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

48. [은둔자]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말라

2024.05.31 | 조회 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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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여성

세 여자가 전하는 '일'에 관한 모든 이야기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은둔자입니다. 사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현재 재직 중에 있다 보니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이건 뺄까 늘 고민하곤 했는데요. 그래도 오늘은 기록으로 남겨 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제 일의 에피소드를 조금 풀어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이 조금 길어졌네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편집자가 겪는 일이겠지만 작가 섭외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기획이 모두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여러 의견이 오가다 보면 섭외가 거의 완료되거나 심지어 샘플 원고까지 받았음에도 내부 기획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러면 나는 상황을 작가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이러한 의견이 있는데 혹시 조율이 가능할지 의사를 타진한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이야기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경우 작가와 회사의 의견 중간 즈음에서 타협이 되지만 진행하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너무 다를 때는 작가쪽에서 거절하기도 한다. 서로 어른이고 우리 하는 일이 다 거절하고 거절당하는 과정이라고 다독이지만 어쨌건 작가도 기획자도 뒷맛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기획자 선에서 회사의 의견을 거절하고 작가와 상의 끝에 기획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많지 않은데, 작가와 나는 이 메시지를 세상에 꼭 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내부의 여러 가지 이유로 반려당하는 경우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회사에서는 작가가 꽤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던 장르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면 내가 가져온 이야기로는 출간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나는 작가와의 미팅 중에 들었던 이야기 중 꼭 세상에 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 작가와 그 주제를 꼭 다루고 싶었고, 그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가 함께 작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가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양해를 구한 뒤 훗날을 도모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기획을 관철 시키지 못하고 철회한 형태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작가와 언젠가는 반드시 그 주제로 책을 내겠다고 여전히 꿈꾸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기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여기서 풀어놓을 수는 없으나 그날 나누었던 이야기에서 나는 내 삶에 기준이 되는 문장을 만났다. 최대한 아이디어를 노출하지 않는 선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어서 오늘의 글을 쓰기로 했다. 

작가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뭐든 첫 번째를 선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승자독식이 법칙처럼 되어 가는 세상에서 그럴 법도 하죠. 그런데 제가 공부를 계속하면서 알게된 사실이 있어요.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이 되어도 충분하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요.”

여기까지 들었을 땐 그저 ‘좋은 말씀이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라고도 생각했다.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작가는 한참 크게 웃었다.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 하는지 내가 알지. 한국 사람으로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우리가?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들어봐 봐. 

누군가 맨 처음 혼자 춤을 추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요. 오히려 이상한 사람을 보듯 힐끔 보거나 피해서 지나치죠. 그런데 그 옆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나타나서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그걸 퍼포먼스로 생각해요. 혼자 추던 춤도 예술이었고 둘, 셋이서 추는 춤도 예술인데 세상에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건 분명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이 함께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라고요.

그러니까 모두가 첫 번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건 모두가 할 수 있다고요. 내가 동의하는 혹은 응원하는 가치를 향해 누군가 혼자 춤을 추고 있다면 내가 그 옆에 가서 함께 춤을 추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건 훨씬 덜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첫 번째가 되려고, 유일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외로워지지 말고 ‘나는 두 번째 사람이 되어줘야지’라고 생각해봐요. 확실히 덜 불안하고 덜 외로울 걸요?”

그날 나누었던 작가와의 만남은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내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었다. 예술가가 될 만큼의 재능도 없고 혁명가가 될 만큼의 용기도 없으면서 나는 늘 삶의 의미를 찾아 부유했었다. 우연이었지만 편집자가 된 것도 늘 의미를 찾아 헤매던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적극적으로 춤을 추진 못했다. 관찰이라는 미명 아래 삶을 관조하고 싶어했다. 딴에는 그게 어른 같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본형 작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말라고. 

물론 그렇다고 이제와서 냅다 혼자 춤을 추는 위인이 될 수 없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런데 어쩐지 두 번째로 춤을 추는 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 옆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인생이 확실히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나만의 무언가’를 찾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미 시작한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응원을 보내는 일에 골몰한다. 도울 게 있으면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상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 그리고 확실히 이전보다는 덜 외로워졌다. 

때문에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그 작가와 함께 세상으로 꺼내고 싶다. 아마도 형태와 구성이 지금 생각한 것과 달라지겠지만, 분명 내가 직접 경험했다고. 두 번째로 혹은 세 번째로 춤을 추니,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덜 불안해졌다고. 그러니 우리 함께 춤을 추자고 우리의 독자들에게 말해보고 싶다. 내가 그 작가의 인생에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사람으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면서 함께 작업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날이 분명 꼭 올 것이라 믿는다. 

 

< 코너 속 코너> 덕질은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가? 

뷰민라 헤드라이너 성규의 공연을 보고 있는 은둔자. 매우 차분해 보이지만 사실 얌전하게 찍힌 사진이 이것 뿐이라는 게 함정. 사진에서 보면 무대와의 거리가 꽤 멀어 보이지만 실제 거리는 보이는 것보다 가깝습니다. 
뷰민라 헤드라이너 성규의 공연을 보고 있는 은둔자. 매우 차분해 보이지만 사실 얌전하게 찍힌 사진이 이것 뿐이라는 게 함정. 사진에서 보면 무대와의 거리가 꽤 멀어 보이지만 실제 거리는 보이는 것보다 가깝습니다. 

 

뷰민라를 다녀왔습니다. 머글인 지인과 함께 가다 보니 스탠딩으로 즐기진 못했습니다. 지인이 제게 가서 보라고, 본인은 신경쓰지 말라고 해주었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돗자리 위에 지인만 덜렁 두기가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서 저는 그저 가까운 구역에 돗자리를 깔고 공연을 즐겼습니다. 

혼자서 공연 자체에 몰입하고 즐기는 것도 분명 진한 재미가 있습니다만 지인과 함께하니 그것은 그것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머글인 지인의 반응을 보며 제 최애를 더 자랑스럽게 느끼게 되었달까요? 

지인이 생각보다 공연을 너무 재밌게 봐주었고 제 최애의 노래가 너무 좋다며 몇 곡은 제목을 물어보기까지 했거든요. 콘서트까진 무리고 다음 페스티벌에 나온다면 본인도 또 함께 보러 오고 싶다고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평소 좀 시니컬한 제가 정신 놓고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너무 재밌었답니다.

사진은 개중 가장 조신한 것을 고른 것인데 그 이유는 제가 응원봉을 흔드느라 사진이 다 흔들려 있거든요. 어떤 건 심령 사진 같아서 무서워요. ㅎㅎ

사실 저는 제가 공연을 볼 때 어떤 모습인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무대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요. 그런데 누군가와 함께 하니 제 뒷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더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응원하고 있던 제가. 이런 것이 함께 춤추는 것의 매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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