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11

2023.02.11 | 조회 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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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고 안아주는

노래하며 사는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보낼게요

아침에 눈 뜨면 방금 꾼 꿈을 다시 떠올려봐요. 매일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기억이 난다면 이부자리 옆에 놓아둔 노트에 씁니다. 아침일기 삼아 쓰는 거예요. 그 일기에는 방금 전의 꿈도 쓰고요. 그 순간의 생각을 나오는 대로, 손가는 대로 씁니다. 책 <아티스트 웨이>에 나오는 '모닝페이지'를 쓰는 거랍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토요일 아침이에요. 밤새 안녕히 주무셨나요 :)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하는지 쓰면서 편지를 시작해보았습니다.


눈물

일주일 전이에요. 스무명 남짓의 모임에 갔습니다. 속마음을 나누는 자리였고요.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를 나누는 게 그 자리의 시작이었어요. 저는 그저 '그 자리에 끼고 싶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게 제 마음의 전부였다고 생각했는데요. 앞서 이야기를 꺼낸 분의 '나를 만나러 오는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와버렸어요. 나도 나를 만나러 왔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을 만나러 왔다고나 할까요. (그러고보면 눈물이 항상 먼저예요, 눈물이 나는 순간 혹은 자리가 있고, 그 다음에 눈물의 이유를 알게돼요. 한참 후에 알게될 때도 있지만.)

여기서의 나를 만난다, 내 마음을 만난다는 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듣다보면 조금 전처럼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고요. 한 사람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서 또 나를 만나요. 이날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말에 조심스러워하는 마음도 만났어요.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른 한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는 탄식, 탄성과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은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성큼성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를 만났던 거죠. 제 반응이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말이 될까 봐, 말을 아끼곤 했는데.. 저렇게 하는 거구나, 저렇게 해도 괜찮구나, 배우고요.

제게 감성적인 자극을 받는 순간이 언제냐 물어오신 분이 있어요. '감성'이라고 하니 저의 눈물이 떠올라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졌습니다.


책과 음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다 읽고, 요즘은 <나는 내가 좋고, 싫고, 이상하고>를 읽고 있어요. 지난해에 읽었었지만 다시 읽는 중이에요. 좋아요를 표시한 가장 최근의 곡은 Maria Toledo, Luiz Bonfa 둘이서 부르는 'Pequeno Olhar', 막스 리히터의 'Dream 1' 입니다. 그리고... 요 몇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책, 마음을 울리는 책은 <당신이 옳다>랍니다. 위에 제가 참여한 모임도 이 책 덕분에 갔지요.


계획

구독자 님, 새해가 되니 계획을 세워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진 않나요. 저는... 연초에 계획을 잘 안세우는 편이에요. 날이 따뜻해지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데 (생길 수도 있는데) 겨울에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억지로 생각해내기는 싫어서 계획 없이 새해를 시작합니다! 이것에 관련해서 쓴 글도 있어요. 마리끌레르 2023년 1월호 '비우고 시작하기' ② 나무는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 시와 


불안과 꿈

알고보면 '불안'은 너무나 친숙한 기분입니다. '이대로 괜찮을까'를 자주 생각해요. 요즘의 '이대로'는 곡도 안쓰고 녹음 작업도 미루고, 음악 활동을 위한 직접적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며 지내는 모습'이에요. 이번 겨울, 지난 두 달 간 그랬고.. 이제 조금씩 올라오고 있어요. 깊은 물에가라앉아 있다가 발을 구르고 헤엄쳐 올라오는 중이랄까요. 다만 헤엄치다 멈추고 헤엄치다 멈추는 것을 반복하고 있어요. 속도가 느려요. 

불안이 친숙하다고 쓰고보니 지난 주의 꿈이 떠오르네요. 속의 저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변기에 앉기까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누가 안에 있어서 얼른 닫고, 그가 나오길 기다리다 들어갔는데 글쎄 변기가 없지 뭐예요. 청소도구 칸 처럼 이런 저런 물건이 많은 곳이었어요. 다시 찾아간 화장실은 변기가 어떤 선반 위에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선반 위의 길에 발 디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장식품들이 놓여있고요. 끝내 변기에 앉았는지는 기억이 없고요.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일이 잘 안풀리는 이런 꿈 자주 꾸거든요. 익숙하죠. 꿈에서 깨어 요새 내가 뭘 잘 표현을 못하고 지내나 잠시 의문을 품다 그만뒀어요. 그런데...! 방금 친숙한 불안이라 쓰고나니 화장실을 못 찾는, 변기에 못 앉는 상황이 '불안'과 연결되네요. 꿈이 제게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 알겠어요.

