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원조 한류스타 명숙씨

제2의 애국가로 불린 <노란 샤쓰의 사나이> 와 가수 한명숙

2025.01.23 | 조회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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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2025년 1월도 끝이 보이네요. 아직 열흘쯤 남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합니다. 

올해의 첫 달, 순항 중이신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예요. 

제겐 의미 있는 20여 일이었습니다. 궁금했던 도시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요. 멋진 취향을 가진 친구가 프라하로 놀러 와 준 덕분에 익숙해진 장소의 특별함을 다시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종종 드로잉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는 친구 옆에서 다음 편지엔 뭘 적어 보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도 좋았습니다.

1월 달력에 <낭만 장아찌 아이템 리스트>로 적어낸 것은 7개였습니다. 그중 무엇을 먼저 적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습관처럼 누른 초록 창을 통해 이분의 부고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모든 소재를 제쳐두고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 보내려고요.

오늘 보낼 편지는 1960년대 대중의 위로가 되었던 가수 한명숙의 이야기입니다. 

안기영과 김현순의 연애 사건 그리고 <방랑의 가인>

윤심덕과 김우진 [출처 : 아시아경제 '오늘 그 사람']
윤심덕과 김우진 [출처 : 아시아경제 '오늘 그 사람']

1930년 조선의 화두는 자유연애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집에서 골라준 정혼자와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때부터 청춘남녀의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가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인데요. 그러다 보니 이미 가정이 있는 기혼자가 사랑을 지키려 해외로 도피하거나 상대와 함께 목숨을 끊는 정사(情死)가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이중 대중에 잘 알려진 사건으론 1931년, 소프라노 윤심덕과 작곡가 김우진이 유서를 남기고 현해탄에 투신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1936년 4월 12일자 2면에 실린 '노래일흔 카나리아 안기영·김현순' 시리즈 첫회 기사. [출처 : 조선일보]
1936년 4월 12일자 2면에 실린 '노래일흔 카나리아 안기영·김현순' 시리즈 첫회 기사. [출처 : 조선일보]

당시 윤심덕과 김우진만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애가 있었습니다. 성악가 안기영과 그의 제자였던 김현순의 연애 사건입니다. 안기영에겐 가정이 있었지만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고 함께 해외로 도피하는데요. 이 사건이 얼마나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지 1933년 소설가 방인근은 이들을 모티브로 한 소설 <방랑의 가인>을 매일신보에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방랑의 가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방랑의 가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 소설엔 소프라노 강화숙과 스승 윤광우가 등장합니다. 화숙은 광우의 아내인 정애에게 큰 도움과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를 유혹합니다.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선 두 사람은 이탈리아로 도피하는데요.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늙은 광우에게 흥미가 없어진 화숙은 그를 버리고 떠납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광우는 비참한 생계를 이어가는데요. 그러던 중 조강지처 정애와 광우 사이에 태어난 딸, 순복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해서 이탈리아에 방문하게 되고 광우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됩니다. 순복으로부터 정애가 아직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광우가 고국으로 돌아 오면서 소설 <방랑의 가인>은 끝이 납니다. 

피난길에 선 여자에게 <방랑의 가인>은…

그 시절, <방랑의 가인>은 제법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 중엔 한명숙의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 역시, 처음 작품을 읽을 땐 주인공 광우와 화숙에게 집중했을 것 같은데요. 벼락같은 포탄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소용돌이 한복판에 선 그녀의 마음엔 다른 장면이 어른거립니다. 

훌륭한 가수로 성장해 아버지와 조우하는 순복이. 

고향이었던 평안남도를 등지고 남한으로 향하던 피란길에서 어머니는 순복이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전쟁을 피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한명숙의 아버지는 사업차 홀로 남한에 거주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명숙은 그를 찾아 남한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길의 끝에 남편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던 어머니에겐 이역만리 떨어진 이탈리아에서 아버지를 만난 순복의 서사가 한 줄기 희망이었을까요. 어린 한명숙의 가슴엔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어머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인터뷰할 때도 그날의 피란길을 언급할 정도로 말입니다. 

가슴에 박힌 생생한 이야기는 때론 주문이 되기도 하는 걸까요. 어렵사리 인천에 정착한 명숙은 16살 무렵 악극단에 발을 들이며 가수의 삶을 걷게 되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휴전이 선포되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인천을 넘어서까지 알려지게 되죠. 개성 넘치던 한명숙의 보이스는 미군 부대에서 팝을 부르기에 최적이었습니다. 들리는 대로 가사를 받아 적어 부른 탓에 어색한 발음도 인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순식간에 미8군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그녀는 한 작곡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한명숙을 <방랑의 가인>으로 만든 사나이, 손석우

손석우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손석우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한명숙의 개성 넘치는 목소리를 알아본 사람은 작곡가 손석우였습니다. 그는 새로운 음악에 도전하는 작곡가로도 유명했는데요. 1960년엔 한국에서 생소했던 컨트리 뮤직의 시초인 ‘힐빌리’ 스타일의 곡을 작곡합니다. 그리고 이 곡을 한명숙에게 주는데요. 곡을 처음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뜻미지근했습니다. 단순한 힐빌리 리듬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은 동요에 털이 난 것 같은 노래라며 악평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형식에서 탈피한 이 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제2의 애국가 <노란 샤쓰의 사나이>

