출구 앞 성지빌딩으로 들어갔다. 입추와 처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염경보가 발효된 낮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버스에서 하차 후 한 손에는 카페에 들러 포장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사실 낯선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생각을 말하고 듣는 과정이 익숙지 않은 내게는 꽤나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게 존재했다. 진행자(이하 파도)를 포함해 일곱 명이 작은 공간에 모여 세로로 긴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어디를 가든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공간에는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기류가 흐르면서 침묵이라는 약속도 함께 공존한다. 

 먼저 파도의 설명과 함께 수업은 시작됐다. 유서라는 장르는 쉽게 작성하거나 써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부터 시작할 수 없다고 했다. 죽음은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필연적인 존재이고 한 명도 틀림없이 마주해야만 한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수업의 요점은 죽는 순간이나 시간, 또는 과정을 직접 선택해 예견된 죽음이라는 가정을 세워 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고나 병으로 인해 세상과 인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사'라는 가정을 세웠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유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서를 작성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앞서 말했듯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내가 머릿속으로 죽음 앞에 서서 당신께 읽어드릴 글을 쓴다고 하니 도무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평생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살아가는 내게 유서는 또 타인에게 미안함을 전달하는 사과의 편지에 불과했다. 

이 글이 발견 됐을 때에는 제가 어떤 형태로 세상에 존재하는지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영혼이 떠난 육신이 어떤 네모난 곳에 들어가 있다면 그것을 뜨겁지 못했던 제 삶보다 더 뜨겁게 태워 하얀 가루로 남게 해주세요. 그렇게 가루가 되었다면 저는 죽어서도 부모 곁에 머물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생전에 다하지 못했던 효는 죽어서까지도 다 할 수 없으니 영원히 당신의 아들로 남아있으렵니다.

유서 초고 일부 발췌

 몇 번을 읽고 수정에 속도를 붙이려 노력해도 힘이 생기지 않았다. 파도는 유서를 작성할 때 꾸밈이 없어야 한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평소에 쓰던 글 습관이 나타났고 결국 화려한 겉모습에 방점이 찍혔다. 모든 사람의 작성이 완료된 후 소감을 말할 때 나 혼자서만 어렵다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각자의 의견이 겹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 수업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파도는 유서 작성 전, 자주 쓰는 노트와 펜을 준비하라고 했고, 그것을 자주 열어보며 계속해서 고쳐 나가라는 의미였다. 그와 동시에 친구들과 만나 같은 행위를 해보라고 했다. 익숙한 관계부터 그렇지 않은 관계까지, 세상에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유서 쓰기 수업에 참여한 후기를 작성했다.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이미 정해진 운명 속에 있는 하나의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운명론을 믿지 않지만 죽음에 있어서는 기꺼이 믿는 편에 속한다. 천재는 신께서 능력에 반비례하는 수명을 주었고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에겐 그것을 반대로 적용시킨 것처럼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운명을 마주하기 전에 짧게나마 유서를 작성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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