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슬비

15.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저는 안녕합니다. 고맙습니다.

2023.08.11 | 조회 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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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새삼스럽게 고마운 요즘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던 소재가 현실이 되어 내 삶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직도 다 거짓말인것만 같아서 봤던 뉴스를 또 보고 또 보게 됩니다. 구독자님, 식사는 잘 하셨나요? 더운 여름밤 잠은 설치지 않으셨는지, 갑작스런 태풍 소식에 휴가 계획은 틀어지지 않았는지…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20 초반 뉴욕에서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 뉴욕에서 유럽을 가면 비행기  값이 싸다는 한마디에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너무나 당당하게 부모님께 여행비용을 얻어냈지만 사실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아니었다.  돈으로 가는 것도 아닌 주제에 어차피  번은  유럽이라면 한푼이라도 싸게 가는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 뿐이었다. 

대책 없는 초보 여행자에게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훈수를 두기 시작했는데

  • 유럽의 시작은 영국이니 런던에서 출발해라. 
  •  유럽이라면 그래도 프랑스가 제격이지 않겠어.
  • 남들  가는 그런데 말고 북유럽은 어때.

당시 주일마다 만나서 언어교환을 했던 미국인 언니는 이탈리아를 추천 했었는데 거긴 소매치기가 많지 않냐  말에 너는 북한을 머리 위에 두고 사는 애가 그깟 소매치기를 무서워 하냐 깔깔 웃었다.

오 천개(?)쯤의 훈수를 물리치고   유럽행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로 결정되었다. 일단 남들이 파리에 많이 간다고하니 파리에 갔다가  나라니까 스페인 그리고 대학동기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에 있을 예정이라는 메일을 받고는 이탈리아.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다 지돈이 아니라서 저렇게 안일했다. 뼈 빠지게 벌고 아껴서 여행 가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신 상태다.)

 도시 파리에 도착을 했는데 짐 가방은 오지 않았다. 공항 직원은 숙소 주소와 연락처 주면 짐이 오는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별 의심없이 OK하고 예약했던 한인민박으로 갔다. 음료수가 들어있는 비닐봉지와 핸드백 하나 달랑달랑 들고 오후 2  민박에 들어가서는 시차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잠을 잤다.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눈을 떴고 거실로 나갔더니 민박에 머물던 다른 여행객들이 나를 보며 수근거리는게 느껴졌다. 핸드백 하나 들고  아이가 대낮에 숙소에서 자고 있다고 소문이  것이다.  떠서  감을 때까지 하나라도  보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맨몸으로 와서 비도  오는 오후에 숙소에서 자고 있는건 이상한 시절이었다. 

 재산을 털어 신혼여행 중이었던 부부는 나를 보더니 밥이  넘어갔는지 저녁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숙박하던 아이들의 여행책을 죄다 모았다. 각자 이미 여행한 나라는 찢어서  놓으라고    일정대로 책을 만들어 묶어 주었다.  도시마다  보아야  것들에 형광펜을 그어 주었고 타야할 기차 시간을 전부 체크해서 적어줬다. 

혼자 여행 온 사람들끼리 같이 다니도록 팀도 짜주었는데 우리는 독수리 5형제 서로를 부르며 일주일 간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독수리 5형제  형님은 파리를 떠나는  기차역에서 등치  한국 여행객들을 찾아 “ 동생인데 일정이 달라서 혼자 보내게 되었으니  챙겨달라” 부탁을 해주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 나는 잠을 자는 동안  등치  한국분은 내내  짐을 지켜주었고 실제로 짐을 뒤지는 집시들로부터  가방을 사수해주기도 했다.)

무대책 여행은 스페인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계속 되었지만  때마다 도움의 손은 언제나 있었다. 길을 몰라 두리번 거리고 있을때면 어김없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현지인들이 있었고 우연히 연락이  이탈리아 친구는 자기 고향집을  주어서 친구도 없는  집에서 부모님과 3일이나 보내기도 했었다. (지금은 소도시여행이라고 종종 이름이 나오기도 하는 파두아라는  곳에서 나는 3일간  마을사람들을 거의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까만  머리 동양인을 보기 힘들었던 시골 마을에 내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아침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구경왔던 거라고 했다. 나의 외모나 행동을 기준 삼아 동양인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기를 뒤늦게 바란다.)   

한달 여의 여행이 거의 끝나갈 무렵. 돌아갈 티켓을 확인하느라 이메일을 열었다가 눈물이 왈칵  뻔한 일도 있었다.  백통의 이메일이  있었고 모두 하나같이 ‘괜찮냐’ 묻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지금 같지 않던   뉴스를 접하기 쉽지 않았던  달이었다. 런던에 대규모 테러가 일어났고 출발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되었던 나에게 친구들은 혹시나 얘가 런던에 있는건 아닌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아무 걱정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기대어 여행을 하는 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들의 마음이었던 것일까. 그들의 걱정이 길을 가르쳐주던 사람도, 잠자리를 내준 사람도 내게 보내준 것만 같았.  

케케묵은 지나간 여행 이야기를 이리도 주절주절 늘어놓는  하수상한 세상에 마음이 뒤숭숭해서다. 일면식도 없던,   보고  여행객에도 베풀  있던 배려와 호의가  일상의 이웃과 친구들에게 이리도 야박해진 걸까. 누군가 죽을 생각이 들 정도로 독한 말을 뱉고,  삶과 인생만 중요해서 타인의 안녕 따위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먹고 살기 바빠 냅다 달리다보니 상상도 못 해본 그런 세상에 내가 살고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공범과 방관자 사이에 서서 나는 얼마나 내 다정함을 나누고 살았는지 돌아보았다.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있는  가진게 많아서가 아니고 가진게 많다고 당연히 내놓아야 하는 것도 아님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배운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고마워 하는 마음, 내가 조금 물러서는 마음, 받았던 호의를  다른 이에게 갚는 마음. 그런 마음들을 조금씩 내어 일상의 안전을 튼튼히 지지하는 당분간이 되길 바라고 바란다.

모두들 부디 안녕한 하루를 보내시길.

그리고 20년 전 길 위에서 만났던 그 모두의 하루하루가 평안하길.

당신의 모든 하루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당신의 모든 하루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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