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딸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 안 되냐며 졸랐다. 학교 하교 후에 주중에다가 거기에 더해서 낮 시간에 집에 오겠다고 하는데 기가 찾다. 매일 해야 할 업무가 있는 내게 낮에 집에 있는 건 불가능하다. 단호히 거절했다.
한주동안 대전출장에 매일 저녁 늦게까지 미팅에 바빴다. 빡빡한 일정에 몸이 너무 아픈 듯해서 이번 주 금요일은 쉬어야 주말에 행사와 일들을 진행할 수 있겠다싶어 아내와 일정을 나누었다.
이때 생각지 못한 일이 있었다. 우리 딸에겐 엄청난 능력이 있다. 딸은 귓구멍이 나팔통 같다. 어디서 조그만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쪼르르 달려와서 “뭐예용” 물어보는 아이다. 아내와 이야기하는 중간 잠시 딸의 능력을 간과했다. 나와 아내의 대화소리를 어디선가 듣고 달려 나온다.
“아빠~~앙, 내일 오후에 친구 집에 데리고 와도 되요?” 흡사 고양이 한 마리가 촉촉한 눈망울로 날 쳐다보며 말하는 간절한 외침에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아빠가 집에 있으니 데리고 오너라.” 딸은 그 때 엄마도 있어야 한단다. 아빠는 집에 있고 엄마는 간식을 준비해줘야 한다나. 딸이 상전이다. 자기 맘대로 계획하고 움직이고 통보한다.
쉬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침부터 점심까지 미팅이 계속 이루어졌다. 미팅을 하면서도 마음이 급했다.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 잔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벌써 귀가 따갑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은 제법 잔소리가 늘었다. 딸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아빠라니 시집살이하는 것 같다.
아내는 딸이 자기에게 보내 온 문자를 보내줬다. “비상비상. 엄마 빨리 집에 와요. 친구 데리고 지금 집에 갈 테니 떡볶이랑 간식을 준비해주세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다. 이게 뭔일이라고. 미팅을 마치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달려갔다. 온 식구들이 딸의 친구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띵똥’ 벨이 울렸다. 문이 열리며 “아빠 엄마 저 왔어요. 친구 데리고 왔어요.”라는 명랑 쾌활한 딸의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그래 사랑하는 딸. 이제 왔니.” 라고 앞을 보았다. 남자다. 그것도 한 명. 몇 주 전부터 딸이 애타게 말했던 그 친구는 남자였다.
딸은 늘 나만 사랑한다 했다. 결혼도 나랑, 평생 나랑 산다고 했다. 남자 중에 아빠가 최고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사람은 아빠, 그 다음 오빠. 그 말을 굳게 믿었다.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데리고 왔다. 딸은 오자마자 나에게 영화를 보여 달라. 게임을 준비해 달라. 피자를 사달라. 수만 가지의 요구사항을 늘어놓는다.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침데기 모습으로 슬쩍 슬쩍 눈치를 준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떡볶이를 만들고 간식을 준비하고 있다. 내 속은 타들어가며 탄내가 입 밖으로 나오는 듯하다. 딸의 남자친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딸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모습을 스스로 생각하니 너무 웃기다. 당장 결혼할 남자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친구를 데리고 온 것뿐이지만 스스로 과잉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다가올 미래가 그려진다. 자녀가 오랫동안 없을 때 친구들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자녀가 있으면 어떤 삶을 나눠주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 질문에 난 늘 준비되어 있는 답을 해 주곤 했다.
“에릭 프롬이 죽기 4년 전에 쓴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렇게 말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소유하는 것과 존재하는 삶이 있어. 세상을 소유하고 가지려는 것보다 그저 있는 존재 그대로를 받아내며 사는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야. 난 자녀를 소유하지 않고 존재로 바라볼 거야.”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재수 없다는 소리를 내뱉으며 ‘키워봐라 그게 되나’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존재고 소유고 그 딴 말 다 필요 없다. 어서 빨리 딸의 남자친구를 집에 보내고 딸아이를 앉혀놓고 꼬치꼬치 캐 물어야 할 질문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 내 맘을 딸이 알턱이 없다. 피자를 주문해달라고 한다. 피자를 주문하고 찾으러 가야 하는데 그만 포장으로 주문했다. 이 와중에 포장픽업 50%할인이라는 자본주의에 넘어갔다.
넌지시 딸의 남자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네 부모님은 몇 시에 너를 데리러 오시니” 이 녀석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내게 말한다. “2시간 후에 오실 것 같아요.” 두 시간이나 있다고. 내 마음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두 시간 참 길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계속 방과 거실로 왔다 갔다 하며 보냈다. 두 시간뒤 남자친구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갔고 딸은 내게 말한다. “아빠 다음엔 그 친구 집에서 보기로 했어요.” 속이 뒤집혀 지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너그러이 부드럽게 말했다. “응 그때 시간이 가능하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사실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예전 여동생이 결혼할 때가 생각난다. 동생 결혼식 때 식장에서 아버진 우셨다. 내 결혼식 때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시던 분이 딸 앞에 펑펑 우셨다. 똑같은 자식인데 여동생의 결혼식에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퉁명스럽게 아버지께 여쭤보았다. “아버지 동생 결혼식 때 왜 우신 거예요. 나 결혼할 땐 싱글벙글하시더만.” 아버지의 말씀은 이랬다. “네가 나중에 딸 키워보면 내 마음 알거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딸을 키워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 이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하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딸아이가 울상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딸은 내 품에 안겨 엉엉 운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말에 “아빠 그때 집에 온 친구가 미국으로 이민 간데요. 내일부터 학교에 오지 않는데요.”라 말한다.
난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부드럽고 온 마음을 다해 딸을 위로해주었다. “그렇구나. 참 안됐다. 네가 많이 속상하겠구나. 그래 아빠가 너 더 많이 사랑해줄게.”
난 아직 존재로 사랑은 멀었다.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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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ㅎㅎㅎ 엄마는 영영 모를 마음일까나요? 아빠의 딸 사랑하는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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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산소통
읽는 내내 미소만개 하고 읽었네요. 2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셨을까요. 이민간다니 얼마나 축복하고 싶으셨을까요. 존재로의 사랑은 멀디 먼, 딸 가진 엄마로서 무한공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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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동양의학의 어떤 학파에서 말하기를, 남자(양)는 자식을 낳아도 딸(음)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제 아버지만 봐도 누나들을 대하는 모습 보면 그게 아빠의 본성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여하튼 참 좋은 아빠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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