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2025년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네요. 예전엔 깨끗한 물을 조심스레 떠서 한 방울 떨어뜨릴세라 천천히 들어 올리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던 것 같은데요. 언젠가부터 구내식당 콩나물국처럼 퍼올리더니 올해는 그보다도 밍숭맹숭한 맘으로 해를 넘어 왔어요. 새해의 설렘이 조금도 없는 스스로가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니까요.
곯아버린 사과처럼 퍼석퍼석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득 이 노래를 듣고 싶어졌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한 곡 재생으로 밤새 들었어요. 체감상 메마른 사과에 꿀이 차오른 밤이었어요. 새해 첫 편지를 어떤 내용으로 보낼지 고민하다가 만든 이가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이 노래를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1967년, 서울 남대문 사거리 그랜드호텔 나이트클럽
열여섯 살 여고생이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연습 삼아 선 무대였어요. 나이트클럽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던 남자가 그 목소리를 듣고는 무대 가까이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보호자였던 작은 아버지에게 노래 몇 곡을 시켜보아도 되겠느냐 물었죠. 노래를 들은 남자는 가사 없는 색소폰 연주곡 LP판을 내밀며 곡을 익혀오라 말합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두 사람은 녹음실에서 재회 하는데요. 남자는 전에 준 색소폰 연주곡에 이 가사를 붙여 불러보라며 종이를 쥐여줍니다.
그는 당시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였고 영화 OST 의뢰를 받아 곡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멜로디는 나왔는데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찰나, 밥 먹으러 간 나이트클럽에서 원하는 목소리를 만나게 된 거죠. 녹음 부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예상대로 곡과 목소리는 잘 어울렸고 만족스러운 곡이 빠르게 완성되었습니다. 극적으로 세상에 나온 노래는 발매 직후 큰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흘러서도 명곡으로 회자 되는데요.
어떤 영화감독에게는 감상 이상의 영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를 모티브로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작품의 OST로 다시 한번 이 노래를 소환합니다. 어떤 음악인지 눈치채셨나요?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2022년 개봉한 <헤어질 결심>을 통해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받았던 정훈희 <안개> 탄생에 얽힌 비화입니다. 사실 <안개>는 1967년 개봉한 신성일∙윤정희 주연의 영화<안개>의 OST로 만들어진 곡인데요. 발매하자마자 정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반도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인정받았으니까요. 인기에 힘 입어 1970년, 정훈희는 <안개>로 동경 야마하 국제가요제에 참가하는데요.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 최초 국제가요제 출전 이력입니다. 정훈희가 이렇듯 세계 무대에 나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를 알아본 작곡가 이봉조의 영향이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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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라 불리는 사나이, 이봉조
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이봉조에겐 별명이 있습니다. 한국의 스탠 게츠, 그리고 연예계의 불도저입니다. 스탠 게츠는 미국을 대표하는 색소포니스트인데요. 놀라운 이봉조의 색소폰 연주 실력을 가늠케 하는 수식어지요. 다른 별명인 연예계의 불도저는 한반도를 넘어 먼 세상으로 질주하던 그의 갈증과 결단을 보여줍니다. <안개>가 발매된 지 2년이 지난 1969년 무렵, 일본에 발매된 정훈희 음반의 반응이 괜찮다는 걸 안 이봉조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데요. 그 첫 발자국이 바로 동경 야마하 국제 가요제에 참가하는 것이었죠.
이들의 도전은 무척 경쾌한 첫발을 뗐습니다. 580개의 곡이 경쟁한 가운데 top 10안에 드는 입상을 거머쥐었거든요. 이는 이봉조에게 자신의 음악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동경에서 첫 번째로 열린 국제가요제였던 만큼 타국의 가요제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했던 행사였기 때문에 그에게 대회 참가를 제의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봉조에게는 먼 세계가 빨리 오라 손짓하는 시절이 열리게 된 셈이지요. 이때부터 그는 세계 각국의 가요제에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동경에 함께 갔던 정훈희는 1972년 아테네 국제가요제와 1975년 칠레 국제가요제에 함께 참가합니다. 일본, 그리스, 그리고 칠레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습니다.
