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화’가 나도 되는 걸까?
대학에서 유아교육에 대해 배운 4년 동안, ‘교사의 화’에 대해 배운 적은 없었다. 교재와 교수님의 말에 따라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온화한 태도를 보여야 하고, 언제나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배웠을 뿐이다.
물론 그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마주하고 있지만, 실제 부딪히는 현장에서는 ‘화’가 안 나려야 안날 수가 없다. 여러 번 반복하여 이야기했음에도 교사의 말을 깡끄리 무시할 때, 속상하다며 놀잇감을 교사를 향해 집어던질 때, 모든 말들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엉엉 울며 40분 넘게 내리 울 때에는 가슴속의 화가 점점 켜켜이 쌓여갔다.
‘화’라는 부정적인 감정 자체도 가지고 있기 불편한데, 그것을 또 긍정만 퍼 날라도 모자란 ‘어린이’라는 연약한 존재에게 갖는다니. 머릿속에서 ‘보육교사 아동학대’와 관련된 뉴스 헤드라인이 떠오르며 마음속의 ‘화’는 굉장한 죄책감으로 변신했다. 화를 내다보면 언젠간 그러한 교사가 되는 것 아니야?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화를 숨겼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꾹꾹 누르고 나에게는 화가 없는 척 살았다.
그러던 중, 한 선생님과 아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언가 속상한 일이 있는지 어린이집이 떠나가라 아이가 울고 있었고, 주위의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무슨 일인가 모두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시선이 신경 쓰여 울음 뚝! 하며 그치기에 급급할 법한데도 선생님께서는 그저 가만히 어린이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나중에 그 모습을 봤다고 슬쩍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는 건 어린이들에게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속상해서 우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은 교사로서 어린이들의 감정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으나, 개인적으로 ‘화’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속상해서 우는 건 나쁜 게 아니지. 그렇다면 화는? 화가 난다는 것 왜 부정적으로 들릴까? 화는 왜 나에게 죄책감을 갖게 하는 ‘나쁜 감정’으로 생각될까?
‘예민하고 격정적인 사람’이란 주제를 깊이 연구한 이미로 정신건강 임상의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감정, 그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잠재울 것을 장려하는, 감정 혐오의 문화에 살고 있다.”
즉, 현대 사회는 좋은 감정만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기쁘고, 즐겁고, 신나고, 설레는 그 감정들은 감정을 느끼는 순간에 감정의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기 쉽다. 하지만, 화가 나고, 폭발할 것 같고, 불안한 감정들은 쉬이 꺼내기 어렵다. 이 단면만 보아도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적합한 사림이 되기 위해 감정을 끼워 맞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는 가져서는 안되는 마음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화는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정서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1차 정서와 18개월 이후부터 발달하는 2차 정서로 나뉘는데, 그중 ‘화’는 선천적인 1차 정서에 속해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감정이 바로 ‘화’이다. 즉, 화는 자신의 가치나 경계가 침해당했을 때 드는 자연스럽고도 건전한 감정이지만, 사회의 프레임 속에 가지면 안 되는, 통제해야만 하는, 표출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자리 잡힌 것이다.
이젠 앞서 적은 첫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겠다. 어린이들에게 화가 날 수 있냐고? 그래, 어린이들에게 화가 나도 괜찮다. 화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니까.
그렇다면 ‘화’라는 감정이 들었을 때, 화는 어떻게 내야 하는 걸까?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언제나 모방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어야 하므로, 화를 내기 위한 가장 옳고도 바른 방법을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게 내가 생각한 첫 번째 방법은 나의 ‘화’를 구분하여 알기였다, 속이 부글부글하고, 기분이 팍 상하는 것과 같은 화의 전조증상들을 느꼈을 때, 잠시 모든 행동과 말을 멈췄다. 그리고 질문했다. 나는 지금 속상한가? 화가 나는가? 불편한가? 놀랐나? 당황스럽나? 불안한가? 서운한가? 난처한가? 지치는가? 걱정되는가? 다양한 상황 속 지금 나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고르고 고르다 보면, 뭉뚱그려 ‘화’로 지칭되던 감정들이 내가 어떤 원인으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세분화되곤 했다.
그런 뒤, 그 명확해진 원인과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여러 번 말했는데도 들어주지 않네.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어.”라고 말이다. 이러한 대화는 ‘나-전달법'으로, 공격적으로 ‘너’를 탓하지 않으면서도 ‘나’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같은 맥락으로 앞선 문장에 감정을 담담하게 담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말하는 분위기에서 ‘내가 지금 이렇게 화내는 것은 너와 싸우려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같이 잘 풀어봤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느껴지길 바라며 말이다.
