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유부

62. 제주에서 보내는 레터

이 편지는 제주 서귀포에서 시작되어…

2024.09.06 | 조회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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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부유하는 유부입니다. 저는 지금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제주에 왔습니다. 사실 휴가보다 일종의 덕질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좋아하는 가수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책방에서 콘서트를 한다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콘서트를 덜컥 예매하고 본격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습니다. 리모델링 했다는 소식에 궁금했던 정원의 도슨트를 신청하고, 1년 중 딱 6개월만 공개한다는 숲도 예약을 하고, 지난 번 여행에서 마음에 들었던 박물관도 여정에 추가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덧 계획된 일정의 반쯤 온 지금, 원래 여행이 그렇듯 기대한 만큼 좋은 것도 또 기대와 다른 것도 경험하며 주어진 시간을 나름대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의 시작이 된 콘서트는 내일 진행될 예정이라 후기는 전달하지 못하겠네요ㅠ 그래도 제주의 기운들을 이번 레터에서 열심히 전달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사진이 좀 많습니다 😅)

2년만의 제주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어쩌다보니 거의 매해 제주에 올 일이 생기곤 했다. 가족여행은 물론 친구들과 단체여행 왔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도 제주의 지인들을 만나러 종종 방문했다. 지난해는 특별한 이유 없이 한해 쉬긴 했지만, 익숙하면서도 또 여전히 신기한 여행지다. 그 잦았던 제주 방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퇴사를 선언하고 혼자 온 5일간의 제주였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라는 남편의 말에 즉흥적으로 4 5일 제주의 한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의 목적은 그저 조용히 숙소에 머무는 것.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수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가져간 책을 읽고, 산책하는 것이 계획의 전부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차도 빌리지 않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도착한 1인실 숙소의 한쪽 벽면은 온통 창이었다. 바다 건너 우도가 보였다. 해안을 따라 구부러진 2차선 도로와 강한 바람에 잎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야자 나무가 더해져 그야말로 제주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려한 창밖 풍경에 반해 방 안은 최소한의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창 옆 틈 없이 놓인 판상형 침대, 하얀 침구가 깔려 있는 얇은 매트리스. 침대 헤드 옆으로는 붙박이형 책상 겸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TV를 대신해 ‘침묵’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샤워 부스가 분리된 작은 욕실까지, 1인 여행자에겐 부족함 없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대비?되던 숙소 안팎의 풍경
대비?되던 숙소 안팎의 풍경

당시 머물던 숙소는 명상과 요가 수업, 다실을 숙박객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그 부가 서비스들이 여행 계획의 전부였던 난 모든 수업을 등록하고 다소 심심한 시간들을 나름대로 혼자 보내 보려 노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처음 해 본 다도. 차를 마시겠다는 말에 요가 학원의 향과 음악, 분위기를 응집해 놓은 차실로 안내해 주셨다. 차실 오른편에는 창이나 있고 물레방아에서 흘러온 물이 모인 작은 물 웅덩이가 보였다. 그 뒤로는 황토빛의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 봐도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직원분은 차 마시는 법을 공들여 설명해 주셨다. 뜨거운 물로 찻잔과 다기를 데우고, 데워진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었다. 찻잎을 우리기 전 주전자 안에서 퍼진 향을 먼저 맡아보게도 권하셨다. 그리곤 다시 전기포트가 딸깍 소리를 낼 때까지 물을 끓이고, 적정 온도로 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찻잎이 든 주전자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또 몇 분.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숙우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따라 마침내 내 잔에 차를 채워 주셨다.  

드디어 완성된 차. 가이드를 따라 차를 입안에 넣고 오른쪽과 왼쪽 골고루 굴려가며 맛을 봤다. 평소에 마시던 녹차보다 확실히 고급스럽긴 했다. 하지만 차를 마시기까지 준비시간만 무려 15. 이걸 하려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비행기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이곳까지 온 것일까? 차를 준비하면서 또 음미하면서 맛보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그 전의 난 왜 그리 분주 했을까?

퇴사 직전에는 거의 매일 출근길 분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며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 바로 커피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시간 계산해 가며 받아 든 커피는 정작 마시지도 않고 뚜껑을 열고 그저 멍 때릴 뿐이었다. 그리곤 이내 건너편 빌딩의 회사로 향했다. 커피향 덕분에 졸음은 조금 가시고, 커피도 적당한 온도로 식어 후루룩 마실 수 있으니 원하는 바는 다 이루었던 것이다.

번거롭지만 그래서 현재에 머물게 하던 차와의 시간
번거롭지만 그래서 현재에 머물게 하던 차와의 시간

보상심리 때문이었을까? 그 여행에서는 내내 한 시간씩 차를 마시며 시간부자의 삶을 체험했다. 사실 그 뿐이었다. 무언가 혼자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내 인생에 대한, 내 미래에 대한 대단한 그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착각했지만 그런 깨달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한가지 배운 게 있다면 그 시간만 사는 것.

버스에 타서 내린 뒤를 생각하고, 커피를 보면서 출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전자를 데우면 데워진 온도를 느끼고 차를 마시면 맛만을 음미하는 거다. 매번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마음만 분주해지고 걱정만 커져서 정작 일이 닥치면 이미 준비된 에너지는 다 소진되어 일을 마무리하기 급급했던 모습은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물론 현재에만 머무는 건 여전히 어렵다. 이번 여행에서도 다음 끼니를 위한 식당을 검색하고, 효율적인 경로를 검색하느라 눈 앞의 광경들을 놓치곤 했다. 그래도 휴대폰보다 궁금한 것들이 눈 앞에 많으니 잠시 폰을 내려놓고 또 다시 현재에 머무는 연습 중이다.

<코너 속 코너> 계절산보 🚶 이름보다 중요한 것

오늘은 제주의 베케를 다녀왔습니다. 리뉴얼 소식에 두번째로 찾은 베케였는데요. 5년 전 방문했을 때는 지금보다는 식물에 대한 관심도 지식도 덜했고, 눈에 보이는 식물이 별로 없던 겨울이어서 흥미가 덜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찾은 베케에서 도슨트 설명도 듣고 눈에 익은 나무들도 하나씩 찾다보니 역시나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으레 그렇듯 도슨트분께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이름을 알려주시면서도 베케에는 이름표를 잘 두지 않는다고 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름을 알면 그 식물에 대해서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름 전에 외형과 환경을 살피려 노력하는 것이 식물을 더 잘 알게 되는 방법이라고요.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져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는데요, 이름은 몰라도 마음에 드는 수형을 가진 동네 나무 한 그루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잎도 줄기도 살피다 보면 찐으로 마음에 드는 식물 친구 하나쯤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스프링쿨러가 나오는 시간에 이끼정원에 방문해보세요. 반짝이는 수많은 보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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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공유하지 못해서 아쉬워요ㅠ 바람에 나부끼는 가을 정원의 매력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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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식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야생의 집과 인간의 집이 공존하는 모습을 발견했던 스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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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드디어! 다음주 주말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됩니다! 금요일이 주말권이듯 다음주 금요일은 무려 주말+연휴권이 잖아요😆 그래서 저희 일류여성 에디터들도 제대로 충전하고 9월 20일에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무탈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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