저는 불안을 피해왔어요. 불안이 느껴지면 그것을 잊을 것들을 찾으며 살아왔어요. 드라마 시리즈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들이 그럴 때 제가 쉽게 취할 수 있는 거였어요. 쉽게 취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이 권태로워지면 다시 불안이 보이는데, 제대로 마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마주한다는 건 불안을 해결하려 한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안에 머무는 것에 가깝죠. 아직 잘 해내지 못하니까 하는 말인데요. 우선 '나 불안하구나..'를 말해볼래요. 그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불안을 이야기할 친구가 있다면 좋겠어요. 


길상사에서

2003년 혹은 4년에 만든 곡이에요. 당시 음악치료를 받고 있었는데요. 치료사 선생님이 생각을 멈추고 느끼기를 해보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저는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에 가서 어느 돌계단에 앉아 눈 앞의 커다란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나무의 윤곽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옮기는 동안 '느낌'의 시간을 갖는다고 믿으면서요. 그러다 가사와 멜로디가 떠올라 노래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오늘 편지가 좀 길었죠. 질문해주신 것들에 답을 해보려는 마음에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어요. 질문에 해당하는 말은 초록색으로 표시해두었어요. 오늘 편지에 다 못한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 또 쓸게요. 말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또 만나요.

편안한 밤과 낮 보내시고요.

 

2023년 2월 11일, 시와 드림

아침 일기를 쓴 다음에 차를 마셨습니다. 오늘은 보이차 :)
아침 일기를 쓴 다음에 차를 마셨습니다. 오늘은 보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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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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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over 1 year 전

    질문 받아주시고 답을 해주시니, 마치 앞에 시와님이 있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에요, 기분이 몽글몽글해졌어요. 감사합니다☺️ 길상사는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자주 가서 걷고 싶고 바라보고 싶은 곳이에요, 시와님 노래와 함께 떠올리니 너무 좋네요. 저도 이런저런 새로 시작될 일들이 너무 부담이 되어서 불안한 요즘인데요, 도망간다-마주한다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아요. 주춤거리더라도 일단 나아가 보려고요. 불안함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의 눈을 보고 손을 잡으면서요. 메일 늘 감사합니다. 위로가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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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잔디

    1
    over 1 year 전

    시와님... 마음 담긴 답장 고맙습니다 사랑, 사람, 마음을 향한 당신의 시선이 저에게로 햇살처럼 비추어와요 따뜻해졌어요 고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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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키초키

    1
    over 1 year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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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화

    1
    over 1 year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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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 재은

    1
    over 1 year 전

    오.. 저도 화장실 찾아 헤매는 꿈 종종 꾸는데, 그냥 진짜 화장실 가고 싶었나보다, 고 생각하고 말았죠ㅋ 불안이라. 그럴수도 있겠군요. 전 그냥 진짜 화장실이 급해서인것 같지만ㅎㅎㅎ

    ㄴ 답글 (1)
  • reumreum._.

    1
    over 1 year 전

    주변은 봄이 온다고 말하는데, 저는 아직 겨울에 사는 것 같아요. 핫팩같은 편지 덕분에 조금은 따스해진 느낌입니다. 저는 요즘 시와님의 '잠 못드는 당신에게'라는 곡을 자주 듣고 있어요. 노래가 되어 제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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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혜

    1
    over 1 year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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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4)
  • 꼴찌PD

    1
    over 1 year 전

    답이 늦었네요. 불쑥 예고없이 도착한 님의 편지와 길상사에서 라는 곡이 을씨년스러운 요즘 참 위로가 돼서 좋았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클릭해서 길상사에서 를 듣는 순간, 이 답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듣고 있습니다만, 길상사를 아직 가보지 못한 1인인데도 길상사 어느 한 구석 의자에 앉아 따사한 햇살을 맞으며 쉼,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 또 좋았습니다. 저는 요즘 하루의 시작을 스트레칭과 걷기로 시작합니다. 체중과 혈압이 예전 같지 않아서 운동부족인 게으름뱅이가 그나마 걷기라도 하자는 일념으로 하루 만보는 걷고 있지요. 걸어서 동네 성당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짧은 기도를 하기도 하고, 수변 산책로를 걸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리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한 때는 눈 뜨자마자 꿈이 생생하게 기억되면 노트에 꿈을 기록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도대체 '꿈'은 누가 연출하는 단편영화인가? 가 제 궁금증이었죠. 내가 꾼 꿈이니까 내가 연출한 단편인가? 하다가도 나에게 이런 연출력은 없는데... 하며 도대체 어떤 의식이 이렇게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는 걸까? 궁금해서 기록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사실 감성을 자극 받았던 때도 있었고요. 초록색 질문에 짧게 답을 적어 봤습니다. 또 어느 날 불쑥 님의 편지와 노래를 듣는 날이 기대되네요. 항상 건강하고, 좋은 노래 이야기 이어가 주세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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