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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랏샤이마세!"
비밀스러운 숲에 싸인 듯한 이곳. 노부부가 듣기만해도 포근한 목소리와 정겨운 미소로 맞았다.

일인당 1만 원 남짓한 스시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맛은 리뷰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자신할 정도. 밥알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완벽한 '초밥', 신선하고 두툼한 숙성회, 그리고 오리지널의 품격이 느껴지는 나가사키 짬뽕.
황홀경에 빠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서 왔는지, 이 시골까지 어쩐 일이냐'며, 그들은 마치 손주를 대하듯 우리를 반겼다.

음식의 맛과 대화의 즐거움에 완전히 심취해 있을 때였다. 할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근데 손님, 여기서 자요?"
"아...! 맞다."
그랬다. 막차. 3시 20분. 하나밖에 없는 버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게 종이로 손수 출력해두신, 손 때 묻은 버스 시간표를 보신 할머니의 얼굴이 하얘졌다.
"주우고훈(15분)!"
"어머나, 15분밖에 안 남았어요!"
모두가 당황한 그 순간, 주방에서 밥 뜸들이기를 마친 할아버지가 툭 한마디 던졌다.
"내가 태워줄게. 가까워."
나는 당황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그래요! 저는 고작 초밥 하나 먹었는 걸요! 숙소를 찾아보던가 할게요"
"그럴시간 없어, 가까워. 타!"
'일본인은 남 돕는 것에 있어서 소극적이다.' 라는 편견이 녹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의 낡은 차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요이타비요(여행 잘해)!"
"혼또니 아리가또고자이마시다(정말 감사했습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정신없이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시간을 보니 버스가 오기까지 5분이나 남았다.
'할아버지의 대가없는 친절이 아니었다면 여기 있을 수 없었겠지'
이전까진 일면식도 없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친절에 가슴에서 무언가 찡한 것이 올라오는 듯 했다.
5분이 지났다. '일본에선 버스 시간표가 1분도 틀린 적이 없는데...' 그 때서야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정류장이라곤 풀이 무성한 졸음쉼터 같은 곳뿐. 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라... 왜 안오지...?'
시간 약속 철저한 일본에서, 15 분이 지나도 버스 비슷한 건 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잘못된 곳에 내려줬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 때쯤, 저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달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버스에 올랐다.
에필로그: 여행을 마치며
'정보가 없다'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고즈넉한 마을의 공기를 몰랐을 것이다.
동화같던 비밀의 카페와 커피도,
50% 세일이라는 행운도,
'인생 스시'의 황홀함도,
그리고 막차를 놓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만난 '귀인(貴人)'의 따뜻함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은 인생의 복사판이다.
좋아하는 것 하나에 미쳐 계획한다. 걱정 따윈 없다.
기대에 부푼 마음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섣부른 희망만 가득하다.
그 계획엔 불가능해보이는 것들과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길, 어리석다고 하는 것들이 포함돼있다.
눈 가리개를 착용한 경주마와 같이 이런 고통쯤이야 가뿐히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개척에는 두려움과 반드시 상응하는 고통도 뒤따른다.
논리적인 눈으로 조금만 떨어져서 보기만 해도, 새로운 곳을 여행할 이유는 '전혀 없다'.
여행의 비효율성과 비상식성
혹자는 여행은 인간만이 가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하긴, 로봇 시대가 왔을 때, 이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의 끝인 여행, 새로운 길에 대한 개척을 로봇이 스스로 하고 있는 장면은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개척에 대한 그런 것들(비효율성과 비상식성)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니, 좋아하는 것에 미쳐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면,
사람은, 떠난다. 낯선 땅으로, 낯선 영역으로, 낯선 곳으로, 낯선 일로, 지금까지 인류가 그래왔듯.
그리고 결국엔 처음 계획했던 것 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을 마주한다. 때로는 당황하고 때로는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가장 약하고 역겨운 부분까지도 마주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거기서 비로소 전혀 새로운 것들이 시작된다.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들이 깨어지고, 새로운 구상들이 떠오르며, 그리고 하늘에서 보내준듯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이유도 모를만큼 값없이 나를 돕는다. 이내 돌파구를 찾아내 더 좋은 것들을 만난다.
무엇보다, 어느정도 지나면 처음에 계획 했던 목표와 계획의 성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그 과정에 있다는 내가 자랑스럽고 기쁠 뿐. 그래서 이 여정 자체가 값지다.
개척하는 그 걸음 자체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름 모를 돕는 손길과, 함께 울고 울었던 사람들이 남는다.
이 모든 과정이 삶의 만족감과 희열, 인류애로부터 오는 바꿀 수 없는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
불확실성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가장 값진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아! 맞지, 이래서 여행하지!"
라고 외치기 위해.
떠나자. 지금.
(아무도 가지 않는 길, 하사미(波佐見) 개척기 마침.)
(구글맵에 저장 가능!)
사가현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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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e
따듯한 여행의 물결이 가슴에 와닿네요. 동화속으로 잠시 다녀온 느낌.
화이트크로우
동화 같은 이야기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나에 미치면 앞뒤 안보이는 건 제 성향인듯 싶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느낀 것을 공유해봤습니다. gore님은 무언가에 미쳐 아무것도 안보이고 그것에만 몰두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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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블
점심시간에 글을 읽어서 그런지 사진 속 초밥이 정말 맛있게 보이네요ㅎㅎ. '우리'라는 말에 잠깐 같이간 일행은 어떻게 느끼셨나 궁금했어요~
화이트크로우
엄청난 눈썰미시군요!ㅎㅎ 커피를 저만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 스시에도 엄청나게 만족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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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guo
제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알게되었네요. 따뜻한 사진까지 힐링하고 갑니다!
화이트크로우
Dinguo 님의 여행기도 궁금해지네요! 여행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올 때가 종종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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