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을 나선다. 유난히 깨끗한 하늘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조금씩 꿈틀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움직이는 가슴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걷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어제 밤 잠들기 전 문상훈의 오당기를 시청했다. 문상훈 특유의 때가 되면 찾을 수밖에 없는 그 매력에 이끌려 그가 다녀왔던 길을 복기했다. 영상의 대략적인 내용은 광화문에서부터 경희궁까지 단풍이 짙게 물든 가을과 쌀쌀한 날씨에 재킷을 입었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다닌다 (영상 마지막 즈음엔 '로뎀나무'라는 떡볶이 가게에 방문하지만 나는 생략했다, 하지만 영상의 주제는 떡볶이를 먹기 위한 과정을 담는 것이다).
나는 그와 똑같은 산책을 하고 싶었다. 집에서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광화문에 도착해서 펠트 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장하고 서울역사박물관을 뒤로 경희궁에 가는 길을 따라 한참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듯한 느린 발걸음으로 유도했다. 익숙한 풍경을 느리게 곱씹어 보는 일만큼 푸른 행복을 느끼는 때가 또 존재할까 생각한다.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색상은 초록색이라고 한다. 우리가 모두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가을 산책의 행복이 푸르렀던 이유는 아직 단풍이 오지 않고 녹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짧고 따뜻했던 산책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 앞에 있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을 가지고 나온 걸 후회하는 시점도 존재했지만, 기억이 휘발되어 사라지기 전에 온기가 남아있는 감상을 쓸 수 있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은 적당한 날씨였다. 춥지도 않았고 덥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욱 산책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이런 순간은 지속성이 길지 않다는 사실이 때로는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지만 온전히 그날을 느낄 수 있는 건 주어진 시간이 짧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여유가 주어지면 곧바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이 며칠 되지 않는 순간을 영원토록 간직해야겠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