1975년 대마초 파동, 3년 뒤 전해진 깨끗한 마음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쾌속 질주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급정거합니다. 1975년 대중문화계에 암흑기라 불리는 대마초 파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마초 파동은 다수의 연예인이 대마초 흡연을 이유로 체포되었던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관련 법규가 없던 시절이라 대마초 흡연이 불법이라거나 구속 사유가 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단속의 여파로 백여 명의 연예인이 체포되었고 그들 중엔 정훈희도 있었습니다. 대마초 흡연 현장에 함께했던 것은 맞지만 흡연하지 않았기에 훈방 조치 되었으나 엄혹한 시대였습니다. 풀려난 것과는 별개로 방송엔 출연할 수 없었거든요. 그녀를 둘러싼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이봉조가 그녀에게 곡을 건넸습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겐 이미 아름답기로 입소문이 났던 노래인지라, 탐내는 가수도 많았던 곡입니다. 그럼에도 이봉조는 자신이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만든 이 노래의 주인은 정훈희 한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하는데요. 곡이 정말 정말 아름다워서요. 이봉조로부터 이 곡을 건네받을 당시에 정훈희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자꾸 상상해 보게 됩니다.
이봉조가 그녀를 위해 만든 <꽃밭에서>가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든 그 노래예요. 메마른 사과를 꿀사과로 만들어준 그 노래요.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 사랑스러운 사연과는 별개로 여전히 세상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불도저의 저력을 발휘해 다시 한번 타국으로 떠납니다. 그냥 타국도 아니고, 한국과 정반대에 있다는 칠레로 말입니다.
1979년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거머쥔 이렇게 좋은 날
1979년, 정훈희와 이봉조는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로 칠레 세계 가요제에 참가합니다. 한국에서 맞이할 수 없던 이렇게 좋은 날을 지구 반대편에서 능동적으로 거머쥐기로 한 거죠.
한복을 입고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는 정훈희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흑백 영상임에도 볼 때마다 어쩐지 꽃분홍 코스모스가 떠올라요.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늘상 유효하진 않을지 모르겠지만 1979년 정훈희에겐 그랬을 거예요. 그녀는 <꽃밭에서>로 칠레 세계 가요제에서 최우수인기상을 수상하거든요. 이는 국내에서도 국위선양 소식으로 화제가 되었고 한국 방송국에서도 칠레 세계가요제 영상을 방영했습니다. 곧이어 나라의 위상을 드높인 그녀를 선처하겠다는 당국의 발표도 이어졌습니다. 영화적인 순간이죠. 그렇지만 우리네 삶은 영화처럼 순탄하지 않으므로 곧바로 이렇게 좋은 날이 이어지진 못합니다. 1979년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았던 <꽃밭에서>는 1988년이 되어서야 국내에서 널리 불리며 큰 사랑을 받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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ᅠ<꽃밭에서> 가사는 이게 전부예요. 이게 전부인데 왜 그리도 저리고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일상의 동력을 꿈보다 해몽에서 찾는 저에겐 오늘의 주제 역시 부풀려 해몽할 여지가 그득그득하다는 것을 밝힙니다. 근데 안 할래요. 올해의 마음가짐은 구내식당 콩나물국처럼 퍼 올렸지만, 올해 첫 편지를 고민하던 마음은 단정하고 깨끗했거든요.
오늘 편지의 목적은 사실 이 노래 가사 세 줄이 전부였어요. 예쁘고 작은 들꽃, 네 개의 이파리가 단정히 붙은 네잎클로버, 울긋불긋한 단풍잎과 은행잎을 주워서 코팅하여 건네는 마음으로 보내고 싶었습니다.
올해 당신 눈에 들어올 고운 빛의 꽃잎
가늠도 안 되게 좋은 존재의 등장
몹시 사랑하여 어디서 나타났을까 싶어지는 아름다운 의문
그렇게 펼쳐질 그토록 좋은 날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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