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동료가 '미국 주식 투자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열었습니다. 동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미국 주식에 투자하며 즐겁게 배우고 성장하더군요. 상식 정도의 수준으로 주식 투자를 이해하는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저런 걸 다 알고 의식적으로 지켜보며 살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반면 그렇고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도 올라왔어요. 재테크 생각만 하면 머리부터 아파지거든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서나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분이나 취미로 만들고 싶은 분에게는 독서나 글쓰기가 부담으로 다가갈 것 같아요. 제가 독서나 글쓰기에 들이는 노력이나 방법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건물주가 되었을 거라 농담처럼 말하는데요. 그만큼 자신이 파고 싶은 분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재산은 좀 부족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누리며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핑계로 주식 공부는 저만치 멀리 두었습니다.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인 존리의 유튜브를 지나가듯 본 적이 있습니다. "자녀의 사교육에 쓸데없이 돈 낭비하지 말고 주식을 사주라"는 내용으로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말하더군요. 공감하며 봤고 기회가 된다면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이번 주 윌라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반갑게 들었습니다.
책 내용도 주장과 다르지 않게 장기적인 관점으로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고 다뤘더군요. 책을 읽고 제 퇴직연금 수익률을 보니 수년간 원금보장의 늪에 빠져 이자율이 형편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자가 알려준 대로 퇴직연금제도, 연금저축펀드를 활용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현황을 파악하고 적합한 상품과 제도를 찾아가면 갈수록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습니다. '아 몰라. 나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살래. 차라리 책을 읽고 글을 쓸래. 너무 어려워.'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왔어요. 반나절 인터넷 서핑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조회하다 지쳤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불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 원칙을 정하자.'
ISA, 연금, IRP를 비교한 글을 봤는데요. 뭔가 우선순위를 정하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덜 복잡하겠더라고요. 문득 제가 원칙 애호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엉켜있는 실타래를 견디지 못하기에 하나씩 다 풀어서 앞으로는 엉키지 않도록 길을 내고 방법을 정해야 편한 사람인 거죠. 좀 피곤하게 보이지만 사실 단순한 사람입니다.
앱과 연동하여 체중을 관리하는 인바디 체중계를 선물 받았습니다. 규칙적으로 몸무게를 재는 게 좋다기에 잊지 않으려고 제 아침 루틴에 포함했습니다. 눈뜨자마자 화장실 다녀온 후 측정하는 거죠. 그러니 빠뜨리지 않고 매일 기록을 남깁니다. 비타민이나 영양제를 자꾸 잊고 안 먹는 날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모닝커피를 마시고 양치하기 전에 챙겨 먹는 원칙을 정했습니다. 이러니 아침 루틴이 좀 길긴 합니다만 원하는 것을 에너지 소모 없이 자연스럽게 실행합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말하는 디드로 효과, 현재의 습관을 하고 나서 새로운 습관을 하는 습관 쌓기(Habit Stacking)죠. 습관을 쌓는다지만 결국 작은 원칙들의 연결입니다.
시간관리의 비결을 물어보는 분에게 지배가치를 소개합니다. 제 책 《아이 키우며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건》에서도 한 챕터를 시간관리로 할애하여 썼습니다. 지배가치는 스스로가 정하는 원칙입니다. 인생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 우선순위를 미리 만들어 두면 선택과 갈등의 상황에서 편하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어요. 정해둔 지배가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지배가치를 고치면 되고요. 지배가치는 제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원칙으로 20년 넘게 그 가치에 따라 살고 있어요.
삶과 더불어 일에서도 원칙을 따르고 있더군요. 회사는 직원들에게 핵심가치를 정해두고 모든 의사결정을 그 원칙에 따르도록 안내합니다.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으면 제품 디자인, 생산, 유통, 마케팅, 재무, 인사, 경영, 환경에서의 파타고니아 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파타고니아에서는 일관된 철학을 직원에게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요. 저는 이런 원칙을 제공하고 직원이 따르도록 안내하는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더군요.
이 정도면 원칙 애호가라 말할 만하죠? 그래서 재테크 원칙을 정했을까요? 분명 '그래 내일은 장기적인 주식투자를 위한 나만의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르면 되겠지.'라고 다독이며 편히 잠들었는데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아침 루틴을 하기 바빴고. 그렇게 재테크는 살며시 제 손아귀를 슬금슬금 빠져나갔습니다. 대신 저에게 원칙 애호가라는 정체성을 안겨줬어요. 여러분은 재테크 잘하고 계신가요? 비결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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