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

없는 걸 알고 봐도 당황스러웠던 체코 산타, 니콜라스에 대하여

2024.12.20 | 조회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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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멋진 구시가지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멋진 구시가지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12월도 어느덧 절반 이상 지나갔네요. 구독자님께 2024년 12월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이번 12월은 살면서 즐겼던 크리스마스 시즌 중 가장 짙은 빨간색이었어요. 이토록 밀도 높은 크리스마스 월간이라니... 만약 우리가 만난 12월들을 크리스마스트리로 형상화할 수 있다면요. 올해자 트리는 온갖 오너먼트로 가장 촘촘하게 꾸며져 있을 것 같습니다. 12월 달력을 펼치기도 전부터 곳곳엔 트리며 눈꽃 장식이 들어서기 시작했고요. 흉기처럼 보이는 뭔가를 둘러메고 걷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니 트리가 될 나무를 사 가는 모습이더라고요. 

저 흉기처럼 들고 가는 거 보이시나요...? 트리가 될 친구들입니다. 
저 흉기처럼 들고 가는 거 보이시나요...? 트리가 될 친구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크리스마스’ 하면 어딘가 다정하고 귀여운 그림체만 떠오르지만요. 생각보다 살벌하고 어딘가 달라 당황스러운 지점이 있었어요. 그중 첫 번째로 꼽을 것은 일 년에 딱 하루, 12월 25일 밤에만 열일하시는 산타클로스의 몽타주예요. 여태껏 제가 알던, 핀란드 그분이랑 생김새가 몹시 다르더라고요. 배송 물량이 많아 본부에서 일을 나눠서 하는 건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오늘 당신께 보내는 편지는 그 궁금증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디스크 조각 모음으로 만들어진 산타클로스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사는 곳은 핀란드, 굴뚝에 어떻게 들어간다는 건가 싶은 통통한 몸과 풍성한 흰 수염, 자라서 보니 어린이 보다 술을 더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드는 붉게 물든 뺨. 착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한 망태기 가득 이고 다니는 산타할아버지는 사실 이곳저곳의 이야기 조각 모음으로 꿰매져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그래요. 산타는 애당초 없으니, 모든 게 허구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 어쩌면 모르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해요. 환상의 환상을 더해 만들어진 산타의 실체를 깨닫고 어릴 적 그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만큼이나 큰 충격에 휩싸였거든요. 

핀란드 산타마을 [출처:santaclausvillage.info]
핀란드 산타마을 [출처:santaclausvillage.info]

지금부터 산타클로스를 둘러싼 거짓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해체해 드릴게요. 시작은 그의 고향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사실 산타클로스는 핀란드와 아무런 연고가 없다고 합니다.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핀란드가 된 것은 한 아나운서의 발언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27년 핀란드 아나운서가 방송 중에 ‘산타클로스는 로바니에미 마을에 있는 코르바툰 투리 산에 산다.’고 말한 것이 굳어져 핀란드 주민이라는 믿음이 시작된 거라고 하네요. 북유럽 서동요가 따로 없지 않습니까? 참나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다음으로 알아볼 대상은 산타클로스와 환상이 호흡을 자랑하는 반려동물(?) 루돌프예요. 루돌프는 1939년생이라는 거 아세요? 산타클로스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가 3세기쯤 전해졌다는 걸 감안하면 새파랗게 어린 생명체인 셈이지요.

