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매미와 청혼과 궁금증

2024.07.15 | 조회 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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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오는 곳

그치만, 그래도, 어쨌던 외로운 건 외로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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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미

여름이 진짜로 오기는 왔는지 아침에 일어나면(때로는 대낮이다)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방에서는 잘 안 들리고, 거실로 나가면 은은하니 백색소음같다. 고요한 집에 매미 울음 소리만 조그맣게 들려오는 것은 여름에만 들을 수 있는 음원이다. 그 음원을 들으면서 냉장고에 차가운 수박이 있다는 게 생각나면 금상첨화다. 그 순간은 우리 집이 지상 낙원.

유년기 시절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의 산책길을 거쳐야 했다.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길이었다. 여름에는 그곳이 늘 고역이었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안 그래도 더운데 더 푹푹 찌는 것 같았으니까. 야, 너만 덥냐? 조용히 좀 해. 날파리나 영 이상한 벌레들이 내 몸을 기어다닐 것만 같아서(그리고 가끔 그런 일이 생기기도 했고) 그곳에서는 박차를 가해 더 열심히, 빠르게 집으로 걸어갔다. 

 

2. 이소라와 윤도현의 청혼

오늘 편지의 제목

눈 감았다 뜨면 저 방송 녹화 현장이었으면 좋겠다. 이소라와 윤도현이 노래 부르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했을 시민들이 부러워서 내 꿈에라도 나왔으면 싶다. 영상 맨 처음에 윤도현이 힘겨워하면서 노래를 더듬더듬 부르는 것도 이소라가 힘겨워하는 윤도현을 쳐다보면서 짓는 미소도 너무 좋아서 자꾸 보게 된다. 윤도현에게 가사를 나지막히 알려주는 이소라는 더 더 더 좋다. 윤도현이 참다못해 락 발성으로 '반한 것 같아' 라는 소절을 내지를 때가 제일 웃기다. 

그나저나 나는 <최정훈의 밤의공원>을 보고 온 적이 있으니, 한 이십 년 정도 지나면 나를 부러워할 누군가가 있으려나?

 

3. 궁금해 미치겠다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도 솔직히 모르겠다. 어디서 본, 그럴싸한 이미지의 결합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최악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으니 나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데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생각을 해보긴 하는데 빛이 탁하다. 몇 주간 이런 답답한 상태로 계속 지내다보니 궁금한 게 생기면 연락 하라던 교수님의 말씀이 불현듯 생각나 어떻게 연락을 드릴까 며칠을 고민했다. 진짜 연락 해도 되나? 방학인데? 귀찮지 않으실까? 괜찮을까? 그런데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 거지? 지금 내 상태를 호전시킬 질문은 무엇이지?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이지? 갈 곳 없는 질문들이 쌓이다보니 머리가 무거워져서 홧김에 문장을 적었다. 

요즘들어 어떤 작업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고민인데요, 선생님께서는 다음 작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 어떻게 얻으시는지, 만약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깔끔했다. 역시 분노로 휘갈긴 문장만이... 교수님께 예의를 담아 인삿말 몇 문장을 더 덧붙여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 너무 욕심내지 않아야 아이디어도 나오지... 평소 관심, 사소한 것에 눈을 돌려바^^

답장 받고 ㄹㅇ 이 표정 됨
답장 받고 ㄹㅇ 이 표정 됨

저 답장 뒤로도 몇 자 보내주셨는데 기대한 바(현직 작가의 Top secret)가 있어서 그런가, 솔직히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서 교수님은 어떻게 하시는지를 알려달라고요. 전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고요.

섭섭한 마음 꾸역꾸역 안고 주신 조언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았는데,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바란 것이 요행이라는 것 쯤은 잘 알겠더라. 교수님께서도 내가 너무 조급해보이셨나보다. 아무래도 지금 너무 평탄히 살고 있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것 같다. 조금 다이나믹한 일이 벌어져야 해. 예를 들면 뱀파이어 신부와 사랑에 빠진다거나(박찬욱 <박쥐>) 신세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던가 하는...(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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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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