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다닐 때 목표는 오직 ‘탈출’이었다. 일을 열심히 한 건 월급을 많이 받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클라이언트의 성과가 눈에 띄도록 만들어 소문이 나길 바랐다. “이번에 기사 크게 났던데?”, “재밌는 프로모션 하던데 소비자 반응 어때요? 매출 잘 나왔죠?” 같은 물음표들이 나를 탈출의 길로 이끌어 주리라 믿었다. 기깔난 클라이언트 퍼포먼스를 쌓아두면 업계 혹은 경쟁사 어디선가 나를 불러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던 때였다.
시키지 않은 야근을 나서서 했던 대리 말~과장 초 무렵, 재계약에 재재계약까지 달성하면서 업에 자신감도 붙었다. 연차를 쪼개어 수시로 면접도 봤다. 나는 주류로 가고 싶었다. 당시 내게 주류는 인하우스(외주 또는 대행 인력이 아닌 회사의 내부 구성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 담당자가 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인하우스에 목맸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집착 같다 싶지만 그때 나는 누군가 내게 “어디 다니냐”고 묻는 질문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냥 단답으로 말할 수 있는 회사 이름을 갖고 싶었다.
주말 저녁 드라마 본방 사수를 하기 위해 TV 앞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저 골프 광고 네가 만든 거야?” 홍보대행사에서 일한지 5-6년이 넘어가던 때였다. 엄마가 광고대행사가 하는 일과 홍보대행사가 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딸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여전히 잘 모르는 엄마에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아직도’라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기업이 더 잘 알려지도록, 매출 상승에 기여하도록 내가 하는 노력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엄마가 잘 알아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면서 다짐했다. 정말 주류로 가야겠다고.
일적으로 가까워진 기자가 때때로 어느 기업 홍보팀에 자리가 났으니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주기도 했다. 반가웠다. 꾸역꾸역 버티고 지나온 시간 덕분에 내 자리가 어딘가 생기는 건가 싶어 설렜다. 그러나 당시 내가 진짜 가고 싶었던 업계는 오래 맡아온 아웃도어와 스포츠의류 업계였다.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온 파트너에게 대행료 대신 나를 고용하는 게 더 비용 세이브가 되지 않느냐고 농을 하며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어보려 애썼던 시간들. 대신하는 사람(=나)보다는 진짜 내부자가 되어 여러 팀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기업 홍보 메시지를 만들고 컨트롤하는데도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그게 진짜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던 것도 같다.
숱한 노력에도 나의 자리는 인하우스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말 찐으로 가고 싶었던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었다. 나도 노력했지만 그들 또한 나를 뽑아주기 위해 애썼다. 그들이 요구하는 영어 성적만 만들어오라고 하면서 이미 미달된 점수를 만회하도록 기회를 한 번 더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들의 배려에도 끝끝내 나는 요구사항을 충족하진 못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고 하던데 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던 걸까. 준비도 없이 욕심만 크게 부렸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불만족스러워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자연히 일이 재미없었다. 기존 클라이언트 미팅을 갈 때도, 신규 클라이언트 비딩(bidding, 입찰)에 들어갈 때도 나는 억지로 끌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전문가라고 말하는 순간순간 흔들리는 눈빛을 클라이언트 담당자들도 알아채지 않았을까? 지금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부끄럽다.
임출육(임신-출산-육아)을 거치면서 자연히 바쁘게 돌아가는 일로부터 멀어졌다. 다른 의미로 나는 탈출했지만 탈출이 마냥 기쁘진 않았다. 일을 놓고 싶지 않지만 일할 수 없는 상황,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지 불안한 마음들. 계속 되뇌고 다독이지 않으면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내 안의 거대한 적과 싸우는 기분을 수시로 느꼈다. 세상에 일잘러는 너무나 많으니까. 그걸 알 정도의 자기객관화는 충분히 완료된 때였다.
다행히 운 좋게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를 종종 얻었다. 최근에는 비영리단체의 캠페인 메시지를 다듬는 일을 했다. 일이 들어왔을 때, 나는 조금 망설였다. 내가 전문 카피라이터가 아닌데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내부자가 아닌 상황, 현장과 업계를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내가 뛰어들어 선뜻 메시지를 건드려도 되는 것일지 걱정됐다. 진짜로 인하우스 담당자가 더 잘 알고,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런 마음도 들었다. 안 해본 일이라고 거절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크기는 점점 작아지지 않을까? 나의 능력 부족으로 고사한 이 일을 나중이 되어서야 ‘그때 해볼 걸’이라고 아쉬워하지 않을까. 깊게 고민하지 않고 일단 해보겠다는 답신을 보냈다.
첫 의뢰로 맡은 캠페인 메시지를 수정하는 시간은 사실 고됐다. 이슈를 잘 모르니 자료 조사하는 시간도 길었다. 초안을 고치되 단체의 방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설득될 수 있도록 잘 중개하는 일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안에 불안이 계속됐던 것 같다. 나를 전문가로 믿고 일을 준 파트너에게 믿음과 만족을 주어야 할 텐데. 실제로 도움이 되어야할 텐데 잘할 수 있을지 막막해 문서의 하얀 페이지만 멍하니 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때 운명처럼 발견한 문장들 덕분에 나는 막막한 마음을 다독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최혜진 작가의 <에디토리얼 씽킹>을 읽으면서 나는 저평가해온 나의 역할, 나의 일의 의미를 되찾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내부자가 아니기에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나의 업에 대한 자긍심까지. 비영리단체의 내부자들은 이슈를 잘 알겠지만 메시지를 통해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는 어쩌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구나. 최혜진 작가의 표현대로 ‘능동적 해석자’가 되어 일하는 기쁨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에필로그를 살펴보니 작가님 또한 “에디터는 전문가일까? 에디터의 전문성은 어떻게 정의할까? 전문가로서 에디터는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까?” 질문에 답하려 애쓰다 보니 책을 내게 됐다고 했다.
“나는 에디터가 원고 편집이나 윤문하는 사람, 혹은 마케팅 머티리얼 제작 말단의 업무를 대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를 가시화하는 전문가’, ‘문자 언어로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님 말에 기대어, “설득력 있는 산출물로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진짜 준비된 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계속 도전해볼 생각이다. 내가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발견하며 사회에서 ‘의미의 밀도’를 높이는 진짜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 인하우스냐 아니냐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진짜 ‘주류’라는 믿음으로.
<코너 속 코너> 책방산책📚
처음으로 소개할 동네서점은 강릉 '한낮의 바다'입니다. 한낮의 바다는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주택가 골목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여기가 맞나 싶은 순간 서점이 얼굴을 드러내죠.
저는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무척 반가웠어요. 서점 주인(책방지기)이 직접 큐레이션 해놓은 책들 상당수가 집에도 꽂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취향이 비슷한가보다 생각하면서 읽지 않은 책들에도 주저하지 않고 집어볼 수 있을 만한 신뢰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보다 더 오래 눈여겨 본 것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판매하는 책들 모두 샘플책이 있다는 점! 책방지기가 직접 읽고 밑줄 긋고 메모해둔 책갈피를 안내판 삼아 책을 훑어볼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흥미로웠어요. 얼마나 책을 열심히, 그리고 많이 읽었을지 그 시간이 상상이 되니 자연스레 믿음도 갔고요. 동네서점에서 샘플책을 둔다는 게 흔한 일인지 잘 모르지만 제가 다녀본 동네서점에 샘플책을 구비해둔 곳을 본 적은 없었기에 '한낮의 바다'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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