출처 : 위키피디아
출처 : 위키피디아

루돌프의 아버지는 미국인으로 백화점 광고부로 일하던 직원이었습니다. 그에겐 부인과 딸이 있었다는데요. 아내가 암으로 몸져 눕자,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딸은 우리 엄마만 다른 엄마와 다르다고 슬퍼했다고 해요.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백화점 직원은 자신의 딸을 위로하기 위해 동화를 한 편 썼고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진 루돌프 사슴코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읽은 그의 아내는 동화를 기고해 보자고 권유했다는데요. 아내의 제안으로 세상에 등장한 루돌프 사슴코는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산타와 루돌프가 설원을 달리는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그 풍경엔 노력하지 않아도 탐스럽도록 붉은 루돌프의 코와 산타클로스의 의상이 덧씌워지는데요. 산타클로스의 퍼스널컬러로, 다른 색은 상상도 안 되는 빨간 옷은 코카콜라에 의해 각인된 이미지라고 합니다(충격). 이전에도 붉은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공식처럼 빨간 옷을 떠올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요. 파란 옷, 녹색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도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탄산음료 하면 여름에 마시는 청량음료라는 이미지가 강하지요? 1930년 무렵, 탄산음료의 한계를 딛고 겨울에도 떼돈을 벌고 싶었던 코카콜라는 겨울 남자, 산타클로스를 모델로 구상합니다. 그리곤 콜라 패키지와 같은 빨간 의복과 탄산음료의 거품을 닮은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산타 할아버지가 콜라를 마시는 광고를 만드는데요. 이때 내세운 산타의 이미지가 오늘날 그 몽타주를 굳히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지난 주 환타와 스프라이트에 이어 산타할아버지 인상에도 큰 기여를 한 코카콜라. 새삼 얼마나 큰 힘을 지닌 기업인지 깨달았어요.

거짓말하지 않고 울지 않는 착한 아이한테만 선물을 준다더니...존재 자체가 공갈이었던 산타 할아버지... 그렇다면 이런저런 조각들이 오너먼트처럼 달라붙기 전, 산타 할아버지의 뼈대가 되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산타클로스의 원조, 성인 니콜라스

출처 : 위키피디아
출처 : 위키피디아

산타클로스의 원조 격인 인물은 3세기에서 4세기경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했던 성직자 니콜라스입니다. 니콜라스 성인의 진짜 고향은 핀란드가 아닌 오늘날의 튀르키예 아르시노에 지역입니다. 유복한 부모님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니콜라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며 살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는데요. 기독교를 만난 뒤 성직자가 되어 주교로 활동했던 니콜라스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무척 애썼다고 합니다. 

니콜라스를 둘러싼 수많은 미담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팔려 갈 위기에 놓인 세 자매에게 황금을 선물한 일입니다. 그가 주교로 있던 마을에 세 딸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딸들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신부 측이 마련해야 하는 지참금을 준비할 여유가 없던 아버지는 고민 끝에 딸들을 사창가에 팔아버리기로 결정했답니다. 이를 들은 니콜라스는 그 집에 황금이 잔뜩 든 자루를 건네기로 다짐하는데요. 겸손하여 선행을 알리기 민망했던 그는 밤중에 몰래 창문으로 들어가 세 딸의 결혼 지참금으로 충분한 양의 황금 세 자루를 넣어두었다고 합니다. 한밤중에 남몰래 베푼 니콜라스의 선행이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는 모두가 잠든 밤중에 선물을 주고 가시게 된 거라고 해요.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일화를 보니 산타클로스의 뼈대가 확실한데 이름은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요? 니콜라스와 산타클로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국가는 네덜란드입니다. 가톨릭 국가였던 네덜란드 역시 니콜라스 성인의 존재를 알고 지역에서 그의 날을 기리곤 했는데요. 니콜라스 성인의 이름을 네덜란드식으로 발음하면 신터클라스가 됩니다. 지역의 작은 축제에 불과했던 신터클라스의 날이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1850년 <신터클라스와 그의 조수>라고 하는 동화책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산타클로스가 축일 전날인 이브에 도착하여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포맷은 모두 이 동화책에서 비롯된 이야기예요.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그러나 네덜란드 동화책에 등장하는 신터클라스도 신부님이었던 니콜라스의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생김새와 의복을 착용하고 있는데요. 미국의 브랜드 코카콜라 사를 통해 붉은 산타가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아는 산타 할아버지의 모습은 미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산타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미국이지만 유럽 성인이 미국에 전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네덜란드의 영향이 컸습니다. 미국의 대표 도시인 뉴욕은 본래 네덜란드를 떠나온 이주민들이 뉴 암스테르담으로 일구었던 지역인데요. 이때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본토의 신터클라스 이야기를 미국 땅에 전파하게 됩니다. 이 풍습을 흥미롭게 접한 미국인들에 의해 이야기가 덧붙고 상업적으로 활용되면서 드디어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루돌프 대신 악마와 천사를 데리고 다니는 니콜라스 성인

길었던 산타클로스 조각 모음을 뒤로 하고 제가 겪은 충격 실화를 적고 싶습니다. 한 달 전쯤 니콜라스 성인이 등장한다는 이벤트 증기기관차를 타러 갔어요. 어이없게 기차를 한 대 놓쳐서 티켓 하나를 다시 끊었던 터라 야무지게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는데요.

