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흙탕물에서 진주를 찾는 법

부단하게 움직인 끝에 발견하게 되는 것

2026.08.22 | 조회 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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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의 3가지 측면이 있는 거예요. 고통, 불확실성, 끝없는 노력. 반드시 이 세 가지는 감수하고 살아가야 해요.
< 스터츠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 중에서 

월급 받는 일을 한 지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그중 5년 8개월을 당근마켓과 함께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당근마켓에서의 여정을 돌아보니 일을 대하는 마음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력서에 남길 성과나 커리어의 발전보다 나에게 맞는 삶의 태도를 발견한 것이 가장 감사한 수확인 듯합니다.

당근마켓에서의 시간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흙탕물에서 진주를 찾는 모험 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중고거래로 국민 앱이 된 당근이지만 신사업의 기회를 발굴하는 것은 사해(四海)에서 바늘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PMF(Product Market Fit)[1]​을 찾는 과정은 팀원들과 매일 창문 가린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퇴사를 앞두고 많은 분들이 물었습니다. 어둡고 답답한 길을 왜, 어떻게 그렇게 오래 걸었나요? 그 끝에서 결국 무엇을 발견했나요?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버텨낸 끝에 얻은 것은 (또는 잃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리해두면 미래의 나, 또는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글로 정리해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 

 

망친 결정을 했다는 착각 


일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하지 않을 것인가. 바닷가에서 진주를 찾으려면 어딜 팔 것인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서쪽부터 파는 게 좋을까요? 찾고자 하는 게 진주라면 "진주 조개는 뻘이 많은 서해에 살 것이다"라는 가설이라도 세워볼 텐데. 우리가 찾는 게 진주인지 다이아몬드인지도 모르는 어떤 "가치 있는 것"이라면요?

목표와 전략의 부재는 분명 일을 잘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오히려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원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확률론적 결정에서 망친 결정은 없다. 이 간단한 원칙이 팀과 제품을 성장시키고 일하는 저의 마음을 지키는 데 늘 도움이 되었습니다.

의사결정은 정답 찾기가 아닙니다. 2+3=5라고 말하는 것을 의사결정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무엇이 답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쪽에 베팅하는 것이 곧 선택과 판단의 과정입니다. 포커 게임을 생각해보면 성공한 베팅이냐는 결과론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멋지게 베팅했지만 운이 정말 나빠 모두 잃을 수도 있는 게 게임이고, 일이고, 삶인 것 같습니다.

카밀라 팡은 책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에서 의사결정 모델을 상자 vs 나무 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합니다. "상자"는 판단을 위한 명확한 증거와 대안을 모아 최선의 판단을 시도하는 사고 모델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상자 속 데이터가 정답 찾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의 세계에서는 상자들이 그저 호더[2]​가 모은 쓰레기가 되어버릴 때가 많다고 합니다.

"나무"는 정답을 모르지만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사고 체계입니다. 가지가 가닿은 곳의 결과가 좋지 않아도 다음 가지, 혹은 다른 가지를 새로 키워나가면 됩니다. 망한 결정을 해버렸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실패는 결과일 뿐, 잘못 뻗은 가지는 새로운 의사결정의 출발점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뻗어나가는 마음입니다.

나무처럼 생각하기는 우리 주변의 복잡성을 반영하며 동시에 우리가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상자가 밟히고 부서져서 영원히 사라진 후에도 의사결정나무는 수백 년을 버틴 참나무처럼 그 어떤 날씨에도 맞설 수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것> 중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늦은 봄 터널, 5월>
데이비드 호크니, <늦은 봄 터널, 5월>

 

나만의 파동과 프리즘


고백하자면 당근마켓에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제 결정을 후회했습니다. 갯벌에서 진주 찾기가 제게는 너무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 같아 보였거든요. 팀원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두려웠습니다. 맨땅에 헤딩이란 말이 멋져 보이긴 해도, 내 머리만 깨지고 끝나는 거 아닌가 겁이 났습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작성해 둔 대차대조표가 있습니다. 당근마켓에서 더 버텨보기 vs 이전 직장으로 돌아가기. 두 선택지를 두고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점수로 매겨 비교해보려 했던 건데요. 이제 와서 보니 두려움에 편파적으로 점수를 매긴 게 눈에 환히 보이더라고요.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 이 느껴졌습니다.