“기분 나빠”로 그냥 퉁치는 것보다 “서운해”라고 세심한 감정을 이야기하자 듣는 상대방도 더 세분화된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내 말을 안 들어!”라고 화를 일방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내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아서 서운해”라고 이유를 함께 말하니 상대방도 납득할 수 있었다. 화내는 사람이 담담하니, 듣는 대상도 함께 격해지지 않아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으며 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진지한 분위기를 알아채고, 흘려듣지 않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생각한 방법은 ‘내가 화가 나는 조건을 먼저 알아두는 것’이다. 거절, 굴욕, 비판 등 화가 나는 상황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내가 더욱 화가 나는 버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소위 ‘버튼이 눌리는’ 상황들을 수집해 보았다. 나의 경우는 수면 시간이 적어지면 몸 컨디션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 편이다. 그럴 땐 피곤함에 화의 역치(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낮아진다고 느낀다. 조금만 나를 건드려도 금세 화가 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버튼을 알고 있자 화가 날 수 있을 만한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 출근하는 날은 꼭 12시 전에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나만의 예방 방법이 되었다. 또, 화의 원인을 더욱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왜 화가 났을까?’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어제 잠은 푹 잤나?’부터 점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버튼을 알고 있으면, 객관적으로 나의 상태를 마주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차분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든다. 화를 바르게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1에서 주인공 라일라의 머릿속 본부에는 다섯 감정들이 등장한다. 그중 기쁨이는 주인공의 기억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며, 슬픔이가 만든 기억들을 없애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한 실수로 본부를 나가게 된 기쁨이는 기쁜 기억 안에 슬픔의 기억도 함께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즉, 슬픔이 있었기에 기쁨도 존재할 수 있다는, 기쁨과 슬픔의 상호 의존성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의 ’화‘도 슬픔처럼 없애야 하는 감정이 아니다. 화를 건강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내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며,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서로를 수용하는 것의 시작이 된다.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이 아닌, 관계가 활력을 띄고 돈독해지는 것이다. 또, 불만이 있다는 것은 불만을 갖게 되는 그 부분을 수정한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기쁨도, 슬픔도, 화도, 두려움도, 까칠함도, 불안도, 부러움도, 수줍음도, 따분함도. 그 모든 감정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다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라일리가 결국에는 그 모든 감정을 모두 들어가 있는 자신만의 자아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사회적으로도 좋은 감정만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화‘라는 감정도 기쁨처럼, 슬픔처럼 능숙히 표현되는 하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본다. ’화가 나‘를 표현을 들었을 때, ’워워~ 진정해‘라고 자제시키기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화가 나는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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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 화를 억제하기보다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표출하고 해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 아이를 학대하는 모진 교사들은 아마도 그 화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 경우겠네요ㅜㅜ 푸실 님처럼 지혜로운 선생님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쓰니신나님~매번 정성스러운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힙니다. 약간 다른 말이긴 하지만, 쓰니신나님의 메일링 서비스 글도 뒤늦게 읽고 있어요 🥰 아이를 학대하는 교사들에 대한 시각도 저도 쓰니신나님과 동일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화를 적절히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렇기에 제가 어린이들에게 화를 적절히 표현하기도 해야겠지만, 교사로서 어린이들이 화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이야기 나누곤 한답니다. 표현하되, 바른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많은 아이들이 적절하게 화를 표현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래봅니다^^
쓰니신나
짝짝짝!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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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케이
교사의 감정을 아이들 앞에서도 관리자 앞에서도 동료교사 앞에서도 억눌러야 한다고 강요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 앞에서는 더더욱 '어른이 참아야지'라는 강요에 가까운 피드백이 많은데 푸실님 글 덕분에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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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산소통
화를 애정하는(?) 감정성애자(?)로서 너무 공감하며 읽었어요. 화를 낼 수 있는 건 새끼곰이 공격 당할 때 보호하고싶은 어미곰의 본능과 같다는 말을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나는 글입니다. 늘 수면부족으로 화를 목구멍에서 꾹꾹 누르는 못난 어미곰은 진심 존경합니다 어린이집 교사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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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화'에 대한 생각이 저와 비슷하시네요. 하지만 저는 "워! 워! 진정해!"라는 프레임을 제대로 깨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로 훌륭한 스승님이 되실 거라는 미래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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