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피디로 일을 하면서 '내가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한다고 했나' 아찔한 적도 있지만 그것이 장사든 예술이든 잘 맞기만 한 직업이 어딨겠는가. 다만 크게 애쓰지 않아도 잘 풀리는 순간을 종종 겪으면서, 나는 이 일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대할 수 있게 된 지금이 더없이 만족스럽다.
<비효율의 사랑> 중에서
이번 주로 행복했던 짧은 휴가도 끝이 나네요.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에 글을 써두고 싶어 조급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김치코미디>라는 팀으로 공연 중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정성은이 뉴스레터 좀 그냥 편한 마음으로 갈겨 쓰라고 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써보겠습니다. 여러분도 편하게 읽어주세요.
"우리는 왜 일을 잘하려고 할까요?" <일하는 마음> 뉴스레터는 한 동료의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을 잘 해냈을 때 결실이 주는 도파민과 성취감도 좋지만, 스트레스와 피로로 지칠 때면 내가 왜 일을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했습니다. 일을 좋아하는 마음은 불꽃과도 같습니다. 빛나는 열정은 영원히 타오를 것 같아 보이지만, 때론 소중한 것들을 전소시키고 재만 남기기도 합니다.
업무 강도가 높은 IT 업계에서 일하며 번아웃으로 고생하는 동료를 많이 보았습니다. 일이 도대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 돈 받은 만큼,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적당히 흐린 눈 하는 것도 괜찮다고 서로 이야기하면서도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 우린 어쩔 수가 없나 봐' 하고 자조하곤 했습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마음, 원대한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마음, 소중한 동료들과 더 오래, 재미있게 일하고 싶은 마음이 꺾이고 흔들리고 좌절되다 불꽃이 꺼져버리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좋은 번아웃 예방법을 안다면 소개하고 싶지만, 그건 저도 잘 몰라서... 오늘은 마음의 불씨에 대한 이야기나 좀 더 해보려 합니다. (번아웃 예방법 추천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마음이 간다는 건 귀한 일이다
적당히 일하는 것,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먼저 깔아두고자 합니다. 일이란 본디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이며, 돈 받은 만큼 일한다면 성실하게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한때 번아웃으로 힘들어 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께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습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일까지 고민하며 괴로워하지 말라는 감사한 조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 받은 만큼만 해내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인데, 누가 칼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더 잘하려고 애쓰는 마음은 길바닥에 널린 돌멩이처럼 흔한 게 아닙니다. 남들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라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내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 다니는 회사원 아니잖아요.” 제가 신뢰하고 애정하는 한 동료는 종종 이런 이상한 말을 하곤 했습니다. 당신 월급쟁이 맞잖아... 회사의 기대치만큼만 적당히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겠지요. 조직의 리더인 그는 동료들을 고객으로 섬기고, 이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본인의 역할로 정의하며 일한다고 했습니다. 동료에 대한 애정과 헌신으로 그가 항상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노력한 덕분에 저를 포함한 많은 팀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니 곁을 지켜주신 간병인 김금화 여사님도 제 마음을 울린 분이었습니다.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돕는 일만으로도 지치고 힘들 텐데, 간호사분들에게 질문도 하고 어깨 너머로 보며 병원 일을 배우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묻자 “제가 더 알아두면 환자분들한테 다 도움이 되잖아요”라고 하시는데, 간병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에 어머니가 퇴원하실 때 눈물까지 흘리시는 모습을 보며 환자에 대한 진심에 감동했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치 있는 건,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가는 일 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커리어를 잘 쌓기 위해 힘쓰기도 하지만, 함께하는 동료, 오늘 만나는 고객,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진심으로 생각할 때 마음의 불씨를 더 오래, 아름답게 잘 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다는 건 참 귀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 불씨를 소중히 다루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대부분 가슴 속에 크고 작은 불씨를 품고 사시리라 생각합니다. 크기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작은 빛들이 모여 이 사회가 굴러가는 걸 테니까요. 영원할 수 없겠지만, 이 아름다운 불빛들이 좀 더 오래 반짝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때 <열정에 기름붓기>라는 콘텐츠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열정은 참 매력적인 말이지만, 크기보다는 방향과 목적 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불꽃이 일렁이고 있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불을 크게 지피기 전에 어디에 쓰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생일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는데 화염방사기를 켤 필요는 없으니까요.
방향과 목적을 생각하다 보면 무엇이 본질인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김혜리의 필름클럽> PD이자 <비효율의 사랑>을 쓴 최다은 PD는 이명에 걸리면서 처음으로 ‘라디오 PD가 아닌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라디오 PD라는 직업과 음악이라는 예술은 하나의 수단일 뿐, 중요한 건 결국 사랑하는 마음이라고요. 중요한 건 내 불씨를 지키는 거야,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일에 대한 회의감과 불안감이 몰려올 때, 내 마음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자 는 다짐이 스스로를 지키는 만트라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가는 곳이 있다면, 마음을 움직일 힘이 있다면, 어디로 가든 무엇을 타고 가든 항해는 계속될 수 있는 거니까요.
나는 일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 바깥에 존재하는 나머지를 과소평가해 왔다. 내 오랜 친구들은 내가 라디오 피디인지 아닌지와는 애초부터 상관없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쌓은 걸 기반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친구들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의 나를 그대로 바라본다.
<비효율의 사랑> 중에서
이번 주 일하는 마음 🌿
❶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흔치 않은 귀한 일이다.
❷ 이 마음이 가치 있는 건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마음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❸ 열정의 불꽃은 크기보다 방향과 목적이 중요하다.
❹ 내 마음의 불씨를 꺼트리지 말자. 본질을 지키면 나머지는 수단에 불과하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나요? 이번 주에 일을 하며 찾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뉴스레터는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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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다은, <비효율의 사랑> :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많은 귀감과 위로, 응원이 되어주는 SBS 라디오 최다은 PD님의 에세이. <김혜리의 필름클럽>이 종영했어도 클러버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지속되는 것처럼 불꽃이 살아있다면 나머지는 수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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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코
마음 가는 곳이 있다면 항해는 계속 될 수 있다는 말이 참 좋네요~ 열정이 꺼질까봐 물들어올때 노젓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덜 불안해할수 있을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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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
저런 마음을 응원받을 수 있는 곳도 엄청 귀한 것 같아요. 만약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다면 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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