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작년에는 책을 급하게 마감하는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급하게 책 마감을 마쳐서(?) 참석할 수 있었다. 도서전에 직접 부스를 여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한 출판인에게 도서전은 합법적 땡땡이 혹은 농땡이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경쟁사를 염탐(? 이라는 핑계로 그냥 평소 좋아하는 회사 부스에서 다들 열심히 덕질을 한다)할 수 있고,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업계 동향에 대해 떠들고(업계 동향은 10%, 각자 일하기 힘들다는 고충 토로 90% ㅎㅎ) 한때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과 마주치며 아직 출판계를 떠나지 않은 서로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 이슈들이 있었다. 정부와 출협(대한출판문화협의회)의 갈등,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정부 예산 삭감, 출협과 출판사의 갈등, 장소의 문제(그간 코엑스 1층에서 개최되었으나 다른 행사와 겹쳐 3층에서 개최되었다.) 참가비 등등. 그래서 그간 참가하던 출판사들이 참여하지 않기도 하고, 부스의 크기도 줄어들었다. 대형 부스가 줄기도 해서 개최 전엔 여러 우려들이 있었는데 막상 참석해 보니 도서전 자체는 여전히 흥행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도서전이 생각보다 흥행해 버리자 그 성과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는데, 출협에서는 정부의 지원 없이 독자들 덕분에 완전한 홀로서기 희망을 보았다고 하고 정부에서는 출협에 직접 지원하지 않았지만 지원을 요청한 참가 출판사나 행사에 직접 지원했으니 정부도 일조한 것이라고 논평을 내는 중이다. 와중에 도서전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 것을 두고 ‘실제 책을 읽지는 않으면서 인스타용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더 많다’고 비꼬는 경우도 있고(더 재밌는 건 이런 비꼼도 SNS를 통해서 올라온다.) 어쨌든 책과 가까워질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이나 진행되는 행사이니 이를 둘러싸고 여러 말이 나오는 것이야 당연할 것이다. 각자 본인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현상을 두고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도 할 것이다. 올해 내내 많은 출판사들이 역대급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만큼 도서전의 흥행이 의아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내부 사정은 도서전에 참석해 준 독자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으면 된다. 그 중에 책을 산 사람도 있고 나중에 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냥 평소에 못보던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딱히 책은 안 사고 싶었던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일까?
책은 결국 콘텐츠고 콘텐츠는 재미가 있어야 팔린다.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독서의 장점이 여러 가지가 있대도 반드시 그걸 해야만 한다는 의무만 남으면 흥미는 완전히 떨어진다. 재미가 없는 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수능 공부 평생 하라고 하면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삶이 꼭 의미나 당위로만 꾸려지는 것은 아니다. 독서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경험이 쌓여서 책을 읽고 싶어질 수도 있고 혹은 당장 읽고 싶지 않더라도 그 긍정적인 경험이 추후에 접근성을 낮출 수도 있다. 재미가 있어서 읽다 보면 의미를 찾기도 하는 것이지 의미를 찾기 위해 읽으라고 하면 누구라도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재미있는 걸 읽다 보면 긴 글에서, 혹은 무거운 가치에서도 의미나 재미를 느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나?
당장 편집을 업으로 먹고 사는 나도 책 마감을 하는 달에는 다른 책을 읽기 싫어진다. 그냥 텍스트 자체에 질려서 재미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재미있고 싶어서 찾아온 독자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인상평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편집자이자 한 출판사에 대표가 말하길 출판계는 쇼츠와 경쟁중이라고 했다. 책의 특성이 쇼츠와 같을 수 없고, 모두가 쇼츠의 가치를 추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 문화를 즐겨 보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굳이 호통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누군가 어느 날 독서 자체가 그냥 재밌을 날도 올지 모르니까.
<코너 속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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