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유부

53. 덕후를 만나는 즐거움

꿈과 함께 놀고 싶어요

2024.07.05 | 조회 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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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부유하는 유부입니다😊 지난주 감사한 후기에서 한 구독자님이 제가 다녀온 도시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주셨는데요,(빙고뉴스에서 한번도 안 가본 국내 도시를 갔다고 밝힌 것에 대한 질문이셨습니다.) 저는 지난달 고대하던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산골영화제도 무주도 모두 처음이었는데요. 비록 비가 와서 계획했던 것에 반 밖에 즐기지 못했지만 특유의 소박한 매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남은 아쉬움은 내년에 다시 가 제대로 풀어볼 참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그 날 만난 인상 깊었던 한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구독자님도 주변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읽어 주신다면 더욱 반가울 것 같네요.
구름이 잔뜩 낀 첫 인상이었지만 땃땃했던 초여름의 무주산골영화제 
구름이 잔뜩 낀 첫 인상이었지만 땃땃했던 초여름의 무주산골영화제 

“짧은 공연이었지만 여기에 제 인생 전부가 들어있습니다.

비를 피해 들어간 키즈 스테이지, 그곳에선 함서율님의 더헤프닝쇼서커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글링으로 꽃을 한송이씩 피워내면서 미션을 클리어하고, 꿈에 그리던 곳으로 항해를 떠나는 내용을 담은 공연이었다. 주변 아이들의 흥분된 분위기 덕분일까? 땀을 닦아가면서도 박수를 종용하는 함서율 님의 익살스러움 덕분일까? ‘얼마나 잘하나 볼까?’ 하던 오만함은 금세 해제됐고 주변 어린이들에 질세라 큰 목소리로 웃고 감탄했다.

비언어로 이뤄지던 공연이 끝나고 처음으로 듣는 그의 목소리. “14년 전 독학으로 저글링을 배웠고, 공연을 만들게 됐습니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여기에 제 인생 전부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제 전부입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여가며 여러 방향의 관객들을 향해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그에게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공연은 노련했지만 능글거림 없이 즐거웠다. 진심이 담긴 담백한 끝인사까지 완벽한 쇼였다. 이 시간은 무주를 특별한 곳으로 만들기 충분한 경험이었다.

동시에 커다란 질문도 생겼다. “인생의 전부라고 말할 것이 내게는 있을까?” 글쎄언젠간과연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머릿 속에 저장해 둔 채 또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지난 몇주간 만났다. 모두가 황홀한 표정으로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땅의 온도를 배로 느끼며 이끼를 관찰하는 시간이 너무 평화로워요.”

지난 4월부터 기회가 닿아 동네 이끼를 관찰하는 이끼탐사대 활동을 하게 됐다. ‘이끼가 이끼지라고 무식하게 여겼는데, 이끼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끼를 알게 되면서 이끼 앞에 겸허해졌다. 우리 이끼탐사대에는 자문 해주시는 전문가 선생님이 있다. 비슷해 보이는 이끼도 단번에 보곤 바로 이끼과를 알려주곤 형태와 생육지 특징까지 술술 설명해준다. 그야말로 전문가. 탐사를 나선 첫 시간, 선생님은 이끼가 예뻐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중년의 남성이 어떤 대상을 이야기하면서 그렇게까지 맑게 웃는 걸 본 적이 언제였던가?

지난달 탐사는 사전에 약속됐던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선생님은 한달음에 달려와 새들이 둥지에 쓴 이끼를 함께 살피고, 또 호기심 가득 찬 모습으로 또 다른 동네의 이끼들을 살폈다. 귀한 휴일, 다른 지역까지 기꺼이 찾아와 낯선 사람들과 땅에 엎드려 이끼를 관찰하고 귀찮을 수 있는 질문(주로 이 이끼는 뭐예요?)에 대답하는 사람. 탐사가 없는 날에도 이끼탐사대 단톡방에 수시로 아름다운 이끼 사진을 공유하고, 이끼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사람. 지난 탐사 시간 이끼를 보느라 바지가 더러워졌다는 누군가의 말에 땅에 온도를 배로 느끼면서 이끼를 관찰하는 시간은 너무 평화롭다며 언젠가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고 눈빛을 빛내는 사람. 이쯤 되면 전문가 이전에 성공한 덕후가 아닌가 싶다.(좋아하는 이끼로 책도 쓰시고 연구도 하니 말이다ㅎ)

“집에서 아픈 엄마 돌보면서 빵이나 굽고 집에서 조용하게 사는 줄 알았던 언니가 요즘으로 말하면 블로그에 비공개글만 1,800개 인거예요. 너무 멋지잖아요.”

