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세상은 꽃으로 가득하고 봄밤은 달큰하네요. 4월이 왔습니다. 2023년이 어느덧 1/3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들다가도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에 그 사실을 잊습니다. 4월 1일은 장국영의 날입니다. 올해로 20주기가 되었다는 게 정말 거짓말 같더라고요. 사실 거짓말 같다는 말이 거짓말 같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장국영을 처음 만난 건 이미 그가 떠난 지 9년이 지난 2012년 11월이었으니까요. 수능 끝나고 무한한 자유가 생기면 뭘 제일 먼저 할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왜 홍콩영화에 빠졌는지 원인을 좀 파헤쳐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비정전, 천녀유혼, 영웅본색, 해피투게더... 그 뒤로는 장국영으로 대표되는 홍콩영화의 빛나는 나날이 지나간 시절이라는 게 아쉬운 마음으로 살았네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장국영이 빛나던 그 시절, 한국의 청춘들을 울고 웃게 했던 홍콩영화를 담아 보냅니다.
빛나는 별, 홍콩영화
홍콩영화는 1980년대~90년대 한국에서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화 검열이 심했던 한국은 60년대 이후 한동안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계에는 60년대부터 두각을 드러내던 사람들이 80년대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볼 게 없던 청년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작품들이 바로 별세계, 홍콩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아시아에서 가장 이국적인 도시국가였습니다. 여러 나라의 문화들이 모여 있는 만큼 다양한 장르와 독특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죠. 이 영화들은 문화생활에 목이 마른 한국 청춘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세계 속에 한국이 알려지면서 할리우드 영화를 과거보다 쉽게 배급해올 수 있게 되었고 또 ‘쉬리’와 같은 웰메이드 한국 영화가 내부에서 만들어지면서 서서히 홍콩영화의 인기는 추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80년대 화려한 자극으로 가득했던 홍콩영화는 그 시절 젊은이들 가슴 속에 소곤대며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영화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하면 당연히 하나만 꼽긴 어려운데요.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영웅본색’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찰인 동생과 조폭인 형의 이야기를 다룬 느와르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서 홍콩에는 숱한 영웅본색의 후속작과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4월이면 생각나는 장국영이 죽기 전, 전화부스에서 통화를 하는 장면이 늘 눈물겹게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또 하나,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능수능란한 액션신을 소화하던 우리들의 따거, 주윤발도요.
‘천녀유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도 장국영이 열연을 펼쳤는데요. 아름다운 처녀 귀신 왕조현과 사랑에 빠진 어리바리한 유생 역할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천녀유혼의 성공 이후에는 이렇듯 귀신과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로맨스 또는 강시 등이 등장하는 호러물(?)들이 연이어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장국영이 출연하지는 않지만, 눈빛으로 사람을 녹이는 양조위가 열연했던 ‘중경삼림’ 요즘도 리마스터링 버전이 개봉하면서 많은 팬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재밌는 점은 정작 중경삼림은 개봉했을 당시 한국에서 큰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중경삼림과 영웅본색, 천녀유혼을 비교해보면 왠지 알 것도 같아요.
욕심내어 하나 더 말하고 싶은 영화는 홍콩 사대천왕 중 한 명인 여명과 '화양연화'에서 관능미를 뽐내던 장만옥이 열연했던 ‘첨밀밀’입니다. 두 남녀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만나게 되는 스토리가 뻔하면서도 안타깝고 아름다웠습니다.
밀키스와 투유 초콜릿
요즘도 그렇지만 영화가 인기를 끌면 자연스럽게 그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되지요. 영웅본색의 주윤발, 장국영을 비롯한 홍콩 스타들은 8, 90년대에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받는 스타들은 예나 지금이나 광고를 장악하지요. 당시 주윤발이 찍었던 밀키스 CF와 장국영이 열연한 투유 초콜릿 CF는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어떤 모습인지 만나볼까요?
가슴 뛰는 O.S.T
당시 홍콩영화가 낳은 낭만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O.S.T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투유CF만 봐도 명곡의 향연입니다. 투유초콜릿 하면 떠오르는 장국영의 To you.
4월 1일 장국영 20주기를 기념하며 신촌 메가박스에서 해피투게더를 봤는데요. 투유초콜릿을 나눠주는 행사를 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답니다.
다음 노래는 익숙해서 소개하고 싶어요. ‘영웅본색’을 집중해서 보다 보면 어디서 익숙한 사운드가 나옵니다. 송골매의 그 남자, 구창모 ‘희나리’를 번안한 곡이 <영웅본색> O.S.T 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주윤발의 대사 뒤로 깔리는 익숙한 선율. 묘한데 왜 썼는지 알겠어요. 잘 어울리네요.
사실 O.S.T하면 첨밀밀을 지나치기 쉽지 않습니다. 등려군이 부른 이 노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며 리메이크되었다고 하는데요. 한국에서는 감우성, 채림 주연의 드라마 <사랑해 당신을>O.S.T 였던 I’m still loving you로 다시 불리기도 했었지요.
마지막은 영화 <해피투게더> 엔딩곡인 the turtles의 happy together입니다. 피아졸라의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지만 택시를 타고 이동하거나 뙤약볕 아래 옥상에 시멘트 칠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해피투게더도 놀랍게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던 것 같아요.
아름답고 슬픈 4월, 오늘은 홍콩영화를 적어 보냅니다. 어제는 2012년 열렬히 사랑했던 아티스트, 사카모토 류이치가 3월 28일 7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사라지네요. 곁에 머무는 빛나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오래 쓸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머지않아 푸르른 녹음 뒤로 사라질 4월의 봄을 눈과 마음에 오래 담는 한 주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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