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나른한 오전 카페에 나갈까 망설여도 봤지만, 귀찮은 마음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를 차렸습니다. 미니 사이즈 카누 세 개를 넣고 물을 살짝 부어요. 잘 녹인 뒤에 얼음을 넣고 물을. 채워요. 그럼 그런대로 괜찮은 커피 한 잔 완성입니다. 주방에서 커피를 섞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이렇게 손쉽게 커피를 탈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래서 오늘은 늘어지는 평일 아침에 특히 더 필요한 믹스커피의 역사를 담아볼까 해요.
꽁피를 아시나요?
70년대 신문 기사 속엔 ‘꽁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꽁피는 뭘까요? 비위 상하지만, ‘담배꽁초 커피’의 줄임말입니다. 6, 70년대 다방에서 판매하던 원두커피는 사치품에 해당할 정도로 비쌌다는데요. 어떻게 하면 돈을 덜 쓰면서 원두커피를 팔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일부 다방 점주들이 원두의 양을 적게 넣는 대신, 짙은 색을 내기 위해 담배꽁초를 섞어 커피를 내렸습니다. 경악스러운 사건은 다행히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중의 질타를 받았답니다.
커피는 괜히 맥심이 아니에요
오늘날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름만 안 나는 줄 알았더니 커피콩도 나지 않는 비운의 한반도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수입을 해야했는데요. 전쟁 이후 너무도 가난했던 대한민국에서 외화가 밖으로 세는 것을 막기 위해 원두수입에 제한이 있었다고 해요.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에 비해 수입해올 수 있는 양엔 한계가 있다 보니, 커피는 사치품에 해당했고 대중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배꽁초를 넣어 커피를 타는 엽기적인 상황까지 벌어진 거죠)
이 상황을 타파하게 해준 고마운 기업은1968년부터 역사를 쓰기 시작한‘동서식품’이었습니다. 동서식품은1970년대 미국 제너럴 푸드사와 손을 잡고 맥스웰하우스 상표로 최초의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하는데요.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팔 수 있게 되면서 시장과 다방에서 커피를 파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됩니다.
커피를 향한 동서식품의 진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76년에는 커피, 프리마, 설탕이 한 봉지에 모두 들어있는 맥심 커피믹스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맥심 커피믹스 이름은 참 익숙한데요. 생김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차이가 있어요. 처음 등장한 커피믹스는 녹차처럼 정사각형 포켓에 들어있었는데요. 설탕의 양을 조절해서 먹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뒤 1987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포켓에 담기게 됩니다. 설탕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포켓 가장 끝에 설탕을 배치하는 센스를 겸비해서 말이죠.
커피믹스가 쏘아올린 작은 공
2/2/1, 3/2/2, 2/2/2… 암호 같은 취향 따라 타 먹던 커피가 적당한 양으로 나뉘어 포켓 속에 들어갑니다. 큰 변화가 아닌 것 같은데요. 줄줄이 소시지 마냥 그 뒤로 몇몇 변화들이 이어집니다. 우선, 인스턴트 원두를 만들었을 때까지 다방 점주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만들면서 별안간 적이 됩니다. 커피를 마시는 게 너무 손쉬워지다 보니까 굳이 다방이나 시장에 가서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던 거죠. 이건 사실, 인스턴트 커피와 프리마 설탕으로 쉽게 조제 커피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예견된 문제였습니다. 동서식품은 회사의 큰 고객인 다방 점주들의 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 다방을 운영하는 워크숍 등을 열기도 했었는데요. 그 정도로 고객들의 발길을 돌리긴 쉽지 않겠죠? 이때부터 다방은 살아남기 위해 음악을 틀거나 여성의 성을 내세우는 티켓다방 형식으로 변화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물론 그전에도 얼굴마담 등을 내세운 다방이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던 일은 있었지만, 믹스커피가 생겨나면서 더욱 짙어졌다고 합니다.
믹스커피가 빛을 발했던 건 90년대 후반 IMF 시절이었는데요.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믹스커피는 간편하게 먹는 메리트가 있지만 개인 취향껏 커피를 타 먹을 수 있던 인스턴트 커피(원두, 프리마, 설탕)에 비해 인기가 많지는 않았어요. 지금 들으면 황당하지만, 당시 면접 질문 중 ‘커피를 잘 타십니까?’라는 질문이 있을 정도였다는데요. IMF가 터지고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커피를 타 줄 사람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근무 환경이 됩니다. 그러면서 손쉽게 각자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는 커피믹스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하네요. 어떤가요? 참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새롭게 등장한 커피 하나가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이렇게 보니까 위대한 발명품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믹스커피의 진가가 피부로 와닿네요.
좋은 커피 많다지만, 그래도 믹스커피
이쯤에서 끝 곡을 띄웁니다. 10cm 아메리카노,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만큼의 파워가 있는 노래예요. 이러네 저러네 해도 결국 믹스커피가 제일 좋다는 처절한(?) 외침이 담겨 있는데요. 한 번 들으면 분명 자연스럽게 따라 부르실 수 있을 거예요. (미미미믹스커피)
스페셜티 바람이 분다지만 굳건한 힘을 발휘하는 1세대 에너지드링크, 커피믹스를 담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믹스커피를 타서 에이스 과자에 찍어 먹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조만간 엄마랑 티타임을 갖게 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고 오랜만에 맥심 타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지났지만, 우리 모두 기억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 편지할게요. 한 주간 무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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