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의무만 남은 관계엔 재미가 없다

숏츠랑 경쟁 중인데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2024.07.12 | 조회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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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구독자님 습한 더위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6월 말에 있었던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도서전에 참가사로 참여하지 않다 보니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도서전에 대해 이모저모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편집자이지만 여전히 독자이기도 한 사람의 넋두리를 가볍게 감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작년에는 책을 급하게 마감하는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는데 올해는 급하게 책 마감을 마쳐서(?) 참석할 수 있었다. 도서전에 직접 부스를 여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한 출판인에게 도서전은 합법적 땡땡이 혹은 농땡이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경쟁사를 염탐(? 이라는 핑계로 그냥 평소 좋아하는 회사 부스에서 다들 열심히 덕질을 한다)할 수 있고,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업계 동향에 대해 떠들고(업계 동향은 10%, 각자 일하기 힘들다는 고충 토로 90% ㅎㅎ)  한때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과 마주치며 아직 출판계를 떠나지 않은 서로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다산북스 부스 / 문학 작품 속 자신만의 문장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2024 서울국제도서전 다산북스 부스 / 문학 작품 속 자신만의 문장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여러 이슈들이 있었다. 정부와 출협(대한출판문화협의회)의 갈등, 서울국제도서전 관련 정부 예산 삭감, 출협과 출판사의 갈등, 장소의 문제(그간 코엑스 1층에서 개최되었으나 다른 행사와 겹쳐 3층에서 개최되었다.) 참가비 등등. 그래서 그간 참가하던 출판사들이 참여하지 않기도 하고, 부스의 크기도 줄어들었다. 대형 부스가 줄기도 해서 개최 전엔 여러 우려들이 있었는데 막상 참석해 보니 도서전 자체는 여전히 흥행인 것 같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도서전이 생각보다 흥행해 버리자 그 성과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는데, 출협에서는 정부의 지원 없이 독자들 덕분에 완전한 홀로서기 희망을 보았다고 하고 정부에서는 출협에 직접 지원하지 않았지만 지원을 요청한 참가 출판사나 행사에 직접 지원했으니 정부도 일조한 것이라고 논평을 내는 중이다. 와중에 도서전에 많은 사람이 참석한 것을 두고 ‘실제 책을 읽지는 않으면서 인스타용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이 더 많다’고 비꼬는 경우도 있고(더 재밌는 건 이런 비꼼도 SNS를 통해서 올라온다.) 어쨌든 책과 가까워질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이나 진행되는 행사이니 이를 둘러싸고 여러 말이 나오는 것이야 당연할 것이다. 각자 본인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현상을 두고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도 할 것이다. 올해 내내 많은 출판사들이 역대급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만큼 도서전의 흥행이 의아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내부 사정은 도서전에 참석해 준 독자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으면 된다. 그 중에 책을 산 사람도 있고 나중에 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냥 평소에 못보던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을 수도 있고 딱히 책은 안 사고 싶었던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그게 무슨 문제일까? 

책은 결국 콘텐츠고 콘텐츠는 재미가 있어야 팔린다.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읽는 책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독서의 장점이 여러 가지가 있대도 반드시 그걸 해야만 한다는 의무만 남으면 흥미는 완전히 떨어진다. 재미가 없는 건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수능 공부 평생 하라고 하면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삶이 꼭 의미나 당위로만 꾸려지는 것은 아니다. 독서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경험이 쌓여서 책을 읽고 싶어질 수도 있고 혹은 당장 읽고 싶지 않더라도 그 긍정적인 경험이 추후에 접근성을 낮출 수도 있다. 재미가 있어서 읽다 보면 의미를 찾기도 하는 것이지 의미를 찾기 위해 읽으라고 하면 누구라도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재미있는 걸 읽다 보면 긴 글에서, 혹은 무거운 가치에서도 의미나 재미를 느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나?

당장 편집을 업으로 먹고 사는 나도 책 마감을 하는 달에는 다른 책을 읽기 싫어진다. 그냥 텍스트 자체에 질려서 재미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재미있고 싶어서 찾아온 독자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인상평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편집자이자 한 출판사에 대표가 말하길 출판계는 쇼츠와 경쟁중이라고 했다. 책의 특성이 쇼츠와 같을 수 없고, 모두가 쇼츠의 가치를 추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 문화를 즐겨 보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굳이 호통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누군가 어느 날 독서 자체가 그냥 재밌을 날도 올지 모르니까.

<코너 속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나의 덕질 이야기는 주로 성규 혹은 인피니트 이야기로 점철되지만 사실 내 인생의 첫 덕질은 '빨강머리 앤'이다.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동화책 5권 중에(그 해에 내가 정말 말을 너무 안들어서 내가 갖고 싶은 선물 대신 엄마가 동화책 5권을 선물해주셨다. 책 읽고 좀 차분해지라는 의미였을까?) 한 권이었던 '빨강머리 앤' 어린이책 양장본. 그 책을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즉시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빨강머리 앤'을 읽거나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빨강머리 앤을 기억하기 때문에 어린 소녀의 성장기 쯤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원서는 무려 8권 혹은 12권에 달하는 한 사람의 일대기이다.(작가는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으나 출판사에서 늘 앤의 후속작을 부탁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띄엄띄엄 발매되었다. 그걸 각 출판사에서 묶는 방식에 따라 12권이 되기도, 8권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삶이 무거울 때마다 앤이 내 나이엔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되새긴다. '빨강머리 앤'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내게 도착하기까지는 또 다른 덕후의 힘이 컸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대학교의 초대 학생이자 그 학교의 첫 여성 총장이었던 에펄리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인이었으나 앤에 매료되어 캐나다로 이민온 뒤 계속해서 몽고메리를 연구했다. 덕분에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대학교에는 아예 몽고메리 연구소가 있다. (출처ㅣ https://blog.naver.com/insidecanada/50171762031) 세상에 좋은 작품은 많겠지만 옆에서 그 행적을 기록하고 연구하고 알리는 덕후가 없으면 인류에 대를 물리기 어렵다. 공자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돈을 빌리러 온 제후들에게 공자를 섬기라 하고 논어 제작에 힘을 보탰던 부잣집 제자 자공 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하는 일도 형태만 보면 덕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생각을 기록하고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다. 물론 덕질은 시키지 않아도 하고, 무엇을 하든 재미있다는 점에서 일과 다르겠지만 너무 너무 일하기 싫은 날에는 종종 주문을 외운다. 나는 지금 돈도 벌고 덕질도 하고 있다고. 역시 덕질은 세상을 좀 더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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