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왜 매번 바뀌나요?” 우체국 직원의 의심스런 눈초리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우체국내에 울려 퍼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임신을 하면 국민행복카드를 발급받는다. 임신을 하면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아서 여러 금융기관에서 카드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고 당연한 과정이 힘든 사람이 있다. 미혼모다.
미혼모의 임신과정은 쉽지 않다. 자신의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순간부터 친생부를 비롯해 가족과 대부분 갈등한다. 미혼모 본인은 아이를 낳고 싶지만, 낙태를 강요하는 가족을 피해 집에서 나와 친구 집이나 자취방 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친생부는 임신을 알자마자 책임을 지지 않고 잠적하거나 심지어 낙태를 강요하기도 한다.
미혼모에게 임신은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축하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병원에서 임신확인서를 받는 것조차 부담이다. 혼자 병원에 가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고 다시 은행이나 우체국등에서 카드를 발급받는 과정조차 벅차다. 임신한 미혼모를 처음 만나면 당장 병원부터 갔다. 임신한지 여러달이 되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일이 많았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비롯해서 아기가 건강한지 산모가 건강한지를 체크했다.
그러고 나서 임신확인서를 발급받고 카드를 발급받았다. 시중은행에서 카드를 발급받으면 여러 날이 걸리는데 우체국에 가면 바로 발급받을 수 있어서 우체국을 자주 이용했다. 그렇게 적어도 한달에 한두번씩 미혼모와 함께 우체국에 가서 카드발급 신청서를 적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었다. 우체국에 자주 가면서 직원들과도 익숙해지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도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어느날 우체국에 갔는데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직원분이 작정한 듯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은 여자가 왜 매번 바뀌나요?” “네?”라고 시선을 올려보는데 주변의 눈빛이 따갑다. 직원분은 재차 묻는다.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임신한 여자들을 매번 데리고 옵니까? 보기에 젊은 분 같은 데 뭐하시는 분이세요?”
그렇다. 몇 달동안 직원들은 나를 불륜남으로 보았던 것이다. 난 매번 여자가 바뀌고 그것도 죄다 임신한 여자들만 데리고 왔다. 나이도 다양했다.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것도 되게 친절하던 내 모습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 사람 저러면 안되지라며 직원끼리 이야기하다가 한분이 총대를 멘것이었다.
한순간에 불륜남이 되는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내 마음은 혹여나 미혼모에게 또 다른 불편한 시선이 갈까 조심스러웠다. 직원분께 작은 목소리로 말씀 드렸다.“제가 미혼모를 돕고 있어요.” 그제서야 직원분은 세상 평화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로는 우체국에 갈 때마다 환대 받았다. 반갑게 맞아주셨고 카드발급도 잘 처리해 주셨다. 그리고 더 이상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도 묻지 않았다.
미혼모를 돕는 일은 단순히 은행카드만을 발급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함께 쉼터에서 생활할 때는 임신한 미혼모의 양수가 터지면 새벽이고 저녁이고 병원으로 가야했다. 출산날이 다가오면 아내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가 도왔고 난 입원준비를 하면서 출산을 도왔다. 그렇게 돕는 것이 미혼모를 환대한다 생각했다.
예전에 쉼터에 있다가 퇴소한 한 엄마가 저녁에 꼭 보자며 우리 부부를 불러내었다. 불러낸 곳은 돼지김치찌개 집이었다. 나와 아내에게 꼭 밥 한끼를 대접하고 싶다며 자기는 요리에 젬병이어서 이 지역에서 제일 맛있는 집으로 초대했다고 말했다.
미혼모를 도우며 처음으로 미혼엄마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난 미혼엄마가 이 밥 한끼를 우리에게 먹이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 미혼엄마는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돈을 벌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스스로 아이를 키워야했고 부모님을 부양도 해야 했다. 그런 형편에 미혼엄마는 자기의 최선을 다해 최고의 마음으로 대접해주었다. 밥을 먹는 내내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으로 울면서 먹었다. 밥 한끼 먹여주는 그 마음이 귀했다.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이 말 그대로 정성껏 후하게 대접받았다. 별거 아닌 밥 한끼처럼 보이지만 밥을 먹으며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난 내가 미혼엄마들을 환대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난 분명히 환대받고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환영받고 인정받았다. 인정한다 생각되니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인류학자 김현경씨가 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인간이 사람이 되는 것은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받을 때라고 말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환대하는 것이고 진정한 환대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환대라고 말한다. 작가는 절대적 환대의 특징을 세가지로 말한다. 첫 번째는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이다. 둘째는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마지막은 복수하지 않는 환대이다. 난 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환대가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 생각한다.
미혼모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도 환대받지 못한다. 환대는커녕 여러 다양한 소리로 오해와 편견이 주어진다. 애가 애를 낳는다부터 시작해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여자라는 억측도 있다. 더 나아가 아이마저도 미혼모의 아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이 모든 것은 미혼모를 인정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된다. 미혼모의 이름은 아이를 낳고 생명을 지킬 때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미혼모’란 이름은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미혼모’란 이름은 생명을 지킨 대가이다.
우리가 서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환대의 발걸음이 시작된다. 환대의 한걸음은 서로를 마주하며 사랑할 수 있는 시작이다. 우리의 환대가 사회의 약자들에게 함께 살아갈 우리의 이웃이 되길 바래본다.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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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니신나
환대하는 사람은 이리 따스하고 멋지네요^^ 생명을 지킨 대가로 기꺼이 사회적 약자가 된 분들을 저 역시 환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쓰고뱉다와 함께 하는 오늘의 글 한잔
귀한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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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빌
눈물의 돼지김치찌개를 함께 먹은 것처럼 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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