한명숙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한명숙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1961년 발표된 이후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노래, <노란 샤쓰의 사나이> 가 처음 울려 퍼진 순간입니다. 공개된 한명숙의 음반은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멋 좀 부린다는 사람들은 죄다 노란 셔츠를 사 입었고요. 택시 운전사의 유니폼으로 노란 셔츠가 등장한 것도 이때라고 하니까요.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지는데요. 한명숙은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 역할을 맡아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노란 물결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전역으로 흘러갑니다. 일본, 홍콩, 다수의 동남아 국가에서도 한명숙의 목소리는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디트 피아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프랑스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가 한국어로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일도 있었죠. 

한명숙은 생전 인터뷰에서 외국인들이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한국의 애국가인 줄 알더라는 일화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요.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당시 한명숙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많은 음악평론가가 1961년을 원조 한류스타가 탄생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순복의 실사화에서 원앤온리 한명숙으로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힘입어 공연이 거듭되던 나날이었습니다. 1962년 한명숙은 부산의 삼일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공연장으로 누군가 그녀를 찾아옵니다. 십여 년 전 전쟁 통에 생사도 확인할 수 없던 아버지였습니다. 한명숙이 안에 있다는 홍보문구를 발견한 아버지는 공연장까지 그녀를 만나러 왔습니다. 명숙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방랑의 가인> 속 한 장면이 재현된 순간이 아닐 수 없는데요. 현실과 소설은 같을 수 없죠. 명숙은 순복일 수 없었습니다. 노년의 한명숙은 재회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회고합니다. 오랜 시간 자신과 어머니를 찾지 않았던 아버지, 심지어 새 가정을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살갑게 지낼 수 없었다고요. 

미8군 무대의 여성 그룹사운드 레이디버그 [출처 : 자유일보]
미8군 무대의 여성 그룹사운드 레이디버그 [출처 : 자유일보]

<방랑의 가인> 속 순복의 실사화라는 설명으로 그녀를 담기에 한명숙이 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혜성처럼 떠오른 한명숙을 필두로 미8군은 스타 배출의 장이 됩니다. 현미, 패티김, 이미자, 신중현, 윤복희 등 이름 석 자로 모든 걸 설명하는 대가수들은 한명숙 이후 미군 부대에서 빛을 발한 아티스트들입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5.16 군사 쿠데타로 항간에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만큼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에 한명숙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대중의 위로가 되었음은 자명합니다.

노랗고 누랬던 한명숙의 일생

노란샤쓰의 사나이 바이닐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노란샤쓰의 사나이 바이닐 [출처 : 박성서 음악평론가]

노란과 누런은 한 끗 차이로 장조와 단조가 되지요. 대중음악사 속 한명숙의 이름은 경쾌한 노란 명찰에 적혀있지만요. 한명숙이라는 개인의 인생사엔 군데군데 누런 눈물자국이 묻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며 아버지와 헤어져야 했고요. 일찌감치 남편을 여의고 홀로 세 명의 자식,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살아야 했습니다. 가수에게 너무나 중요했던 성대에도 문제가 생겨 2차례 수술을 받았고 3년 동안 노래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음악으로 대중을 위로했던 한명숙은 2000년 국민 문화훈장과 2003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연합뉴스]

공로상쯤 수상한다면 평탄한 말년이 연상되지만, 마지막까지도 쉽지 않았습니다. 드문드문 서는 밤무대에서 번 돈을 공황장애에 걸린 아들 치료비로 쓴 탓에 사글셋방에 사는 모습이 방송에 공개되었거든요. 그녀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던 후배 가수들은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데요. 2013년, 후배들의 도움에 힘입어, 한명숙은 60년대 인기를 끌던 안다성과 명국환과 함께 새 앨범으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일 맛있는 걸 아껴두었다 나중에 먹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시작부터 노오랗게 터지던 달콤한 과육을 먹은 뒤, 눈물 나게 쓰고 눈물처럼 짠 삶을 꼭꼭 씹어낸 한명숙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아프더라고요. 아무것도 아닌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결국 그녀가 맛본 짜고 쓴 맛까지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최선의 존경과 애도더라고요.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60년대 인기가수 한명숙이 아닌, 어려움 속에도 여든이 될 때까지 음악 활동을 이어오던 아티스트로 그녀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2025년 1월의 한국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뿌연 미세먼지로 고통스럽다고 들었습니다.

마스크 잊지 마세요. 

다음번엔 <낭만 장아찌 아이템 리스트>에 적어둔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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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레나

    0
    5 months 전

    요즘 드라마로 다시 나온 수상한 그녀를 보고 있는데, 거기서 처음 듣고 매일 같이 흥얼거리고 있는 <노란 샤스의 사나이>가 이렇게 애틋한 스토리를 지닌 분의 노래였다니! 오늘의 장아찌 덕분에 저는 또 한 번 낭만에 담겼다 나오게 되었네요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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