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8년 째 디스크 환자다. 18년 전 겨울, 세미나 겸 여행을 다녀오던 중 유조차에 받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전날 엄청난 눈이 내렸는데 고속도로 양쪽으로 치워 놓은 눈 덕분에 차가 낭떠러지로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우리가 타고 있던 승합차는 종이처럼 꼬깃꼬깃 구겨져 있었고 거기서 사람이 살아서 나온 게 신기하다고 했다. 살아서 감사하긴 한데 사고 직후 6개월을 꼬박 매일 병원에 다녔고 그 후 거의 매 해 정형외과를 들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한번씩 아프면 잠을 못자는 건 물론이고 숨을 쉬기도 쉽지 않을만큼 통증이 어마어마했는데 한번은 병원을 다니면서 아무리 약을 먹어도 한달 넘게 통증이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 : 젊은 분인데 약이 참 잘 안 듣네요. 무거운 걸 들지 말고 컴퓨터 사용을 줄이세요.
의사 : 뭐하시는 분인데요?
나 : 낮에는 장비를 들고 다니고 밤에는 컴퓨터 앞에서 있는 사람인데요
나 : 방송PD요.
의사 :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요! 치료가 왜 이렇게 안 되나 했네!!
대략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와 약 값을 치르고 겨우 통증이 잡혔는데 의사는 아플 때 마다 약먹고 주사맞는 걸로는 안되니 제발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평소보다 너무 큰 비용을 지불하고 나니 이 돈을 병원에 주느니 운동을 하는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그리곤 당시 영국 여행을 가려고 들고 있던 적금을 깨서PT 등록을 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아무리 무거운 걸 들고 다녀도, 밤을 새고 편집을 해도 허리가 아프지않았다. 그리고 운동을 멈추면 귀신같이 다시 환자가 되었다.
올 해 초에도 어김없이 정형외과에 갔다. 요추 3,4,5번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내가 봐도 저건 환자 사진이구나 싶었다. 코로나를 핑계삼아 3년 가까이 운동을 안 한 결과였다. 심지어 20일 짜리 미국 출장이코 앞이었던 당시 일은 고사하고 16시간 가까운 비행부터가 큰 일이었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달라고 했다. 주사 + 레이저를 맞고 사람 손과 기계로 하는 마사지를 하고 먹는 약과 바르는 크림도 사고 아무튼 또 정기적으로(?) 거금을 썼다. 꼭 소를 잃어 봐야 외양간 고칠 생각을 하는 나는 엄청난 병원비를 지불하고 나서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때마침 집 앞에 헬스장이 새로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 다 배웠던 동작이고 심지어 선수를 해도 되겠다는 소리도 들으면서 운동을 다녔었는데 나는 마치 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하는 사람인 것 마냥 새로 모든 걸 다시 시작했다. 허리와 골반 뿐 아니라 어깨부터 발바닥까지 멀쩡한 데가 없었다. 선생님은 마치 사람을 만드는 것 처럼 아주 기초적인 스트레칭부터 가르쳤는데 뭔가 시시하고 지루해서 재미가 없었다. 그냥 끊어 놓은 회원권이 아까워서 일주일에 2-3번씩 꾸역꾸역 운동을 다녔다.
그래도 몸처럼 정직한 것이 없다고 꾸준한 시간은 몸을 바꿔주었다. 보수 위에 올라가서 덤벨을 들고 운동을 할 정도의 균형감각이 생겼고 40-50Kg정도의 원판을 끼우고 무게도 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할정도로 몸무게는 1도 변화가 없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시작 9개월 만에 손바닥의 굳은살과함께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흔한 말이라서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운동을 하면서 ‘인생도 근력’ 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촘촘하게 붙어버린 내 요추 3,4,5번을 지탱해 주는 작고 소중한 근육. 등 운동과 엉덩이 운동을 죽어라 하면서 붙여 놓은 근육 덕에 당분간 내 척추는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찌릿찌릿하고 곧 찢길 것 같은 내 인생도 그 옆에 단단한 근육을 붙여 놓으면 한동안은 티나지 않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많을 때는 쓰고 지쳤을 때는 잠을 자고 화났을 때는 음악을 듣고 무기력할 때는 청소를 하고 슬플 때는 햇빛을 보라.’ 힘들다고 입 내밀고 징징거리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인생에도 마음에도 근육을 붙여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매일 한다. 몸도 마음도 증명해 줄 준비는 되어 있으니 시작만 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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