이거 보고 어떻게 안 울지 하는 마음 반, 혀클리너 정보가 궁금한 마음 반
이거 보고 어떻게 안 울지 하는 마음 반, 혀클리너 정보가 궁금한 마음 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니콜라스 성인은 둘째치고 악마가 너무 무서워서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 눈알과 혓바닥을 제외한 모든 게 새까만 악마가 쇠사슬을 휘두르면서 어린이들에게 겁을 주는데요. 체코 어린이들이 안 우는 게 신기한 생김새였어요. 아찔한 경험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이 악마는 언제나 새카맣게 묘사되더라고요. 그로 인해, 오늘날엔 인종차별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요. 오래 이어져 온 전통이라 외관이 바뀌지는 않았고요. 다만, 흑인종이 아니라 석탄과 재가 묻어서 까맣다는 부연 설명이 따르고 있어요.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나쁜 어린이한테 선물 안 준단 얘긴 들었는데 나쁘게 굴면 악마가 응징한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라 신선했는데요. 앞서 산타클로스의 기본 세계관을 구축했던  네덜란드 동화책 <니콜라스와 그의 조수에>에 등장하는 조수가 이 악마, 크네히트 루프레이트(Knecht Ruprecht)입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악마는 어린이들에게 착한 어린이였는지를 묻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착한 어린이였다고 답하면 사탕, 과자 등 선물을 주고요. 그렇지 않았다고 답하면 자루에서 재와 석탄을 뿌립니다. 이 악마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향 아래 놓여있던 지역에서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종종 다른 버전의 이야기로 전통을 이어가기도 하는데요. 체코는 악마와 반대 축을 이루는 천사가 함께 등장해서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더라고요. 

마트 사탕 코너에서 볼 수 있는 니콜라스 쇼핑백
마트 사탕 코너에서 볼 수 있는 니콜라스 쇼핑백

아, 그 얘기를 깜빡할 뻔했네요. 니콜라스 성인이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것은 맞지만 니콜라스의 날은 12월 25일이 아니에요. 니콜라스의 날은 성인이 돌아가셨던 12월 6일입니다. 그래서 니콜라스 성인의 설화가 살아있는 유럽 곳곳의 도시에선 악마와 니콜라스 성인, 때로는 천사까지 합세하여 12월 6일을 기념한답니다.

머쓱하게 눈물 젖은 빵
머쓱하게 눈물 젖은 빵

이번 겨울 니콜라스 열차에서 받은 빵이에요. 착한 사람이라 받은 건 아니었어요. 물어볼줄 알고 기대했는데 다 큰 어른이 여기 왜 탔냐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빵 하나 건네고 사라진 천사. 감정노동에 지쳐버린 천사... 나한테도 연기해주지... 아직까지 아쉬워요.

각자 마음 속에 다르게 기억될 니콜라스, 그리고 산타클로스
각자 마음 속에 다르게 기억될 니콜라스, 그리고 산타클로스

오늘 전해드린 니콜라스와 산타클로스 이야기, 어떠셨어요?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담을 때까지만 해도 산타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일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모든 이야기를 넣고 보자기에 묶어 건네기 직전인 지금은 반박의 여지 없이 산타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존재하지 않겠어요. 이토록 많은 허구가 모여 어엿하게 여기 있는걸요. 이번 편지는 없다고 믿었던, 언젠가부터 있다고 의심조차 한 적 없던 산타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적은 셈이 되었네요. 마치 텅텅 비어 공갈빵이라 불리는 공갈빵이 그 이름, 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 곁의 산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나요. 없다고 믿을수록 버젓이 존재하는 산타 같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궁금한 마음을 마지막으로 편지를 마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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