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싸우려고 하지 마. 바다를 통제하려고 하지 마. 그때 비로소 너는 살기 시작할 거야.
<오디세이> 중에서
"X양어선 타는 거 그거 괜찮아?" 이직한다는 소식에 한 친구가 걱정하듯 물었습니다. 악명 높은 업무 강도를 원양어선에 빗댄 표현은 익히 들었습니다. 일과 삶의 밸런스, 웰니스, 느린 삶 따위를 운운하던 사람이 일에 미친 사람들만 모였다는 회사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니 걱정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을 겁니다. 저 스스로도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푹 쉬고 돌아와 첫 출근 잘 마쳤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보낸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느린 강물에 뜬 뗏목처럼 유유자적 흘러갔다면, 회사에서의 첫 일주일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경부고속도로 같았습니다. 정신 없는 사무실에서 운전대 꽉 쥐고 달리다보니 벌써 천안? 대전? 순식간에 한 주가 지나가버렸네요.
평온하게 쉴 수 있던 시간이 조금 그립긴 하지만, 일주일이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습니다. 치앙마이와 원양어선, 아니 경부고속도로, 아니 회사에서 상반된 시간을 보낸 것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통제하고 관리해서 성취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서핑하듯이 흐름을 잘 타는 것 에 집중하다 보니 빠르게 새 회사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 확신의 대문자 P)
옛 동료 은지님을 치앙마이에서 우연히 만난 것도 중심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라는 유저를 리서치합니다> 라는 브런치 북 연재를 끝내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고 있는 은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흐름을 타는 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어요. 치앙마이에 간 덕분에 은지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일단 물에 뛰어들면 어디로든 데려다 줄 거야"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우리가 즐기면 괜찮아
아무런 계획 없이 숙소만 잡아두고 치앙마이로 떠났습니다. 9월이 우기라 비가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어요.
늦은 저녁 숙소에 도착했을 때, 이번 여행은 이미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아르떼 하우스라는 곳에서 묵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하루 종일 비가 와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며 바라보던 정원의 풍경은 지금도 자꾸 생각이 나요. 따뜻하게 반겨주시던 사장님과 직원분들도 참 좋았습니다. (이런 멋진 숙소를 발견해준 아내에게 감사를!)
계획도 없고 비도 오니 자연스럽게 날씨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어요. 걷다가 더우면 편집숍이나 쇼핑몰을 구경하고, 비가 오면 카페에서 쉬거나 마사지를 받기도 했어요.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거나, 꼭 해보고 가야 할 것이 있다는 부담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 문을 닫았거나 동선이 맞지 않아도 “다음에 치앙마이 또 오면 되잖아?” 하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너무 심심한 여행을 하고 온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즐기면 괜찮다고 생각하니 이곳이 제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되었어요.
우연히 만나게 된 은지님과도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일 년 동안 자신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던 은지님은 브런치 연재를 시작으로 다양한 일들을 펼쳐나가고 있었어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고 있다 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나라는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세상의 흐름과 운에 따라 계획은 얼마든지 틀어질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인지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더라고요.
은지님은 내면의 나를 관찰하고, 그날의 나에게 맞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에너지를 덜 쓰기로 하고, 예민하고 불안한 마음이 크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을 피하는 식으로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삶의 모든 날이 맑고 따뜻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슈퍼요트와 카약 사이에서
올리버 버크만은 책 《Meditations for Mortals》에서 사람들이 삶을 슈퍼요트를 모는 것처럼 착각한다고 말합니다. 요트의 조종간을 잡고 멋지게 항해하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삶은 강물에 던져진 카약에 더 가깝다고요. 생각보다 세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아무리 잘 세운 항해 계획도 언제든 뒤집힐 수 있으니까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감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젝트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 성과를 만들어냈을 때, 삶을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반대로 그 감각에 익숙해질수록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오랜만에 이직해서 그런지, 치앙마이에 다녀와서 그런지, 빨리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이 전보다 덜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맥락 속에 놓이니 당장 무언가를 바꾸거나 만들어내기보다, 먼저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니까요. 무엇을 하든 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올리버 버크만은 카약 같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 태도라고 말합니다. 그저 한 걸음, Just a step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다행히 처음 만난 리더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성공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기보다, 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빠르게 실패해보라고요.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니 오히려 일에 더 빨리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보다 눈앞의 한 걸음을 내딛는 데 집중하니, 어느새 일의 흐름에 올라타고 있더라고요.
어쩌면 잘 항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흐르는 물 위에서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먼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일하는 마음 🌿
❶ 삶은 슈퍼 요트가 아니라 강물에 던져진 카약과 같다.
❷ 오늘의 나를 관찰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를 대비하는 좋은 방법이다.
❸ 모든 걸음은 성공 또는 실패가 아니라 그저 한걸음, Just a step 이다.
❹ 내가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니라 흐름을 잘 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나요? 이번 주에 일을 하며 찾은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뉴스레터는 매주 토요일 발행됩니다 :)
함께 보면 좋아요 📚
- 올리버 버크만, <Meditations for Mortals> : 테이트모던에서 발견한 인생책. 번역본이 없는 게 아쉽지만 유한한 삶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좋은 책입니다.
- 장은지, <나라는 유저를 리서치합니다> : 13년차 UX 디자이너의 "나"라는 유저 관찰기. 나를 놓치고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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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제 이야기가, 제 글이 소개될 줄이야!!! ㅋㅋㅋㅋ 부끄럽긴 하지만, 괜히 반갑고 기쁘네요! 실제 삶은 강물에 던져진 카약에 더 가깝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어요. 그러려면 오늘의 날씨는 어떤지, 바람은 어디로 부는지, 물살 세기는 어떤지, 카약 상태는 어떤지를 살펴야겠죠? 자연스럽게 흘러가보자구요. 뉴스레터도, 새로운 이직 생활도 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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