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_ 음울한 취향

각자 행복을 느끼는 결이 다른 거야.

2022.02.10 | 조회 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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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계절들

에세이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에세이.

 누군가 자신이 읽던 책에서 맘에 드는 페이지를 찍어 sns에 올린 것을 보았다. 평소 독서를 잘 하지 않는 나는 그런 조각글이라도 눈에 보였을 때 자세히 읽으려 하는 편이다. 물론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훨씬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오늘 본 그 게시물 속 책은 제목을 여러 번 들어 봤던 책이었다. 차분하고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들, 그 속에 긍정의 기운이 꽉꽉 들어차 있는 글이었다. 조각글들을 읽으며 느꼈다.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어쩐지 다 우울하고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고. 같은 이야기를 써도 쓰는 사람이 어떤 방향을 향해 있냐에 따라 긍정적인 글이 되기도, 부정적인 글이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해보려 한다. 이왕이면 긍정적 기운을 담은 글을 써보기로. 흔한 말 있잖은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긍정적인 방향을 향해 있으면 정말 밝은 기운들이 나에게 절로 찾아올 것 같다.

 예전부터 나란 인간은 우울하고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긴 하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을 때 밝은 음악 보다는 단조의 왠지 어두운 음악들을 더 좋아했다. 대학 때 우연히 알게된 ‘못(Mot)’이라는 밴드가 기억난다. 완전 우울의 끝판왕인 것 같은 멜로디와 가사로 된 음악들을 듣고 처음 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궁금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제목도 다 잊어버렸지만 한참 심취해서 새벽 감성을 제대로 뽐냈었다.

 또 사진 동호회 활동을 했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 회원들끼리 전시를 열었었는데 전시가 끝나면 각자 맘에 드는 작품을 찜해 놨다가 서로 서로 나눔하는 풍습이 있었다. 어떤 해의 전시에 굉장히 어둡고 약간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사진이 전시된 적이 있다. 폐교 같은 장소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등장하는 식이었는데 그 작품이 내 맘에 들었다. 집에 걸어 두기 어려운 작품이라 다른 회원들은 가져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작품 주인 분도 내가 그 작품을 가져 가고 싶어 하는 걸 의아해 하며 재차 되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어이 한동안 내 자취방 벽면에 그 작품 액자가 걸려 있었다. 나도 잘 모른다. 왜 그런 것에 끌리는지.

 


 어두운 분위기의 것들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는 것은 그저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취향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어둡게 살아가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다. 각자 행복을 느끼는 결이 다른 것 같다. 무조건 폭죽을 터뜨리고 방방 뛰어야 행복한게 아니다. 은근하게 저 속에서부터 따스해져오는 행복도 있고 고요하게 혼자일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가을산. 2021
가을산. 2021

 오래 전 어느 해의 생일 날 혼자서 등산을 간 적이 있다. 집 근처에 유명한 산이 있었고 전에 일로 한 번 가 본 곳이었다. 생일과 주말이 마침 겹쳐서 이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고자 아침 일찍 산행을 떠났다. 하필 내 생일은 단풍이 무르익는 가을이었고 조용히 오르막을 오르며 생일날을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입구부터 느낄 수 있었다. 가을 주말을 맞아 산행을 즐기러 온 다양한 산악회 회원들로 등산로는 금세 가득 찼고 거의 쪼르르 줄지어 오르고 내려오는 형상이었다.

 혼자서 꿋꿋이 산행을 즐기며 후다닥 올라갔다가 정상에서 왔다갔다 몇 번 하고 다시 후다닥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더 가파른 길을 선택해 다른 사람들을 추월해 가며 빠르게 내려왔고 후에 며칠을 근육통에 시달렸다.

 결과가 그렇게 되긴 했지만 지금도 그해 생일이 기억에 남아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걸 보면 괜찮은 시도였던 것 같다. 홀로 자연 속에서 고요히 하루를 보내려 한 것이 내겐 내 행복을 찾으려 한 행동이라는 거다. 이러한 행복의 결을 이해해 줄 사람들이 많을 걸로 믿는다.

 음울한 것들을 좋아하는 내가 문제인 건가 하는 생각은 이제 더이상 안 해도 되겠다. 행복을 느끼는 결이 다른 것이고 나는 언제나 내 행복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라는 오늘의 결론. 이 글이 처음의 다짐 대로 꽤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온 것 같아 다행이다.

 


구독자님은 언제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가요? 저와 비슷한 결이신가요? 오늘도 우리 자신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봅시다.

 

*첫 단락에서 말한 책 제목은 ‘평일도 인생이니까(김신지)’

*Mot 음악 찾아봤다. 자주 듣던 노래 -> cold blood, 날개, 서울은 흐림 등등

[Cold blood] 가사

널 처음 봤던 그날 밤과
설렌 맘과 손톱 모양 작은달
셀 수 없던 많은 별 아래
너와 말없이 걷던
어느 길과 그 길에 닿은
모든 사소한 우연과 기억

널 기다렸던
나의 맘과 많은 밤과
서툴었던 고백과
놀란 너의 눈빛과
내게 왜 이제야
그 말을 하냐고 웃던
그 입술과 그 마음과
잡아주던 손길과

모든 추억은 투명한
유리처럼 깨지겠지

유리는 날카롭게
너와 나를 베겠지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

나의 차가운
피를 용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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