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기

히말라야 오디세이 (4/6)

어둠은 신의 배려였다

2025.11.24 | 조회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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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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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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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추는 연습

새벽 3시.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지대.

산소는 희박하고,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친다.

그저 다음 발을 떼는 데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뿐이다.

출발하기 전 우연히 봤던 김연아 선수의 명언이 주문처럼 머릿속을 왱왱 맴돌았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생각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두려움이 자라난다.

힘들다, 춥다, 언제 끝날까.

이러한 잡념들을 차단하기 위해 나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내 헤드랜턴이 비추는, 딱 한 걸음 앞의 흙바닥. 그 순간 내 세상은 딱 그만큼이었다.

 

가이드는 굳이 이 춥고 어두운 새벽에 출발을 서둘렀다.

우리는 그저 그의 경험을 믿을 수 밖에.

바로 앞사람의 뒷꿈치를 따라 말없이 다음 발을 뗀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숨이 멎을 것만 같던 고비를 넘기고, 여명이 밝아왔다.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세상의 윤곽이 드러났다.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 ......! "

 

나도, 아버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등 뒤로 펼쳐진 광경은 압도적이다 못해 공포에 가까웠다.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수 킬로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절벽

우리가 걸어온 길은 "길"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왼쪽으로는 낭떠러지, 오른쪽으론 산사태 위험 구역
왼쪽으로는 낭떠러지, 오른쪽으론 산사태 위험 구역
첨부 이미지

 

4,000 미터 급 산*들의 등성이를 따라 까마득하게 먼 곳에 우리가 출발한 곳이 보였다.

끝도 없이 이어진 그 길고 험한 길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저기를 걸어왔다고? 저 깎아지른 절벽 옆을, 저 아득한 거리를?'

 

가까워보이지만 사람의 크기를 보면 어떤 느낌일지 가늠해볼 수 있다.
가까워보이지만 사람의 크기를 보면 어떤 느낌일지 가늠해볼 수 있다.

 

대낮의 환한 빛 아래서 가야할 길을 미리 보았다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길.

아마 시작도 전에 그 규모에 압도되어 포기했을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가이드가 아무 말 없이 새벽 2시에 우리를 깨운 이유를.

'처음부터 이 길이 다 보였다면, 우리는 지레 겁먹어서 절대 못 올라왔겠구나.'

'어둠은 이런 두려움을 차단하고, 오직 발끝만 보고 걷게 하기 위한 그의 전략일 수도 있겠다.'

 

 

 

작은 호롱불

 

그 순간, 성경의 한 구절이 가슴에 박힌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시니이다.'

 

여태 나는 이 등이 환한 횃불 정도로 상상했다.

어찌됐든 '신의 강함을 나타내는 좋은 뜻일테지' 하면서.

내 인생의 앞 길을 환히 비춰주는 강력한 빛 말이다. 그래서 늘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알려주세요. 알아야 안 불안하죠."

 

거리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규모
거리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규모

 

하지만 그 등은 횃불이 아니었다. 현대의 서치라이트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작은 호롱불. 딱 내 발 앞, 몇 걸음만 비춰주는 희미한 불빛.

 

 

신은 왜 우리에게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가.

 

왜 우리를 캄캄한 무지(無知) 속에 그대로 두시는가.

 

완주하는 동안 있을 고난의 길을,

한 발짝 헛디뎌도 아찔한 깎아지른 절벽을 미리 다 보게 된다면,

우리는 지레 겁먹고 도망칠 것이다. 주저앉아 포기할 것이다.

 

어쩌면, 신은 우리의 이런 나약함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첨부 이미지

 

그에게 어둠은 방치가 아니라, 가장 깊은 배려일지도.

한 치 앞만 보여주며, "딱 이만큼만 걸으라" 고 말하는 것 같다.

 

창업의 길도, 내 인생의 길도 그러하리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막막함이, 사실은 나를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신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른다.

 

첨부 이미지

 

다시 배낭을 고쳐 멘다.

여전히 정상은 보이지도 않지만, 이제는 나를 감싸는 어둠이 두렵지 않다.

 

(4부 마침. 5부에서 계속)

 

  • 저자 주: 히말라야에서는 4,000 m 급 언덕(?)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언덕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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