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28.내가 좋아했던 것들로 나를 기억해주세요

신년 사업계획과 팀원 평가를 지켜보며 느낀 것들

2023.11.10 | 조회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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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의 11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전 요즘 내년 준비로 바쁜 팀장님을 옆에서 보필(?)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답니다. 회사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적나라하게 느끼는 중이랄까요? 물론 저 역시 채점지를 들고 이 회사를 이리저리 평가하는 중이고요. 조직에서 평가 시스템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임에도 여러 가지로 느껴지는 바가 있어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와 닿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팀장은 아무나 못할 일인 것 같다는 점이에요. 세상의 모든 팀장님들, 화이팅!

사업계획 시즌이 돌아왔다. 기획안을 열심히 올리면서 내년 출간 계획을 세워두긴 했지만 벌써부터 늦어지고 있는 원고도 있고 이슈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출간 아이템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백업 기획과 출간 일정 테트리스가 계속되는 중이다. 와중에 올해 출간물 판매 분석도 하고 부진하면 부진한 대로 팔리면 팔린 대로 그 이유도 찾아내야 한다.

물론 이 업무의 중심엔 팀장님이 계시기 때문에 팀원인 나는 상대적으로 한발 물러나 있긴 하다. 하지만 옆에서 보고하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즌만 되면 나는 정말 영원히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든다. 실제로 팀장이셨다가 관리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 자진 팀원이 되신 분도 주변에 있는데, 그분도 그 말씀을 하셨다. 그때 받던 팀장 수당의 두 배를 준다고 해도 본인은 팀장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단순히 일이 많거나 작성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회사의 특성상 문서를 많이 작성하지 않는 곳도 있고 연말엔 팀장은 출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회사도 있으니까. 문제는 내가 함께 일한 동료, 팀원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성적 평가라면 글을 만지는 사람들이니 얼마든 장점이 돋보이도록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개인 매출, 팀 매출, 매출 목표 달성률 같은 것들이 평가의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팀원이 혼자 기획하고 혼자 책을 냈다면 그건 너의 타이틀이니 네가 감당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어느 분야나 그렇듯 담당이라는 것이 그렇게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다. 때로는 퇴사한 사람이 두고 간 기획을 물려받기도 하고, 윗 사람의 요구에 따른 기획을 떠맡게 되기도 한다. 혹은 오히려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작업 내내 까다로운 원고를 맡게 된다거나 급하게 출간해야 되는 타이틀의 책임을 맡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타이틀이 전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본인의 의지와 반하는 일을 팀과 회사의 필요 때문에 열심히 해낸 사람에겐 어떤 평가를 해야 하는 걸까? 우리 신체가 뼈만으로는 절대 걸을 수 없듯, 조직 내에서 연골이나 근육 같은 역할을 맡아 일을 부드럽게 만들고 사람들의 관계를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에겐 어떤 점수를 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괴로움일 것이다. 물론 차라리 평가를 받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직이 돌아가는 원리에 따라 숫자로 평가하고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순간인 연말이 다가오니 모두가 조금씩은 부담스럽고 불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의 나는 팀원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평가 시스템이 있겠지만, 나와 일하는 동안 그리고 내가 그만둔 다음에도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나를 숫자보다는 나의 취향으로 더 많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간의 내가 숫자 측면에서 대단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건 아니다. ㅋㅋ)

인적 드문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태국 가수가 좋아서 태국어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 인피니트가 좋아서, 일 때문에 화가 나도 공연을 보고 오면 천년의 분노가 가라앉는 사람, 좋아하는 작가와 작업해보고 싶어서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연애편지 같은 이메일을 써보는 사람,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하고 싶어서 열심히 회사에 출근하고 월급만큼은 일하던 사람 정도의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당부는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일이 곧 나인 것처럼 일했다. 당연히 일의 성패가 곧 나인 것처럼 굴기도 했다. 올해 개인 매출이 얼마였는지, 온전한 내 기획이 몇 건이었고 그 책의 매출이 어땠는지,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마케터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퇴근하고도 생각하고 때로는 주말에도 끙끙거렸다.

그러나 일이란 게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실제로 그 책이 많이 팔린다 한들 그 성과가 오로지 내 몫도 아니지 않은가. 그전에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체감되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팀장님 바로 옆에서 사업계획을 세우고 팀원 평가를 진행하는 걸 지켜보니 그게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기준 정도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팀장의 평가도 할당된 상황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나 스스로도 내 일에 대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해보려고 한다. 앞으로의 레터에서는 내가 일하면서 얻은 문장들, 내가 만나본 사람들의 삶이나 가치관,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이나 새롭게 좋아진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누군가는 나와 취향이 비슷해서, 다른 누군가는 나와 취향이 달라서 그 글이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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