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늘 의미 있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조류에 떠밀려 자리한 것인지, 신앙에 기초한 신조 때문인지 명확한 건 모르겠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기도했다. 습관을 따라 하는 기도, 쾌락과 행복감에 밀리지 않는, 의미를 사수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 말이다. 나아가 대상을 향한 사랑과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로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매일의 싸움이었다. 마치 나침반의 지남철이 북극을 가리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늘 끝을 떨며 자신의 맡겨진 본분을 다하듯, 나 또한 의미 있는 삶에 사명을 완수하려는 몸부림으로 온몸이 흔들렸다.
평생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철학으로 만든 인생 선배를 한 분 알고 있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다. 그의 오랜 지병은 삶에 많은 지장을 가져왔지만, 그가 철학적 사상을 가지는 데 일조했다. 아니 그의 철학적 신조는 그의 지병으로부터 기인했다 하여도 과하지 않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도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아버지는 단순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 원했다. 나는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병 중에 환영이 보일 때조차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이 대목에서 그가 의미 사수를 위해 병중에도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어 안타까웠다. 그의 아버지가 편안하고 단순한 삶을 살고자 했던 것도 공감이 됐다. 고통이 클수록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책에서 내가 의미를 추구하는 것에 간접적 동의를 얻은 기분이 들어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미’를 추구하는 삶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먼저 ‘행복’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생활에서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느끼는 상태’를 뜻했다. 그렇다면 ‘의미’의 뜻은,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를 말한다. 김학철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욕망과 욕구가 없어도 만족할 수 있고, 오히려 욕망과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강화될 수 있는 것’이 ‘의미’라는 말이다. 욕망과 욕구를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없어도 만족하고, 좌절돼도 오히려 강화되는 것이 ‘의미’라면, 내가 아침마다 의미를 좇으며 기도하는 것이 독특한 일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던 내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니 나는 나에게 몇 가지 가치들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테면, 요즘엔 숏폼을 넘치게 즐기는 일, 생각 없이 TV나 영상을 틀어두는 일은 지양해야 해, 인간은 전두엽이 발달된 고등한 동물이니 좀 더 가치 있는 활동을 해야 해. 대화할 때도 내면적이고 본질적 대화가 아닌 피상적 잡담이나 안줏거리로 삼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고 은근히 도외시하기도 했다. 얼핏 맞는 말 같아도 삶의 순간순간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놓치게 됨을 깨달았다.
자주 아침을 걸렀다. 몰입해서 무언가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한 끼 정도 안 먹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전의 공복은 밤이 되면 엄청난 허기짐으로 집중을 괴롭혔고 야식이나 폭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과에 집착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의미 추구가 사소함으로 치부되어, 가장 중요한 건강에 또 다른 부분에서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도 꼬리표를 달았다.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모든 행동과 말에 프레임을 씌우고 더 수고하고 더 피로하게 했다. 때론 정서적 스트레스를 가져오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활동도 건너뛰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그것이 고스란히 내 몫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확신하게 됐다.
실제로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였던가 가만히 떠올려 봤다. 좋은 책을 만나거나, 좋은 사람과 철학적, 종교적, 내면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그의 가치에 대해 듣고 배우는 시간 들이었음을 알았다. 게다가 대화하는 상대가 내게도 무언가를 배웠다는 말을 건네거나 나와의 시간이 무척 즐거웠노라고 하면, 나도 뭔가 할 일을 한 것 같은 착각에 고무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게 내게는 의미 있는 소소한 행복이었다.
어쩌면 도파민 중독이 되지 않을 선에선, 숏폼이든 영상 시청이든 머리를 식힐 수단이라면 문제없다.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의미나 가치들에는 만족이 안 되더라도, 타인에게 의미 있는 일이고 나와의 시간이 즐거웠다면, 함께한 그 사람으로 인해 내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얼마 전 초등학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라탕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서로 질세라 토핑 탑을 이루며 잔뜩 골라 결재하게 하고는, 결국 반 이상을 모두 남기며 말했다. “선생님! 이것 좀 먹어보세요! 이 토핑 진짜 맛있어요, 제 거도요! 까르르!.” 연신 즐거운 웃음소리에 정신없는 사이, 남긴 거 먹느라 내 배만 불룩해졌다. 그럼에도 계속 웃고 있는 거울 속의 내가 스쳤다. 배부르다면서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골라 챙겨간 아이들을 뒤로하고, 급격히 떨어진 에너지 배터리를 충전하러 집으로 향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동안 의미를 찾는 것이 생각이 나지도 않게 즐거웠다. 집에 오는 길에, 자려고 누운 밤에, 페이드인 된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왁자지껄 환하게 웃어대는 아이들 얼굴 위로 행복이 흘렀다. 나에게도 전염됐다. 그 웃음이. 그 행복이.
‘의미’ 있는 삶은 ‘행복’한 삶보다 더 큰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달리는 사람’은, ‘의미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보다 삶의 질이 좋지 못하다는 연구결과에서도 말해주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의미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의미에 집착해선 안된다.
의미만을 추구하는 삶이, 만족 없는 삶일 수밖에 없는 건, 결과나 성취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삶은 일시적 행복을 넘어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의미에 무게를 두되 집착하지 않을 온도, 그 안온함으로 걸어가야겠다.
저자소개
필명: 인사피어(INSIGHT+INSPIRE)
_통찰로 격려하는 삶이 꿈이다
sns그림 작가, 종이 공예와 예쁜 글씨 쓰는 사람. 피아노 반주 봉사하는 사람. 천상 예술인 이지만 글쓰기 공동체 '쓰고뱉다'를 만나면서 내 안에 끝 모를 진지함과 은근한 다정함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해지고 나를 알게 될수록 점점 시선은 타인에게로 향했다. 나의 얘기로도 타인과 닿을 수 있다는 글쓰기는 이제 숙명과도 같은 만남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고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날을 꿈꾸며 오늘도 글을 쓴다.
댓글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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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산소통
의미에 꽤나 집착하며 살았던 1인 폭풍공감하고 갑니다 🩷
인사피어
반려산소통님께서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힘이 솟아요(ღ◕ܫ◕ღ) 의미에 무게를 둔 것이 과거형이신것 같아 다행이에요ღ˘⌣˘ღ
반려산소통
과거형을 추구하는 현재진행형이에요 사실. 글에서 언급하신 김학철 교수님 영상 뭔지 단번에 기억할만큼 의미에 몰빵하며 살다가 반반정도? 입니다 ㅎㅎ 그래도 스스로 의미찾기에 몰입하는 순간이 가끔 오면 동굴로 들어가곤 하죠. 아무튼! 넘넘 공감이 되었어요. 🥰🙏🏼 좋은글 간사합니다!
인사피어
ㅎㅎ 그 영상 보셨군요!!! 그 영상보고 의미에 무게를 두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저도 여전히 매일 싸우고 있어요. 공감의 말씀, 너무 감사해요!(ღ◕ܫ◕ღ)
반려산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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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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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앗! 이건 뭐... 딱 제 마음 같아요. 저는 의미를 좇지 않고 과정을 통해 행복을 발견한 지 오래 됐지만 요즈음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의미에 무게를 두되 집착하지 않을 온도... 그것을 배우고 갑니다^^
인사피어
언제 이렇게 공감과 응원을 가득 주도 가신 거에요?ლ(╹◡╹ლ) 마음 나눠주셔 감사해요!(ღ◕ܫ◕ღ)
세빌
😀
인사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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