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와인 한잔

WSA와인아카데미에 나타난 나파벨리의 전설

[그대와 와인 한잔] by 서로서로

2024.01.18 | 조회 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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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딱 1도 높여주는 그런 글 한잔이 되길 바라며 -

팀 몬다비와 함께한 시간
팀 몬다비와 함께한 시간

오래되어도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계, 가구, 옷 등 세월이 지나도 사랑 받고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이 있다. 빈티지(Vintage)이다. 단어 빈티지의 어원은 와인에서 나왔다. 포도를 수확한 해가 해당 와인의 빈티지가 된다. 2024년도에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들면 2024년도 빈티지 와인이 된다.

   와인은 빈티지가 중요하다. 빈티지에 따라서 와인의 품질과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좋은 빈티지를 굿빈’, 안 좋은 빈티지를 망빈이라고 한다. 적절한 햇빛과 온도, 강수량 등이 한대 어울러져 신의 축복을 받은 해는 굿빈. 반대로 많거나 적은 강수량, 덥거나 추운 기온, 우박과 서리 등의 신의 노여움을 받은 해는 망한 빈티지 망빈이다

   망빈과 굿빈의 맛은 어떻게 다를까? 미국와인의 전설 로버트 몬다비 가문의 팀 몬다비가 2022 11월에 한국에 왔었다. 와이너리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인 팀 몬다비와 함께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다. 팀 몬다비의 대표 와인의 이름은 컨티뉴엄(Continuum,계승)이다

   팀 몬다비가 컨티뉴엄 2013, 2017, 2019빈티지를 세미나에 들고 왔다. 미국와인을 빈티지 별로 테스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13, 19 빈티지는 굿빈이고 17 빈티지는 대표적인 망빈이다.

   빈티지 차이에 대한 궁금증은 팀 몬다비의 컨티뉴엄을 마시고 해결 되었다. 컨티뉴엄은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베이스의 보르도 블랜딩 스타일의 와인이다. 먼저 굿빈 13빈티지를 마셨다. 9년 숙성 된 와인이다. ~ 생각보다 별로다. 미국하면 생각나던 인위적인 맛과 향은 없어서 좋았지만 힘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숙성력이 약한 와인 같았다. 3~4년 전에 마셨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 팀 몬다비도 13빈을 마시고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이제 망빈이라고 불리는 17빈을 마셨다. 우와, 꽃향기가 잔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더니 폭발한다. 입 안에서는 매끈하게 쓰윽 지나간다. 미국의 17빈티지는 산불피해로 피해야 하는 빈티지라고 하는데, 아니다. 향이 미쳤다. 기분 좋은 꽃향기가 폭발한다. 언덕 위에 한 그루 꽃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한 줌의 바람이 꽃나무를 건드린다. 핑크빛 꽃잎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꽃향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한 줌의 바람은 꽃향기를 머금고 내 입가를 매끈하게 지나간다. 13빈이 별로여서 일까. 17빈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일까. 와인 한 모금에 감동이 몰려왔다

   이제 19빈티지 굿빈을 테스팅 한다. 와인 잔에 코를 박고 한 모금 마셨다. 17빈 보다 복합적인 향이 난다. 확실히 17빈 보다 품질이 좋은 와인이다. 색에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의 온도가 있듯이, 향에도 온도가 있다. 이 와인은 서늘한 향이 느껴졌다. 신선한 자두 향은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무슨 허브인지 모르겠지만 허브향도 났다. 탄닌은 부드럽고 속이 꽉 찬 밸런스 좋은 와인이다

   팀 몬다비도 19빈을 한 모금 마셨다. 매일 포도밭에서 포도와 함께 뒹굴고 오크통을 어루만지며 지내는 분이다. 3년 숙성 되었지만 지금 마셔도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 내가 느꼈던 것을 똑같이 말했다. 이 와인은 서늘한 기운이 있다고 했다. 이 포도는 고지대에서 자라기 때문에 안개가 낀다고 했다. 그 안개의 서늘함이 와인에서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밭에는 야생허브가 자라는데 이 와인에서 그 야생허브의 향이 난다고 했다

   내가 느낀 허브의 향은 포도밭에서 함께 자란 야생허브의 향이였다. 포도밭의 자연을 그대로 담은 와인이다. 와인에 포도밭의 모습과 향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팀 몬다비는 자신의 인생을 와인과 함께한 예술가이다. 그가 만든 와인에는 그의 철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

   나는 오늘 마신 와인 중에 17빈이 가장 좋았다. 19빈은 더 좋은 품질과 밸런스를 보여줬지만 취향으로는 17빈이 더 끌렸다. 팀 몬다비도 17빈을 마셨다. 팀 몬다비가 말했다. 19빈도 좋지만 17빈이 자기취향이란다. 와우, 나랑 똑같다. 19빈도 그렇고 17빈도 와인메이커랑 같은 향과 맛을 느끼고 취향까지 같다니! 팀 몬다비에게 빠져든다. 팀 몬다비도 17빈에서 나는 이 향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팀 몬다비가 설명을 이어간다.

   2017년도는 포도를 키우기 매우 어려운 해라고 설명했다. 근래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렸고 차가운 기후로 싹이 늦게 피고 무더위로 이른 수확을 해야만 했다. 수확시기에는 산불이 나서 3분의 1 가량의 포도를 폐기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말했다.  와인메이커 입장에서는 신이 준 시련과 노여움 같았을 거다. 이번 빈티지 테스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망빈과 굿빈은 없다. 신의 노여움을 받은 망빈과 신의 축복을 받은 굿빈은 와인에 진심을 담은 인간 앞에서는 다른 모습을 담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표현 될 뿐이었다. 19빈은 신의 축복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와인이지만, 17빈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간 팀 몬다비 한 인간이 담겨있다.  

   신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불가항력적 고난을 줄 때가 있다. 인생에서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면 라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되길 기대해본다.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버티고 견디며 자신을 잃지만 않으면, 와인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신에 대한 나의 순종이다

   나의 인생에서 굿빈과 망빈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이번 년도는 망했다. 또는 이번 년도는 운이 좋다고 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컨티뉴엄 13빈티지처럼 굿빈 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아니었고, 17빈티지처럼 망빈인 줄 알았지만 굿빈일 때도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망빈이라고 생각 했는데 아닐 수 있고 굿빈이라고 생각 했는데 아닐 수 도 있지 않을까. 나는 굿빈 일 때는 겸손을 망빈 일 때는 순종을 배웠다.

인생에서 어떤 빈티지를 만나도 결국 아름다운 와인이 될 당신을 위하여

컨티뉴엄 2019 빈티지
컨티뉴엄 2019 빈티지

 

 

[저자 소개]

1년간 1억을 쓰며 집에서 와인을 즐기고 있는 와인러버. 어두운 저녁 와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상한 사람. 와인의 매력에 빠져 논문과 서적을 들쑤시고 다니는 괴짜. 한때는 신학, 정신의학, 경제에 빠져 있다가 와인에서 이 세가지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아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신, 사람, 세상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와인도 똑같았다. 아름다운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천(天), 지(地), 인(人)의 조화가 필요하다. 그대와 와인을 마시면서 천, 지, 인을 나누고 싶다. 

[쓰고뱉다]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는 함께 모여 쓰는, 같이의 가치를 추구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닉네임을 정하고, 거기서 나오는 존재의 언어로 소통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누구나 글쓰기를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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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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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니신나

    0
    10 months 전

    와~ 놀라운 와인의 세계와 삶으로의 적용에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마지막에 치얼스 라고 술도 먹지 않는 제가 읊조렸네요 ㅎ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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