 

A 회사가 전 직장 돌아가기, B 회사가 당근마켓
A 회사가 전 직장 돌아가기, B 회사가 당근마켓

 

A 회사 돌아가기 -13점, B 회사 남아 버티기 -26점으로 당근마켓 완패. 그때 전 직장에서 신뢰하던 리더 분께서 조금 더 버텨보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5년 7개월을 더 다니게 되었는데, 인생의 은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신사업을 기대한 만큼 궤도에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카밀라 팡은 같은 책에서 두려움을 백색광선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눈을 멀게 할 만큼 밝은 빛은 무지의 공포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건 빛을 피해서 숨는 것이 아니라 빛을 잘 이해하는 것 입니다. 백색광선을 프리즘에 투과하면 다양한 파장의 빛이 보입니다. 막연했던 두려움을 하나하나 쪼개어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빛을 필요에 맞게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흙탕물에 손을 넣고 휘저으면서 진주를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파동과 프리즘을 가진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고객을 만나고 복잡한 시장 문제를 파고 들어가는 데 재미를 느낀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정함과 친절함으로 동료의 신뢰를 얻고, 팀워크로 더 깊고 빠르게 땅을 파는 법도 배웠습니다. 진주를 찾진 못했어도 내가 어떤 강점과 약점이 있는 사람인지는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단순히 우리의 삶에서 몰아내기보다는 통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필요하며, 두려움은 영감을 얻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것> 중에서 

 

서로 투명한 구슬이 되어


카밀라 팡은 자신의 프리즘을 개발하고 연마하기 위해 "투명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하지 않고 동료와 가족에게 보여주는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당근마켓에서 저는 본인의 불안과 고민을 먼저 털어놓는 솔직하고 좋은 동료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 덕분에 저 또한 제 약한 부분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1 on 1 시간은 회사에서 저의 안정감을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나의 불안과 약점을 꺼내어 놓는 것 은 무엇보다 임포스터 증후군[3]​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로가 투명한 구슬처럼 마음을 꺼내어 보이면서 팀에 신뢰가 점점 쌓여나갔습니다. 신뢰는 팀을 나아가게 하고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조나 힐의 다큐멘터리 <스터츠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에서 필 스터츠는 삶을 하루하루 구슬을 꿰는 것에 비유합니다. 삶은 어제 실에 꿰어 두었던 구슬 옆에 또 다른 구슬 하나를 연결하는 과정일 뿐이며, 그 구슬이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없이 매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요. 일이라는 것도 때론 대단해 보여도 결국 동료들과 매일 하는 구슬 꿰기 나 다름없는 듯합니다.

저에게는 사업의 성공과 상관없이, 좋은 동료들과 함께 엮어온 시간들이 보석처럼 반짝거리게 보입니다. 치열하게 또는 성실하게 매일을 엮어나가는 과정의 기쁨을 당근마켓에서 일하면서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덕분에 좀 더 오래, 길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았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번 주 일하는 마음 🌿


❶ 모든 결정은 확률 기반의 베팅이다. 망친 결정은 없다. 잘못 난 가지도 새 가지의 출발점이다. 

❷ 막연한 두려움을 쪼개면 통제할 수 있다. 심연 속에서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❸ 좋은 프리즘은 내 약점을 드러낼 때 나온다. 내가 먼저 마음을 꺼내어 보일 때 신뢰가 쌓인다. 

❹ 일이란 결국 동료들과 매일 하는 구슬 꿰기나 다름없다. 가치있는 건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나요? 이번 주에 일을 하며 찾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뉴스레터는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

 

함께 보면 좋아요 📚


  • 조나 힐, <스터츠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 영화 배우 조나 힐이 자신의 심리 상담가 필 스터츠와 마음을 다스리는 유용한 도구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꺼내어보는 비상약 같은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어요
  • 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 아스퍼거 증후군, ADHD, 불안장애를 가진 작가가 과학을 통해 이해한 세상과 사람에 대해 아름답게 풀어낸 책입니다. 책을 선물해 주신 김문희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각주

  1. [1] 고객 문제를 해결하여 제품과 시장이 맞아 떨어지는 상태
  2. [2]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으는 강박 장애가 있는 사람
  3. [3]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스스로 믿지 못하고 남을 속이는 사기꾼처럼 불안해하는 심리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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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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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하늘의 프로필 이미지

    가을하늘

    0
    5일 전

    첫 글 잘 읽었어요! :) 나무의 비유가 특히 좋네요.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싶어>의 ‘삽질’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라요. 결국 ‘삽질’이라 생각했던 노력과 선택들의 의미는 한참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와 통하는 면이 있는 듯해요. 저는 언젠가부터 후회없는 결정을 하려고 고뇌하기 보다 그냥 내가 선택한 것에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것으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해요. 물론 선택이 나를 고통으로 이끌때 과감하게 멈추고 새로운 길을 탐색하고 선택하는 것도 나에 대한 책임의 일환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인생에 ”망한 결정“이란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ㄴ 답글 (1)
  • 제시의 프로필 이미지

    제시

    0
    3일 전

    데이먼 이렇게 화려한 글솜씨를 어떻게 숨기셨어요!!!!!! 자주써주세요! 너무 재밌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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