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은 나중에 좋은 원장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원장보다 더 멀리 봤으면 좋겠어요. 놀이를 연구하거나 기록할 때 선생님 눈이 가장 반짝이는 거 알아요? 더 배우고 가르치는 길도 생각해 봐요.”
매년 원장님께서는 한 학기에 한 번씩 교사들과 개인 면담을 하신다. 개인 면담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경직된 자리일 것 같지만 격려와 다독임의 의미가 큰 자리이다. 힘든 건 없는지, 개선할 점이 있는지 살피는 원장님의 마음을 가장 담뿍 느끼는 시간이다.
이번 면담도 원장님께 무엇을 말할까 고민하며 면담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입 벙끗 하기도 앞서 원장님께서는 쏟아내듯 말을 하셨다. 지금까지 나의 교사로서 모습을 봤을 때 원장 그 이후의 길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해주셨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함과 동시에 ‘와, 우리 원장님 정말 예리하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3년 차를 지나고 4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1급 승급 교육을 받고 나니 대학원에 대한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급 자격을 갖고 있는 보육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만 3년의 경력과 동시에 약 8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나도 원장님과 부모님들의 배려로 무려 어린이집을 2주간 가지 않으며 하루에 8시간씩 10일을 교육장에서 지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오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엉덩이가 베기고 몸이 찌부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보람’이었다.
아이들을 보육할 때 언제나 저경력 교사로서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부족함을 어떻게든 메꾸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아이들과 부딪혀 알아가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무언가 지식을 교류하고, 연구하는 기회가 있을 때 언제나 먼저 참여하고 싶다고 조르고, 교육이 있으면 바쁘더라도 신청해 들었다. 그렇게 언제나 배움에 목마른 사람이 나였다.
그랬던 내가 2주 동안이나 교육을 듣게 되니 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실제적인 사례 중심의 이야기가 강의 내내 수를 놓아지며 교수님들만의 꿀팁이 쏟아졌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수 없었다. 60여 명이 넘는 곳에서 가장 맨 앞자리 중앙을 사수했고, 쉬지 않고 필기하며 교재의 빈 공간이 빽빽하게 메워졌다. 교수님께 쉬는 시간에 찾아가 우리 반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상의하기도 일수였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 보낼수록 교수님들이 참 대단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문장과 행동을 알고 있는, 양질의 지식이 가득 찬 뇌가 부러웠다. 유려한 말로 현장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쏙쏙 끄집어 내는 그 입이 나도 갖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며 도움을 주는 것에 열정적이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나에게도 그러한 열정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홀로 끙끙거렸던 것이 생각나, 네이버 지식인에 유아교육과 관련 질문들에 모조리 답을 달아 순식간에 영웅 등급이 되었던 때가 떠오른다. 놀이 연구 모임에 들어가 우리 반의 특별했던 놀이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나의 모습이 생생하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아는 것을 공유하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나의 모습이 자꾸 교수님의 모습과 겹쳐졌다.
하지만 ‘교수’라는 직책은 내가 느끼기에 너무나도 커다래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큰 산 같았다. 오르고는 싶지만 오르기까지가 너무 험난해 엄두조차 못내는 그런 산. 그래서 그저 번뜩 생각나 얘기하듯, 대수롭지 않게, 그러나 진심 한 방울을 살살 풀어 넣어 엄마에게 말했다. “승급교육 때 교수님들이 참 멋져 보이더라. 나도 교수나 되어볼까?”
엄마는 “으응? 교수? 뭘 그렇게까지”라고 이야기하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떨떠름한 반응은 다시 한번 그 산이 나와 어울리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진심을 꼭꼭 숨기고 스쳐 지나가듯 이야기할 만큼 자신 없던 나는 그래, 내 주제에 무슨 교수야. 내가 그정도까진 아닌갑다 싶어 슬쩍 내밀었던 꿈에서부터 다시 슬쩍 물러났다. 용기를 적게 낸 만큼 포기도 빨랐던 꿈이었다.
그런데, 엄마 외에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그 고이 접은 꿈을 원장님께서는 알아봐 주시고, 언제 대학원을 가면 좋은지, 어느 시기에 박사과정을 가면 좋은지 애정 어린 말로 길을 세세히 알려주셨다. 그 가능성은 내가 먼저 꺼낸 말이 아닌, 오로지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원장님이 생각하셔서 내리신 판단이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왠지 모를 용기를 심어줬다. 내가 진짜 그러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길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도장이 쾅 찍어진 것 같았다.
유아교육과를 진학했을 때는 이 시기를 거쳐 교사가 되면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교사가 되니 교사의 길을 걷는 한 주임 교사와 선임 교사를 지나 원장이 되는 길이 나타났다. 아, 그럼 원장이 되는 것이 이 길의 종착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원장이라는 길 너머에도 또 다른 길이 있다고, 너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더 너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린이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나의 정보를 쏟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지금 일을 꾸준히 지속하면서 대학원에 가 석박사를 졸업하면, 가장 빠른 루트로 갔을 때 40대에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40대까지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나고 공부해야 할 모습들이 까마득해 보인다. 하지만, 벌써 꽤 재미있을 거란 짐작이 간다. 얼마나 나는 발전하고, 성장할까? 얼마나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더 좋은 곳으로 가자’라는 책에서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들었을 때의 순간을 저자는 이렇게 남겼다. ‘찰칵, 그 말은 사진처럼 찍혀서 오래 남았다. 사라질세라 그 순간을 잡아 마음에 담고 단단히 꿰매었다. 그건 한동안 부적이 되어 부정적인 말들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용기 내어 글로 꿈에 대해 써 내려가면서도 내 마음속 한 켠에서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불쑥불쑥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원장님께 들은 말을 마음속에 단단히 꿰매본다. 나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말,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말. 그 모든 말들을 모두 모아 잊지 않게 꼭꼭 담아둬야지.
또, 누군가 내 꿈을 밀어준 만큼의 용기로 꿈에 다가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여 보기 시작했다. 쑥쓰럽고 이걸 검색한다는 게 웃기지만 네이버에 ‘유아교육과 교수되는 법’이라고 검색해보았다. 연구 실적,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 일반 대학원과 교육 대학원의 차이 등등 모르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더라도 내 놀이가 연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놀이에 대한 고민 한 번 더하고 퇴근해야지. 아이들에게 좋은 문장이나 참고가 될 만한 정보들은 다 수집해 블로그에 저장해두고 계속 보자.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식지 않도록 지식인 활동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어디에든 어린이집과 관련된 글을 써보는 거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내 꿈에 한발짝 도달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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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어른을 가르칠 꿈을 가지시다니! 천상 교육자이십니다^^ 꿈 꾸는 일을 이루어 가실 때, 푸실 님의 가르침을 받는 아이와 어른은 분명 행복할 거예요~~ 응원합니다!
푸실🌱
천상 교육자라는 말에 푸스스 웃음이 나오네요. 쑥쓰럽기도, 또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해서요 🤣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예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 든든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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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1정 축하드려요. 문 뒤에 있는 새로운 길이 펼쳐지길 응원해요^^
푸실🌱
축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응원에 저도 덧빌어봅니다! 새로운 길이 펼쳐지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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