또 한 순간은 정원 수업에서 만났다. 지난 수요일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강의가 있었다. 강연자는 파시클 출판사의 대표자 번역가인 박혜란님.에밀리 디킨슨에 어떻게 입덕하게 된거냐 묻는 질문에 박혜란 번역가님은 위와 같이 답했다. 강연 시간에는 전문가다운 포스로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와 시를 설명하고, 해석에 대해 논의도 했지만, ‘어떻게 좋아하게 됐냐?’는 질문에 전문가의 자아는 무장해제 됐다.

흰 옷만 입고 세상과 단절돼 글을 쓴 신비한 인물로 포장된 시인의 다른 모습을 알리고 싶었어요.”라며 본인이 발견한 시인의 새로운 매력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말했다. 마음에 아름답게 다가온 것들을 시로 적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로 나눴던 에밀리 디킨슨의 모습처럼 번역가님도 본인이 발견한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길 바라며 시를 번역했고 시인의 시집에서 따온 이름으로 출판사까지 만들었다. (파시클은 에밀리 디킨슨이 직접 40여편씩 시를 묶어서 정리해 놓은 묶음을 말한다.)

자고로 덕질은 덕메이트(함께 덕질하는 친구)가 있어야 흥이 돋고 시너지가 나지 않는가? 그녀는 팬클럽(출판사)을 창단하고 굿즈(시집)을 만들며 덕메를 모으는 에밀리 디킨슨의 팬클럽 한국지부장쯤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늠해본다.  

나의 마음은 대체로 미지근하고 지구력도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뜨거운 마음을 동경하게 된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나는 저만큼 좋아할 수 있을까? 종종 묻게 되는데,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를 재서 무엇 하나 싶기도 하다. 그냥 내가 좋으면 그걸로 된 거지 또 뭐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일지도 ㅎㅎ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계속 무언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고, 닮고 싶다.

좋아하는 대상이 인생의 전부가 되지는 않아도 분명 풍성한 인생을 만들어 줄테니까. (지금 생각하니 하나의 대상이 인생의 전부라 말하면 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ㅎㅎ)무한도전의 박명수는 꿈은 모르겠고 놀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놀다 보니 꿈과 함께 있었다말할 수 있다면 너무 근사하겠다.


<코너 속 코너계절산보🚶동네에 이낀 있나? 🌿

장마와 무더위를 찍먹하고 있는 이번주, 여러분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이런 날씨에 산책하기는 그야말로 눈치 싸움인데요, 그래서 비 오지 않는 날은 서둘러 산책을 합니다. 요즘 날씨에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이끼인데요. 비가 온 다음날이라면 온 동네 구석구석 퍼져 있는 초록초록한 이끼를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끼를 봐서 뭐하냐고요? 맞습니다. 크게 쓸모는 없어요 ㅎㅎ. 그래도 내 집 주변에 이런 존재도 살고 있구나 알게 되면 동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는 거고, 조금 더 알면 애정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끼도 꽤나 예쁩니다.

손톱보다 작지만 이 속에 숨은 생명력은 엄청납니다!  가는철사이끼로 번식을 위한 포자체(흡사 콩나물 모양)가 형성된 상태입니다.
손톱보다 작지만 이 속에 숨은 생명력은 엄청납니다!  가는철사이끼로 번식을 위한 포자체(흡사 콩나물 모양)가 형성된 상태입니다.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리를 잡는 이끼는 생존을 위해 잎, 줄기, 헛뿌리 이렇게 필요한 것만 갖췄는데요. 미니멀리즘의 정수랄까요? 그래서인지 이끼는 단순해서 아름답습니다. 생명력도 엄청난데요, 물이 부족하면 몸을 한껏 웅크려 수분 증발을 최소화했다가 비가 오면 잎을 활짝 기세를 펼친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껏 쪼그라든 마른 이끼에 물을 뿌리면 몇 분 내 잎이 탱탱해지며 초록빛을 뽐내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닮은 우산이끼. 암그루(왼쪽), 수그루(오른쪽)
이름을 그대로 닮은 우산이끼. 암그루(왼쪽), 수그루(오른쪽)

또 산속에서 이끼는 나침반이 되어 주는데요, 나무 위에 이끼들이 북쪽을 가리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끼는 습하고 그늘진 곳을 좋아하니까요. 만약 동네에서 여러 나무들이 한 방향에만 이끼가 있다면 아마도 그쪽이 북쪽일 겁니다.

원래 산책이란 정해진 목적없이 정처 없이 걷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또 산책의 묘미고요.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건 생각보다 많습니다 ㅎㅎ

잔디를 대신 고양이 집 앞에 깔린 보드라운 이끼, 이런 장면을 포착하는 게 산책의 묘미😻
잔디를 대신 고양이 집 앞에 깔린 보드라운 이끼, 이런 장면을 포착하는 게 산책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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