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_ 결핍을 잊기 위한 그림

2022.05.15 | 조회 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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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계절들

에세이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에세이.

 아침 잠에서 깨며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여 자리에 누운 채로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이런 날은 이불을 털고 일어나는 게 유난히 더 힘들다. 매일을 긍정적인 기운을 갖고 오늘 내가 할 일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는 사람도 있을까. 최근 읽은 책의 저자는 성공의 비법을 얘기하며 그 비슷한 얘길 하던데. 그 글귀 내용이 머리 속에 아른거리며 현재의 내 모습이 더욱 먹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아 그냥 침대 아래로 꺼져 버릴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분명 어젯밤에는 뭉근하게 온화한 만족감을 안고 잠에 들었는데 말이지. 그림 한 장을 완성시키고 내 맘에 드는 결과물을 얻은 것 만으로 기쁘고 뿌듯해서 즐겁게, 하루를 허비했다는 한점 부끄럼도 없이, 오늘 하루 인간답게 살았다 싶은 만족감을 안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단 말이다. 근데 단잠에서 깨어나는 마음이 왜. 

 사람 마음이 너무 간사하다. 지속성이란 게 없다. 나만 이런 건가 모르겠지만 만족은 너무 순간이고 이내 곧 결핍 상태가 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한다. 채우기 위해 보내는 시간 동안은 그나마 좋다. 무언가 채워가는 중이라는 건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아무 죄책감도 없이, 아니 이런저런 것들을 인지할 새도 없이 지나가니까. 그림을 완성한 직후는 이제 만족감을 그저 즐기는 시간이다. 좋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또 본다. 어디를 조금 고치면 더 나아질까 이리 살피고 저리 살핀다. 모두 좋다. 근데 딱 거기까지. 다음 날이면 또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전 그림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되고 다시 또 결핍 상태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림을 목말라 하는 것일까, 결핍을 피하고 싶은 것일까. 그림을 내 심신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그림을 좋아하긴 하는 걸까. 몰라.

커다란 잎, 2022
커다란 잎, 2022

 이 글을 쓰다가 마무리를 못 짓고 지내던 중 우연히 범죄심리학자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분석하는 영상을 보았다. 연쇄살인범들의 심리를 얘기하던 중 이런 얘기를 했다. ‘살인을 저지른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대상을 물색하고, 살인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자신이 얼마나 실패자인지 잊을 수 있기에 또 살인을 저지른다..’ 오잉? 이거 내가 그림을 대하는 내 심리에 대해 쓰던 글의 맥락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사람 심리라는게 거기서 거기인 건지, 아님 내 안에 범죄자들의 사고 체계가 있는 건지?? 그나마 나는 그 탈출구가 살인이 아니라 그림이라서 다행인 건가…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이 지나 ‘아, 그때 그래서 내가 그랬던 거구나’하고 문득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나라는 애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나를 좀 더 잘 파악하게 되는 순간들인 건데,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는 꽤나 결과 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결과만을 그리며 달려가고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크게 좌절하며 그 과정까지도 부정하고 싶어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결과를 중시하는 내 태도가 반영되어 벌어진 사소한 사건들이 왕왕 있어 왔더라.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과정을 즐기는 자가 결국 결과도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하기란 너무 어렵다. 멀리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조급함을 버려야 더 그림 자체를 즐길 수 있을 텐데. 마음에 여유가 없어 그런가 보다. 다들 이렇게 하루하루를 허비했다는 죄책감 없이 살기 위해 애쓰는 걸까? 아무런 결핍 없이 채워지는 방법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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