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삶] 의지 부족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아가는 과정

반려 식물 키우기와 글쓰기

2021.06.05 | 조회 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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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삶의 주간 성찰

일하고 배우고 느낀 성찰을 나눕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식물들과의 가슴 따뜻한 반려 이야기〉라는 이승희 시인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반려 식물과 함께 감성을 키우고 눈 맞추며 위안을 받는 작가가 부러웠어요. 사랑과 관심만 있다면 누구든 반려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저도 모르게 화원에 가서 식물을 주문했죠.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후회가 몰려왔어요. 손재주가 없는 저는 식물을 선물 받아도 잘 죽이는 터라 식물 키우기는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거든요. 초보자도 키울 수 있다는 식물이라지만 반려 식물이 줄 감성과 위안의 기쁨보다 제대로 가꿀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왔어요.

그러던 중 지난주 〈홈 가드닝의 모든 것〉 특강을 들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수백여 종의 식물을 가꾸는 김정민 작가가 초록 식물 잘 키우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줬습니다. 양지, 반양지, 반음지의 정의, 내음성에 강한 식물, 식물생장 LED, 식물을 키우는데 필요한 온도, 물, 습도, 통풍 등 제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났어요. 

반려 식물을 가져다가 적당히 물만 주면 알아서 잘 클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와장창 깨졌어요. 가드닝에 필요한 기초 상식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호기심과 즐거움보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제 안에서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반려 식물을 키우고 싶은 걸까? 식물을 즐기고 싶은 걸까?'

그리고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가드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초록초록한 식물을 바라보고 흙냄새 맡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지만 기꺼이 적절한 타이밍에 물주고, 벌레를 없애주며, 응애를 제거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요. 

저보다 식물을 잘 가꿀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주기적으로 사무실에 방문하여 화분을 케어하는 분이 떠올라 식물 대여나 홈 가드닝 케어를 검색해봤지만 인터넷에 거의 없더군요. '일일이 집안에서 가꾸지 않아도 문밖만 나서면 언제든 자연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집안에 식물을 보유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연은 이미 우리를 품어주는데 그 일부를 굳이 집안에 소유하려는 건 욕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식물 키우기를 포기하고 대신 조화를 선택했습니다. 망고 빛 튤립 디퓨져와 책상 벽의 허전함을 가려줄 식물 행잉 가랜드로 대리만족하려고요. 

망고 빛 튤립 디퓨져
망고 빛 튤립 디퓨져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데는 식물을 키우는 만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독서로 생각을 펼치고, 사색과 성찰로 주제를 떠올리며, 글로 풀어낸 후 동일한 시간의 퇴고를 거칩니다. 쉽게 써나가는 글도 있지만 일주일 내내 고민하고, 눈으로 읽고, 소리로 듣고, 마음으로 정화한 후 한 편의 글을 발행합니다. 

이런 과정을 글쓰기 수업에서 알려주면 가끔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멋진 글로 자신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조사, 사고, 성찰, 노력, 인내, 꾸준함이 요구되는 글쓰기 과정에 놀라는 분도 있어요. 블로그를 시작했다가도 글태기, 글럼프에 빠졌다며 글쓰기를 멈추더군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구독자님은 글을 쓰고 싶은 걸까요? 글을 즐기고 싶은 걸까요?'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수고스러운 과정도 즐겁거든요. 저는 글쓰기 과정이 아무리 험난해도 즐거워요. 독서도 즐겁고, 밑줄을 정리하는 것도, 인상적인 문장을 필타하는 것도, 제 글을 수십 번 읽고, 때로는 녹음해서 들어보는 과정도,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하여 발행하고, 매번 거절당하지만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는 과정도, 많이 팔리진 않지만 독립출판으로 책을 펴내는 고단한 과정도 말이죠. 제 머릿속은 온통 글감과 글쓰기 아이디어로 넘쳐나죠. 결과는 운에 맡깁니다. 잘되면 감사하고 안 돼도 과정을 즐겼으니 행복합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글쓰기라는 험난한 과정이 제가 느낀 식물 키우기처럼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억지로 도전할 필요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세상에는 전문 작가가 쓴 책으로 가득하고, 브런치나 블로그에도 완성된 글이 넘쳐납니다. 자연처럼 즐기면 됩니다. 

겉으로 봤을 땐 모든 게 좋아 보이고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시도해 보지 않고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무언가를 도전해보려고 할 때 내키지 않고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수고스럽지만 궁금하고 기꺼이 하나하나 밟고 싶은지. 살짝 시도해보고 아니라면 내려놓아도 됩니다. 그건 구독자님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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