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본질에 맞닿아잇는 질문들이란 나에게 사치였다. 주어진 환경이 거기까지 뚫고 가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남들은 꿈이라는 걸 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꿈을 꿀 새도 없이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집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일류대 진학을 목표로 오로지 공부만 했다. 현실과 드라마는 달랐다.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하면 일류대를 진학해서 인생역전의 발판이 시작되는데, 나는 무리하게 공부하다 보니 아파서 가장 중요한 고3기간을 통째로 날려먹어야 했다.
차선으로 선택했던 학과에도 가질 못했다. 언니와 엄마는 취업이 잘되라고 컴퓨터 관련학과에 넣으셨다. 사실 난 학원강사, 수학교사 같은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상실되기 시작했다.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니 방황은 부는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나마 베짱이처럼 클래식기타 동아리에서 음악에 취해 살 때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클레멘타인을 치면서 눈물을 흘릴 만큼 감성이 풍부했다. 어렴풋한 낭만이 있었다.
졸업 후 프로그램 개발보다는 기술지원 분야로 취업하였다. 기술지원 업무는 맘에 들었지만, 지원에 기본이 되는 전화 상담은 내겐 극약이었다. 어릴 적부터 전화로 통화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말하지 못하였고 할 말도 생각이 안 났다. 그저 머리가 텅 비어버리곤 했다. 결국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세차게 밟고 나니, 그제서야 꾹꾹 눌러놓은 질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질문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교사’에 대한 미련이었다. 그걸 꿈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제법 열심히 쫓아 어렵사리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교생실습을 가서야 ‘아, 내 길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당시 교실 학생이 35명이었는데 나는 많은 수의 학생을 가르칠 자신은 없었다. 통제할 수 있는 선을 훨씬 넘어섰다. 나에게 적합한 수는 4~8명이었다. 마음이 시키는 길을 처음 걸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상실이었다. 결국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세상사에 묻혀 급한 대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컴퓨터 강사, 회사원, 복지사, 아동센터 센터장까지 두루두루 헤매었다. 시간은 쏜 살처럼 빠르게 흘렀고 나는 암이라는 원치 않는 구간을 지나기도 했다. 그것을 계기로 모든 직업을 그만두고 건강 회복을 위해 쉬던 중 한 문자가 왔다. 다른 구의 자원봉사센터에서 독서지도사 자격증 강좌를 받아보라는 안내였다.
‘누가 문자를 잘못 보낸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도 되고 관심도 있어 참여하게 되었고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 후, 한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해 보면 어떻겠냐고 권유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뭔가를 찾아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고민하고 지냈는데 삶이 흘러가는 대로, 어쩌면 포기한 상태로 내 주장을 하지 않고 삶의 길을 따라와 보니 어느새 50대가 되고 나에게 적합하고 나도 즐거워하는 그 일이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이후 나는 마음의 결심을 두 가지 했다. 첫째는, 다시는 돈을 목적으로 직업을 구하지 않겠노라고. 둘째는 만약 직업을 갖는다면, 내가 먼저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요청이 오면 그때는 하겠다고. 독서지도사 자격증은 완치판정을 받기 전에 땄다.
정말이지 놀라웠다. 암 이전의 나, 안정된 삶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어쩌면 일중독에 빠져서 살아왔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내가 돈을 포기하고 콜링이 오면 그때는 일하겠다는 그 바람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독서지도는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독서지도사의 일이 내게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20대 때부터 늘 원하는 일을 찾아 인생을 돌아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로 취업한다. 자신을 잘 알아서 그에 맞춰 전공도 선택하고 취업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큰 손실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시간과 비용에서 큰 손실이다. 많은 청년이 전공한 학과와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았다면 시간을 좀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이 아무 상관이 없을 순 없겠지만, 돈을 우선시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그 일을 한다면 개개인도 기쁘고 만족하는 삶을 살 뿐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도 도출할 수 있고 훨씬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좀 더 젊은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학 자체를 목적으로 공부하고 모든 걸 올인한다. 반면 여타 선진국들은 각 학생들의 특징과 개성과 장점을 잘 살려서 대학 진학을 할 수 있게끔 학생을 돕는다.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큰 이득이 될 거라 믿는다.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인생을 돌고 돌아왔다. 그래도 잘 찾아오니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물론 헤매기는 했지만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격려해 본다. 독서지도에 특히 감사한 것은 초중등 아동들과 함께 수업하며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어린 꿈나무인 후대를 위해 내가 공헌할 수 있는 최선의 섬김이지 않을까 싶다. 부디 이 아이들만이라도 나처럼 인생을 헤매지 않고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진로의 길을 좀 더 이른 나이에 찾기를 바라본다.
<영심이의 오뚜기 인생: 필자소개>
살아오면서 다양하게 굴곡진 삶을 당당하게 맛보며 살아온 그녀. 1990년대 만화 캐릭터 영심이처럼 밝고 활기차게 그리고 가뿐하게 어려움들을 이겨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기에 더욱 행복하다. 2022년 세움북스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매일 SNS에 글을 올려왔고 2024년 <쓰고 뱉다 24기생>이 되면서 그녀의 글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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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진로 때문에 고민이 큰 요즘입니다. 대부분 안정된 직업을 위해 고시에 도전해서 노후를 보장받으라 하지만 저는 그걸 원하지 않고, 하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여러모로 복잡한 이익관계가 있어서 선뜻 발을 담그기도 무섭고... 그런 제게 아주 극소수의 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썩히지 말라시는데 영심이님의 글이 제게 말을 거는 듯합니다. 요청이 오면 가라! 힘을 내어 봅니다. 저는 오늘도 그저 준비할 따름입니다.
영심이
감사합니다!! 응원드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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